서으로 가는 달 같이는

- 서정주 시 <추천사> 에서 인용

by 양경인


가족이 잠든 깊은 밤, 나는 책을 어떻게 정리할까 서재를 둘러보았다.

타향살이 20년 동안 집을 사지 않아서 우리는 2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다녔다. 그때마다 몇 꾸러미의 책을 버렸지만 나의 직업에 대한 미련 때문에 끼고 다닌 책들이 만만찮은 무게로 나를 압박한다. 과감히 정리할까, 그래도 놔둘까. 문제는 남편 벌이로 서울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고 내가 힘을 보태야 하는 경제사정이다. 육체노동으로 돈을 벌고 싶지만 자신이 없다. 그러면 이 책들은 다시 내 경제생활의 밑천이 돼야 할 것이다. 불안한 밤, 어떻게 되겠지 하며 잠을 청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어제도 그런 밤이었다. 솎아낼 책을 가늠하며 베란다 책꽂이를 둘러보는데 김영희『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가 아이들 책꽂이에 꽂혀있는 것이다. 이사를 열 번은 다녔을 텐데 이 책이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나의 내면을 말해주는 듯했다.

이 책은 서른셋에 첫 애를 낳고 밤낮이 바뀐 아기 돌보느라 경황없다가 출산 후 처음 읽어본 책이다. 난산 끝에 첫아기를 낳은 후라 더욱 빨려 들어가듯 읽었고 나를 꼼짝 못 하게 하던 김영희 씨의 감수성에 찬사를 보냈다. 그러저러 저 책을 읽을 때 백일이던 큰 아이는 이제 스물다섯이 되었고 이년 후 태어난 둘째가 대학 3학년이 되었다. 2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어떠한 삶에 도달해 있는가.


내 꿈과 육아 사이에서 정신적으로 힘겨웠다. 고향을 떠난 20년 동안 나는 내 삶이 어느 만큼 열악한 처지에서 출발했는지 서서히 실감했고 그 상황을 정직하게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웠다. 철저한 현실주의자가 돼야만 ‘사람 노릇’하며 어른의 삶을 살겠구나 자각했을 때 나는 문학과 결별을 선언했다.


생업전선으로 나서니 더 이상 문학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정직히 말하면 도피의 명분이 되었다. 난 이 사회의 바닥에 납작 엎드려 돈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내 머릿속에는 서정주의 시 <추천사 > 한 구절이 늘 맴돌았다.


서으로 가는 달 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내 눈앞에 펼쳐지는 팍팍하고 구차한 일상 너머 내 생을 걸고 싶었던 그 무엇에 대한 갈증이 가슴 위로 차오를 즈음 나는 암이라는 병과 맞닥뜨렸다. 동시에 문학에서 도망갈 명분을 주고, 우리 가족 도시생활을 버티게 해 주던 나의 수입원도 일단락되었다. 항암치료를 받으며 완치 판정을 받는 5년 동안 나는 저축한 돈을 바닥내며 지냈다. 그 끝자락에서 이 책을 다시 만난 것이다.


김영희는 결혼해서 직장 다니며 ‘그림 한 장 못 그리고 농 정리만 하면 어떡하나 하는 삶의 두려움’(96쪽)을 가졌던 사람이다. 나 또한 그런 두려움을 가슴 한쪽에 얹어놓고 살았다. 그래서 마음속이 항상 분주하였다.

글 한 줄 못쓰고 결혼을 했고, 그때부터야 조금씩 글이 써지기 시작했다. 이십 대의 방황을 30 매 수필로 써서 상금 50만 원 받았을 때, 난 원고료가 너무 작다고 느꼈다. 지금으로 치면 500만 원 정도의 가치였는데도. 젊음의 한 부분을 떼어내 헐값에 팔아 치웠다는 생각으로 심란했던 것이다. 이 세상을 글로 맞서기에는 힘이 부쳤고 , 짬짬이 쓰는 글은 부정기적 수입이라 경제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문학에 대한 열망이 나의 삶을 해친다고 생각했다. 현실을 직시하는 사고를 엇나가게 하면서 자기 합리화의 수단으로 문학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문학을 버렸다. 현실을 몸으로 살고 싶다는 열망이 강할수록 문학 운운하며 현실을 외면했던 이십 대는 내 인생에서 싹 지우고 싶었다.

결혼 후에는 책 한 권을 사 도 이 책 내용이 소고기 한 근 값에 못 미치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다. 나는 돈벌이에 충실하였다. 적지 않은 세월, 문학에 대한 나의 속내는 김지하의 <시>에 압축되어있다.


詩가 내게로 올 때
나는 침을 뱉었고
떠나갈 때
붙잡았다 너는 아름답다고

詩가 저만치서 머뭇거릴 때
나는 오만한 낮은 소리로
가라지!

가라지!
아직도 그렇다 가까운 친구여!
어쩔 수도 없는 일

詩가 한 번 떠나면
다시 오지 않는 걸
알기 때문에, 가라지!

난 그랬어
돌아올까 봐 행여 돌아올까 봐
가라지!
몇 번이고 가라지!
가라지!


( 김지하 시(詩) 중에서)


암병동에서 만난 환우들이 항암치료 과정에 한 사람 두 사람 세상을 떠났다. 생명 자체가 소멸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고 그 생사의 순환 속에 우주의 질서가 있는 것이겠지만 그런 소식이 매번 나를 흔드는 것은 그들과 맺었던 관계 때문일 것이다. 약물치료를 12회 받는 동안 매 회마다 3박 4일을 입원해야 했다. 그 막막한 시간들을 솔제니친의 “암병동”을, 도스트엡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반복해서 읽으며 버텼던 정황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오십 대의 어느 날, 그렇게 피해 다녔던 문학이 내게로 왔다. 누군가를 만날 때, 상식의 잣대 너머 그 사람 자체의 존엄을 생각하는 습관(?)은 문학이 준 것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인연 맺은 소중한 것들은 그런 시선 속에서 만났다. 경주 석굴암을 갔을 때도 그 긴 거리를 주인의 불공을 위해 임을 지고 가마 들고 걸어 다녔을 노비의 마음에 생각이 기우는 것, 그것 또한 문학의 자리였다.

보이는 현실이 내 삶의 전부일 수는 없다는 팽팽한 긴장, 비록 글은 못 썼지만 그나마 문학이 없었다면 나의 이십 대는 얼마나 헐벗었으리. 결혼 후 외지에서 다시 공부하고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밀어 준 것도 문학의 힘이었다. 살면서 자기 개발서 같은 책이나 베스트셀러라는 말에 무심할 수 있던 것도 문학으로 축적된 나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였다. 문학과 더불어 뒹군 어둠이었기에, 그 어둠을 의지하여 내가 나를 버리지 않고 살았구나 싶었다.


문학은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주었다. 가혹한 현실에도 잠식당하지 않고 어두운 시간을 견디게 해 주었다. 이제 내 삶의 첫사랑, 문학과 다시 만나며 그 시간을 함께 했던 많은 인연들께 감사드린다.

이 시간, 어려운 여건에서도 불을 밝히고 있을 문학도와 문학인들을 다시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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