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by 양경인

10여 년 전, 여권 사진을 찍고 내 얼굴이 낯설어 당황했던 적이 있다. 길거리에서 무수히 마주치는 속물 냄새 흔한 아줌마 얼굴이 거기 있었다. 그 사진을 들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이 얼굴의 주인이 나란 말인가...’

저녁식사 자리에서 남편에게 사진을 보이며 ‘내 모습이 이런 줄 몰랐어’ 했더니 ‘5분 완성 명함판 증명사진’은 누구나 잘 안 나온다고 좀 제대로 찍지 그랬냐고 했다. 나를 배려한 말이겠지 싶으면서도 조금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사진의 주인공이 나라는 것을 내 얼굴을 아는 이는 몰라볼 이가 없겠기에 그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동안 스냅사진을 적잖이 찍어대어 내 얼굴이 낯설 까닭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사진들은 웃거나, 모자를 쓰거나, 배경에 인물이 적당히 가려진 것들이다. 사진을 찍은 상황이 즐거우면 표정이 스며들어, 얼굴이 도드라지는 상황은 아니었던 것이다. 여권사진 속의 얼굴은 삶의 지향과 좌초한 꿈이 뒤범벅되어 상당히 어설픈 표정을 하고 있었다. 사십 대 중반이라는 세월을 좌충우돌하며 걸어온 듯한 얼굴. 안존한 여인이라고 말하기에는 드센 기운이 있고, 중년의 아줌마라고 두리뭉실하게 말하기에는 나이의 편안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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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자화상> , 1928년추정,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 소장


나혜석( 1896-1948)의 자화상을 보며 움칠 했다. 나는 저 얼굴을 어디서 보았을까. 배경 속으로 들어가는 음울한 표정은 어둡고 무겁다. 나혜석의 원래 모습과도 다른 이 자화상을 보는 내 마음은 몹시 아렸다. 절망 속에 침윤된 저 표정은 너무 지쳐 배경 밖으로 영원히 나올 수 없을 것 같다. 이 그림을 그릴 즈음 나혜석은 통한의 글을 남겼다.


사 남매 아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에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이었더니라. (나혜석의 글 중에서)


나혜석사진.jpg <나혜석 사진>

말년에 행려병자로 객사한 나혜석은 조선의 여성이었기에 겪어야 했던 단단한 제도와 관습의 벽에 부딪쳐 나동그라진 가여운 새 한마리였다.


국어 어원을 배우며 얼굴이 ‘얼의 골(짜기)’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렇지’ 했었다. 그리고 미우나 고우나 내 얼굴을 사랑하며 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증명사진 속의 낯선 얼굴은 그런 내 신념을 보기 좋게 배반하였다.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숱한 기억들이 기미처럼 피어올랐다. 내 용모가 변변치 못하여 생의 갈피에서 맛 본 신산(辛酸)한 과거를 다시 살게 한 것이다.

이십 대에 데이트 신청을 못 받으면 나는 내 외모가 시원찮아서 그러려니 하였다. 이 글을 쓰는 순간 이십 대에 내가 그렇게 힘들었던 것도 외모 때문이었을 것만 같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인생의 고뇌가 어쩌고 했던 것만 같다. 신은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믿게 만드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이들은 작은 몸짓으로도 주위를 감동시켰다. 노력으로 안 되는 것이 어디 외모 뿐이랴마는 이십 대의 내 젊음은 난공불락의 벽 앞에서 번번이 좌초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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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짚모자 자화상> , 1887, 19*14, 미국 디트로이트 미술관


고흐의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은 오랫동안 나의 방을 장식했던 그림이다. 이 자화상에는 자본주의가 무르익어가는 유럽 사회에 매끄럽게 적응하지 못하던 화가의 내면이 담겨 있다. 그 시대의 굴레를 넘어 삶과 예술에 정직하고자 애썼던 화가의 갈망은 현실의 삶과 불화할수록 짙어지는 노란색 속에도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노란색의 파노라마를 보노라면 내 가슴이 뻐근해진다. 그렇게 편안하지 않았던 고호의 얼굴이 이제 보니 증명사진 속의 내 얼굴과 닮아있는 것이 아닌가.


한창 우러르는 대상이 많았던 이십 대에 존경했던 분의 노년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본 적이 있다. 그때, ‘사십 대가 넘은 얼굴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통념이 무색하게 실제 면모와는 다른 경우가 많았다. 특히 선천적으로 외모가 좋지 못한 분들의 이지러진 인상을 볼 때는 치열했을 자기 연마의 수고를 무색게 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원판불변의 법칙’이라고 했던가. 그때 나는 외모로 사람을 보는 방식을 거두어들였다.

피천득의 수필에 ‘남의 아름다움을 부러움 없이 바라보며’라는 대목이 있다. 그 글이 내게 준 교훈은 내 용모가 부족하다고 남의 아름다움을 인색하게 보지 말자는 것이다. 첫인상이라는 것, 외모가 약한 사람은 이 과정의 불리함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첫인상이 좋았던 사람과 만남이 거듭될 때, 외모가 마음에서 깎여져 갔던 경험을 생각하면 첫인상은 대인관계의 첫 관문을 순조롭게 하는 역할이 가장 큰 것 같다.


내가 외모에 가장 덤덤했을 때는 삼십 대가 아니었을까. 오롯이 출산과 육아로 보낸 그 시기, 나는 생머리를 고무줄로 묶고 예사로 다녔다. ‘엄마’라는 신분으로 어줍은 내가 생명의 담지자가 되어 이 세상에 성큼 들어선 것이다. 아이의 존재는 내 외모를 업그레이드시켜 주었다. 외출 차림이 좀 어수선할 때도 아기를 고운 처네에 업고 나서면 누추함이 사라졌다. 아기 몸무게가 늘어날수록 내 얼굴도 빛났다.

아기를 처음 데리고 나갔을 때 봄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 처음 알았다. 제주의 봄은 밭담으로 두른 구멍 숭숭 난 검은 현무암까지도 합세하여 노란빛을 뿜어대고 있었다. 내 외모 따위가 무슨 대수랴, 아기가 나날이 커가고 세상이 온통 봄빛으로 출렁이는데.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르, 엄마라는 칭호는 내가 받은 최고의 작위였다.


40대에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왔다. 무난하게 적응하리라 믿었던 딸아이는 생일파티 초대에 단 두 명의 친구를 데려왔다. 아둔한 나는 카펫을 새로 장만하고 예쁜 컵도 몇 개 더 구색 맞춰 사면서도 아이의 상황을 살피지 못했다. 열 사람 남짓의 음식을 준비한 엄마를 민망하게 보는 아이의 눈길이 가슴을 후볐다. 매사에 아이는 노심초사하며 힘겹게 적응하는 눈치였다. 그즈음 우리는 집을 마련하느라 생활비를 줄였고, 시댁의 경제적 의무도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때 나는 작은 일에도 화를 많이 냈다. 그런 상황들이 모여 내 얼굴로 나타났을 것이다.


딸이 커서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바야흐로 성형천국 시대가 온 것 같았다. 딸 친구 엄마들은 성형은 고교 졸업사진 찍기 전에 해주는 게 좋다고 서둘렀다. 대학 입학식에 가 보니 여대여서 더 그랬는지 신입생 얼굴이 반은 부어 있었다.

“예쁜 용모가 성격도 좋다는 통계도 있잖아. 앞집 뒷집 리모델링하는데 혼자 낡은 주택에 앉아 있을 거야? ”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어두웠던 내 이십 대가 오버랩되면서 외모로 불이익을 받는 일이 대물림될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인턴 유학에서 귀국하는 시기에 맞춰 성형외과 예약을 잡고 상담만 받아보자고 병원에 겨우 데려갔을 때, 홍보물 사진을 보며 딸은 몹시 화를 냈다.

“엄마는 저런 얼굴이 좋아? 내 얼굴이 어때서, 내가 못생겨 보여? 엄마가 되어서 그렇게 자신감 없으면 난 어쩌라고? “

요즘 말로 ‘좀 억울하게 생긴 외모’로 당당하게 출근하는 딸을 보며 나의 외모 타령은 자존감이 약했던 성장기와 관련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서산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 삼존상, 백제 후기


지금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는 거의 사라졌다. 삶의 질을 높이는 다른 가치들에 내 눈이 가 있어서 인가? 어쩌면 이솝의 신포도 우화 같은 심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 여웃돈이 있다 해도 얼굴 성형 같은 곳에 투자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최우선 되지 않은 일이 성사되는 경우는 경험상 없었으니까.


고흐는 사십 대 이후의 자화상을 못 그리고 별이 되었지만 , 두 아이의 엄마인 나는 미추의 구별이 조금은 애매해지는 나이로 들어섰다. 이젠 서산 마애불 가운데 부처님의 넉넉한 웃음이나 얼굴에 새기고 싶다.


정면으로 보는 마애여래 삼존상


그래도 딸이 살면서 알게 모르게 겪게 될 불이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지금 이 순간도 간절하다. 출중한 외모 덕에 좋은 배우자를 만난 친구 딸을 부러움 없이 축하하는 마음이 못 되는 한 내 고민은 계속될 것이다.

내 가까운 친구는 고단한 삶을 살아온 흔적이 입가 팔자주름으로 새겨져 보는 내가 민망할 정도였다. 어느 날 팽팽해진 입가와 싹 펴진 얼굴로 나타났을 때는 인상이 확 달라 보였다. 스스럼없는 사이라 “야, 돈이 좋기는 좋다”하며 같이 웃었다. 그 친구가 지나온 내적 고통을 어느 정도 알기에 화사해진 얼굴에 아낌없는 축하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하느님 보시기 좋았다”가 별 건가. 다림질된 옷이 보기 좋듯 내 눈에 보기 좋으면 남 눈에도 좋을 것이다. 외국에서 성형관광도 오는데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는 성형천국에 살면서 그 기술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내 딸과 나, 이것은 기쁨일까 슬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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