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래 1
이십 대 초반, 친구가 다시 태어난다면?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준비해 둔 것처럼 ‘가수’라고 했다. 내가 되묻는 질문에 친구는 ‘예수’라고 해서 내 기를 죽였지만 지금도 그 대답은 변함이 없다. 노래에 대한 선망은 꽤 오래전부터 인듯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합창대회 나갔던 일을 세세히 기억한다. 유니폼으로 지정되어 생전 처음 사 신었던 빨간색 범표 운동화며 해가 뉘엿거릴 때까지 연습하던 직원실 옆 정갈했던 5-1반 교실, 지휘하던 선생님의 손이 하늘을 치켜들 때, 까만 니트 겨드랑이에 바늘구멍만큼 속옷의 빨간 빛깔이 어른거리다가 손을 내리면 사라지던 정황도.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음악책에 수록된 노래는 지금도 거의 다 부를 수 있다. 중학교 1학년 늦가을 현제명의 <그 집 앞>을 배우며 초등학교 때 짝사랑했던 아이를 떠올리던 일. 고3 늦가을 음악시간 때, 이렇게 노래 부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애국가도 정성을 다해 부르던 일. 그때 인도네시아 민요 <붕가 왕 솔로>를 천상의 목소리로 부르던 친구는 목원대 음대를 갔다고 들었다. 목사 집안의 아이들이 노래를 잘했다.
가곡을 꽤 좋아하다가 어느 날 대중가요만 못한 가곡이 꽤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특히 소월시에 곡을 붙인 경우가 내게는 그랬다. 가곡 <못 잊어>나 <진달래꽃>보다 양희은이 부른 <산유화>(남인수 노래)나 <부모>(유주용 노래)가 더 심금을 적셨다. 대학가요제 출신 그룹사운드 활주로가 부른 <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도 소월시를 그대로 느끼게 해 주었다. 정미조의 <개여울>은 나이를 더할수록 더 좋아지는 노래다. 김남조 시 <그대 있음에>를 가곡으로 아쉽게 듣다가 송창식이 대중가요로 불렀을 때는 속이 다 시원하였다. 정서적 울림에서 가곡의 한계를 느낀 대표적 곡이기도 했다.
소월시가 대중가요로 더 익숙한 것은 소월 시의 운율과 내용이 대중의 일반 정서에 더 맞기 때문일까.
대전에서 역사논술교사로 일할 때 몇몇 지인들이 의기투합하여 < 놀자와 21세기> 모임을 만들었다. 바쁜 일상을 여투어 부지런히 놀아보자는 뜻으로. 사춘기 아이를 둔 엄마요, 늦은 공부에 직업을 병행하느라 하느님 보러 갈 짬이 없었던 때였다. 그런 상황의 나를 살뜰히 나를 챙겨준 친구 K와 선배 덕에 그 모임에 합류할 수 있었던 것을 두고두고 고맙게 생각한다. 노래방에서 낡은 소파 위까지 올라가며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부르는 내게 ‘ 맨발의 대전 디바’라는 칭호를 준 후배와는 나이를 넘어서 친구가 되었다.
이네스 세단 감독 애니메이션,The Song, El canto, 2013
아르헨티나 감독 이네스 세단(1976~)은 노래의 치유기능을 8분자리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였다. 노래에 의지하여 막막한 상황을 넘어섰던 기억들, 양성우의 시에 곡을 붙인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이 나의 노래인 적도 있었다. 사회변혁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이십 대 중반의 추억이다. 거의 매일 퇴근 후에 거리로 나가 소위 운동권 노래를 부르며 가두시위를 했는데, 노래 자체에 취하면 시위 뒷열에서 움직이던 내가 어느덧 맨 앞으로 튀어나가서 동행한 친구가 황급히 나를 잡아당기곤 했다. 노래가 주는 선동의 역할을 체험하는 순간들이었다.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제 떠났다고/ 기나긴 죽음의 세월/ 꿈도 없이 누웠다가/ 나 이제 큰 강 건너 / 떠났다고 대답하라...’
사회과학을 통해 배운 변혁의 논리로 새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그 시대의 순진한 우리들.
한 때는 장기하의 팬인 적도 있었다.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딸이 구시렁거리던 노래가 어느 날 듣고 보니 대단한 노래였다.
달이 차오른다 가자
달이 차오른다 가자
달이 맨 처음 떠오를 때부터 준비했던 여행길을
매번 달이 차오를 때마다 포기했던 그 다짐을
달이 차오른다 가자
이 노래를 들으며 인생을 준비만 하다가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내밀한 불안을 들킨 것 같았다.
말을 하면 아무도 못 알아들을지 몰라
미리 겁먹고 벙어리가 된 소년은
모두 잠든 새벽 네시 반쯤 홀로 일어나
창밖에 떠있는 달을 보았네
하루밖에 남지 않았어 지금이 마지막 기회야
이를 놓치면 절대로 못가
달이 차오른다 가자....
이쯤에서 고백을 하자면 나는 연초마다 계획만 세우고 세모를 맞으며 회한에 떠는 삶을 오랫동안 살아왔던 것이다. 근 20년을. 보따리를 풀었다가 도로 싸기를 반복했던 편치 않았던 내 마음이 장기하 노래 가사 속에 다 들어있었다. 이 외에도 장기하 노래는 사회성과 대중 정서와 시대성을 두루 갖춘 노랫말과 접근이 쉬운 포크와 트로트를 결합하여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매력을 갖고 있다. 큰 딸이 즐겨 부르던 <싸구려 커피>는 한 때 내 18번으로, 랩 풍의 노래에 도전 한 내 용기의 가상함이 중년의 문턱을 넘어가는 지인들에게 선망이 되었다. 아, 이쯤에서 10년 전 초여름에 <장기하와 얼굴들> 공연 예약을 하고 기다리던 중 암수술을 받게 된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 공연을 앞두고 나는 극심한 고통으로 맹장인 줄 알고 응급실로 갔다가 바로 수술대에 올랐고 긴 항암치료과정을 밟게 된 것이다.
그 후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는 내 삶에서 조금씩 멀어져 갔고 그 자리에 국카스텐이 쳐 들어왔다. <나가수>에서 국카스텐이 편곡해서 부른 <한 잔의 추억>은 50년 전 노래를 과거에 저당 잡히지 않는 현재의 노래로 만들어주었다. 국카스텐 보컬 하현우가 부른 <The saddesting>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했고, 그의 <봄비>는 내가 들은 여러 버전의 봄비 중 최고였다.
국카스텐의 음색에는 판소리 창에서 느꼈던 한과 슬픔의 가락이 들어있다. 그 가락을 현대음악으로 편곡해 청승맞거나 늘어지지 않고 내 마음을 지긋이 끌어당겼다. 김소월의 시처럼.
전인권의 <걱정 말아요 그대>를 들으며 배겟머리를 적시던 때도 있었고 퀸의 보컬 프레드 머큐리의 음성은 지금도 나를 떨게 한다. 올해 초 아버지 산소에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가족 일행의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프레드 머큐리의 노래를 듣는 순간 마음이 온통 노래에 쏠려 당혹했던 기억은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다. 세상사까지 갈 것도 없이 아직까지 내 마음조차 불가해한 것 투성이다.
*산담: 제주에서 말이나 소의 침입을 막으려고 무덤 주위를 쌓는 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