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배 <봄잠>
어머니가 넷째 동생 낳는 장면 보려고 창호지 문살에 눈을 박았는데 해산 과정이 너무 길었다. 잠깐 쉬려고 눈을 잠시 떼었는데 간장이 풀려서인지 슬몃 잠이 들었다, 유리창을 뚫고 목덜미를 간질이는 봄볕에 겨워서.
그때는 봄이 오면 온통 잠에 취해 여기저기서 꾸벅꾸벅 졸아댔다. 무던한 동생은 배가 보름달 되도록 밥을 먹고 포만감에 겨워 거름더미 옆에서도 졸았다. 돗통시(돼지우리)에서 꺼낸 거름은 포슬포슬 말려 보리씨를 섞어 파종하는데 그때 운송수단은 윗동네 순덕이 아버지의 조랑말이 끄는 '구루마'였다. 그게 마차라는 표준어를 갖고 있다는 것은 학교에 가서야 알았다.
발육이 부진했던 난 새 학기가 시작되는 봄이 제일 힘들었다. 오죽 답답하면 어머니가 동생들 몰래 오골계 백숙 한 마리를 내 방 책상 위에 냄비 채 놓고 다 먹을 때까지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당부했겠는가. 봄 졸음에는 영양이 부족했던 원인도 컸으리라.
고등학교 때도 새 학기가 시작되면 아침에 일어나기가 죽을 맛이었다. 무릎길이 플레어 교복 치마를 너펄거리며 비호처럼 교문을 통과할 때 교문을 지키고 섰던 선배 언니는 웃으며 “ 야 좀 일찍 다녀” 등 뒤에서 외치고 그날 임무를 마친 듯 해산했다.
어머니는 집안일하랴 농사 지랴 늘 치맛자락에 불이 났는데 어느 봄비 오는 날 낮잠을 주무셨다. 그날은 일요일이라 올망졸망 여섯 아이들이 부산하게 놀고 있는데 한 숨 자고 난 어머니가 갓 짜 온 유채기름을 프라이팬이 부으며 감자튀김을 했다.
- 내가 낮잠 잔 값으로 뎀부라 햄져이( 튀김 하는 거야)
낮잠은 당시 어머니에게 호사요,금기사항이었던 것이다.
아기를 낳아보니 젤 이쁜 때가 잠잘 때 모습이었다. 물처럼 투명한 볼을 가져서 물 애기 인가, 제주에서는 돌이 안 된 아기를 ‘물 애기’ 라 불렀다.
아기가 자는 동안 엄마라는 사람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면 기저귀도 빨고 설거지도 하고 이유식과 요리도 해두어야 했다. 두 돌 쯤된 아기를 재우다가 내가 먼저 잠든 적도 있었는데 나른한 봄날일 것이다. 시이모님이 들러 마루를 걸어 다니는 아기에게 물었단다.
- 엄마는 어디 갔니?
- 엄마는 나 재우고 있어요.
우리 집 고양이는 한 나절의 반은 잠으로 보낸다. 사고 치며 온갖 곳을 후벼 다니다 지치면 내 주변이나 침대 시트 위로 가서 자는데 동물도 잘 때가 젤 예쁘다.
잠, 보약 같은 잠.
난 마음이 헝클어지거나 화가 날 때는 허둥지둥 침대로 들어가 만사 제쳐두고 우선 잠을 청한다. 못 자고 뒤척일 때도 있지만 다행히 난 잠에 빠져드는 시간이 비교적 빠른 편이다. 한잠 푹 자고 나면 신경이 부드러워지고 격한 감정이 다소 가라앉아 있다.
고양이의 깊은 잠을 무심히 바라보며 이러저러 상념에 젖었다. 강요배는 < 봄잠>으로 봄날 고양이 졸음을 노란 댕유자와 배치하였고, 요절한 시인 이장희(1900-1929)는 고양이 생리에 대한 관찰을 시 한 편으로 평정했다.
봄은 고양이로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香氣)가 어리 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生氣)가 뛰놀아라.
- 이장희 < 봄은 고양이로다>
권진규의 <휴식>, 테라코타, 27*23.5*16, 1967, 가나문화재단 소장
서울시립미술관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회에서 본 조각이다. 갈래머리 소녀가 팔에 걸친 빰이 짓무르게 자고 있는 모습, 잠이 부족한 학창시절에는 누구나 경험했음직한 장면이다. 제주 속담에 "가시낭에 걸어져도(가시나무에 몸이 걸려도) 잘 나이" 라는 말이 있다. 이 시기에 잠 만한 휴식이 어디 있겠는가.
마리 바시키르체프(1860-1884)의 <sprlng>
우크라이나 출신 여성 화가의 눈에 잡힌 봄이다. 땔감을 하러 간 젊은 여성이 벚나무 아래서 졸고 있다. 나무에 물이 올라 꽃망울이 터지고 연두가 초록으로 진입하며 생명력이 분출하는 봄을 화가는 이렇게 포착했다. 뻣뻣한 앞치마 표현이 다소 걸리지만 봄을 나무꾼의 고단한 잠에서 포착한 작가의 시선 만으로도 요절한 그녀에게 주어진 천재화가라는 말에 수긍하게 된다. 이 그림은 화가 23세쯤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물오르는 성장기에 나는 영양부족으로 얼굴에 버짐을 달고 살았다. 뭉크의 <사춘기> 그림 주인공처럼 빈약한 몸이었으니 잠으로 영양보충을 대신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