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듣는 92년 장마, 종로에서

- 노래 2

by 양경인

휴식을 취하려 침대에 누워 무심히 유튜브에서 ‘2020년 봉하 음악제’를 듣고 있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겨울나라>가 흘러나온다, 1980년대를 소환하는 노래였다.


꽁꽁 언 강물에 배를 띄워보니

에라 등신아 배가 가니? 음 음 음

꽁꽁 언 장작에 불을 피워보니

에라 등신아 불이 붙니 음 음 음

강을 깨어 고기를 잡고

마른풀 찾아 불을 피우고

너와 내가 소금이 되면

이곳에도 살 수 있겠지

겨울나라 이 추위도

언젠가는 사라질 거야


무겁지 않은 곡이라 잠에 빠져드는 중이었다. 자장가로 듣던 나를 일어나게 만든 건 가수 알리가 부른 정태춘의 “92년 장마, 종로에서”였다.

92년이라면 나는 첫 애를 하도 힘들게 낳아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때다. 노랫말은 그때 종로 이야기였다. 레닌 동상이 쓰러지던 날 결혼을 하고 사회의 흐름이 어디를 향하는지 방향을 못 잡을 때 나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느라 세상과는 거의 단절상태였다,


역사는 어떻게 전수되고 이어지는가. 알리의 노래를 들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알리의 특출한 음악성이 한몫을 했지만 1984년 생 가수가 8살에 유행한 노래를 서른 넘어 부르며 ‘억울한 감정이 맨 처음 들었다’고 말한다. 다시 한번 노래의 힘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다.

정태춘의 사회변혁 의지가 얼마나 큰 사람인 가는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나는 그와의 만남을 1995년으로 잡고 있다. 그해 여름, 남편이 다니던 한국통신은 민영화의 몸살을 앓고 있었다. 보라매공원에서 대 집회가 있던 날, 제주에 살던 우리 가족 4명은 비행기를 타고 집회에 참석했다. 공기업으로 폐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민영화는 곧 통신의 자본화로 가는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보라매를 뒤덮은 깃발의 파도 속에 나는 고등학교 이후로 느껴보지 못했던 소속감을 느꼈다. 비로소 내 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 그때 독려하기 위해 무대에 나온 정태춘을 보았고 그의 첫 멘트를 아직도 기억한다.

“ 나는 저 깃발만 보면 마음이 설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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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Vlad Chețan)

(사진: Vlad Chețan)

정태춘의 시대는 스러져 가고 젊은 친구 알리가 그 곡을 다시 해석하고 부르고 있다. 우리가, 내가 통과한 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역사는 그렇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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