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배의 <폭풍설>

- 리얼리즘이란?

by 양경인


해일처럼 덮치며 휘몰아치는 하늬바람 속에도 도톰한 진초록 잎사귀를 방벽 삼아 버티는 동백나무. 학고재 갤러리에서 이 그림을 보며 시고모님 댁 갔던 날이 생각났다.

시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고등교육을 받아 생물교사가 되었지만 초등학교도 못 다닌 두 살 위 누나는 물질을 하며 제주시 용두암 근처 한두기 마을에 살고 있었다. 그 동네가 바다에 의지해서 먹고사는 박한 동네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파도소리를 안고 사는 초가집에는 마당까지 바닷물이 차도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시고모님 집의 며느리도 해녀였다. 내가 겨자색 한복에 자주색 두루마기를 입고 인사 갔던 날도 며느리는 바다에 나갔고 시고모님은 미지근한 온돌방에서 아기구덕에 누운 손주를 흔들고 있었다. 옅은 갯비린내가 집안에 떠돌고 벽 틈으로 바람이 스며 오스스 한기를 느낀 나는 어서 자리를 뜨고 싶었다. 결국 조카며느리와 한없이 얘기하고 싶어 하는 시고모님의 표정을 모른 체하고 서둘러 그 집을 벗어났다. 집 밖의 갯바람은 더 앙칼지고 사나웠다.

용두암 구름다리 옆으로 바다를 바짝 끼고 야트막하게 눌러앉은 초가집들은 그때 제주시에서도 익숙하게 보는 정겨운 풍경이었다. 그러나 내부로 들어갔을 때는 바다와 몸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단하고 핍진한 모습과 맞닥뜨렸다. 농사를 주로 짓는 친정 쪽 사람들의 집과는 다른 스산함이 집안 전체에 감돌았다.


강요배 <폭풍설> 앞에서 그날의 정황이 불쑥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 한 번 받아보지 못한 삶의 모습도 화가의 예리한 시선과 따뜻한 마음과 만나면 새로워진다. 강요배의 풍경도 그 땅 사람들이 누적된 삶의 흔적이 자연의 모습으로 포착된다.

<폭풍설>에는 사람이 없지만 거친 눈보라 속에 사람이 보이고 , 제주 자연의 형질을 살려내는 종이 붓의 거친 질감은 땅의 내력과 역사까지 드러내며 나를 휘감아 추위에 떨게 했다. 몸속 깊이 스며드는 눈바람 속에서 사람과 자연과 역사가 서로 이어져 낳고 기르며 연대를 이루는 것의 이치를 생각하게 한다.


“풍경은 사연 있는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나는 제주를 다른 사람들처럼 관광객의 시선으로만 볼 수는 없었다. 역사를 이해하고 보면 어느 동네에나 있는 앞바다도 달라 보인다. 그 공간에 스쳐 간 시간과 사연과 내력이 지층처럼 겹쳐서 보인다. 그때부턴 호박이나 옥수수나 진달래, 보리밭 등 사소한 것들이 내겐 굉장히 재미있어지는 거다.”(작가 인터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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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배의 <폭풍설>, 2018, 캔버스에 아크릴, 112*162


저런 바람과 눈 속에서 살아온 제주 사람들의 심성이 거칠기는 하지만 모질지 않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전국을 떠돌며 만난 숱한 사람들, 특히 어르신들 중에 제주 할머니들처럼 어진 품성을 가진 분을 거의 못 만난 것은 나의 고향 바라기 때문일까.


강요배, <메밀밭-달>, 캔버스에 아크릴, 97*145.5, 2005


나를 키운 것도 팔 할이 제주바람이었다. 내 세포 속에는 한여름의 후덥지근한 마파람과 칼 같고 맵찬 영등 바람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내가 태어나던 해는 사라호 태풍이 제주 땅을 휩쓸고 갔다. 그해 여름 새댁인 어머니는 거름으로 쓸 불치를 메밀밭으로 날랐다. 어머니는 사라호 태풍을 지금도 악몽처럼 말한다.

" 여름철 너를 임신한 몸으로 볕이 과랑과랑 하는 더위에 메밀밭에 뿌릴 불치(짚을 태우면 나오는 재) 거름을 등허리에 져 나르려면 죽을 지경이었지. 오죽하면 깅이(게)도 음력 칠월이 되면 메밀 거름 지지 않으려고 등 곯아버리고, 메뚜기도 다리 빠진다고 했을까. 그래도 불치 지고 밭으로 갈 적엔 풍년이 눈앞에 삼삼했는데 생물은 손에 쥐어봐야 안다고 추적 전날 태풍으로 다 쓸어버린 거야. 시어른들이 '흉년에는 밭 하나 팔려고 말고 입 하나 덜어라'는 말을 할 때였어. 그런 상황에 네가 태어났으니 젖을 제대로 먹일 수가 있나, 산모인 나도 배고파 잠을 못 자고 동짓달 밤이 그렇게 긴 것을 처음 알았지"


내 기억이 선명한 최초의 태풍은 12살에 본 빌리호 태풍이다. 갑자기 범람한 내창(시내)에 동네 할아버지가 휩쓸려 시체도 못 찾았던 장대비를 동반한 태풍이었다. 신학기를 앞둔 2월 겨울방학 때쯤 오던 영등 바람 때 길을 걷자면 앞으로 걷고 있는데 몸은 뒤로 나가 일보 전진 이보 후퇴하면서 목적지까지 도착하면 평소의 2-3배 시간이 걸리곤 했다. 그렇게 태풍은 매해 제주를 강타했지만 젊음이 한창이던 20대에는 그 바람 속에서 사람들도 만나고 놀러도 다녔다. 제주중학교에서 숙직하는 애주가 선배를 위문한답시고 친구와 술병 들고 찾아가던 날, 300년 고령의 팽나무가 뿌리 채 뽑혀 가로누워 있는 것을 보고도 우린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항>, 2002, 캔버스에 아크릴, 116.8*91


강요배의 자연화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장면이 공존하는데, 그 외적 형상에 내면적 심상이 얹히면서 강요배의 리얼리즘이 나온다. 그래서 그가 그리는 항아리는 태고의 흙과 불과 물의 적절한 조합 그리고 장인의 마음결이 함께 스며드는 것이다.

강요배 그림은 제목도 한몫을 한다. 저 그림을 '독'이라 하지 않고 국어사전에 없는 '항'이라 한 것은 제주에서는 저런 큰 항아리를 '항'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집안 맛의 원천은 장맛인데 저런 항에 메주를 담가야 장맛이 좋으니, 어느 집이나 살림을 갖추려면 저런 큰 항 두어 개는 있어야 했다. 늠름하게 잘 구워진 항아리는 그 자체로 숨을 쉬며 정화, 소독작용을 일으켜 탁한 구릉 물(못물)도 먹기 좋은 식수로 만들어준다. 우리 집도 물을 담는 '물항'과 장을 담는 '장항'이 따로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항아리가 만들어졌겠지만 저 '항'은 영락없이 제주의 산천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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