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에 살 때 바다를 일주일 넘게 못 보자 금단현상 비슷한 증세가 왔다. 갈증을 해소하려 찾아간 함평 바닷가는 갯벌이 끼어 있어 바다의 신선한 바람은 수평선만큼이나 멀리 있었다.
몇 달 후 광주에서 일을 보고 돌아오는데 시외버스 라디오에서 익숙한 곡조가 흘러나왔다. 남자 심방(무당의 제주어)이 부르는 무가였다. 순간 낯선 고장에 간신히 적응하고 있는 내 세포가 반란을 일으켰다. 곡은 금방 끝나고 아나운서의 “ 전복 씨 뿌리는 노래였습니다” 멘트가 나왔다. 울컥한 감정에 황급히 버스에서 내렸는데 버스 터미널 공터 옆에 친정집 우영팟(텃밭)에서 보던 노란 꽃이 피어있는 게 아닌가. 제주에서 동지나물이라 부르는 배추꽃대가 주변의 매연과 먼지를 뒤집어쓰고 흔들리고 있었다. 꽃샘추위 먼지바람 속에서 핀 그 꽃을 보니 기가 찼다.
버스에서 무심히 흘러나오던 나직한 음성의 무가를 들는 순간 다 내려놓고 고향 제주로 돌아가고 싶었다. 국어시간에 배운 오영수의 단편 <갯마을>의 주인공을 이해할 수 있던 것도 그날의 경험 덕이었다. 주인공 해순도 바다와 더불어 성장한 여성이었다. 파도 소리 환청에 시달리던 소설 속의 해순은 아이가 없으니 갯마을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두 아이의 엄마인 나는 바다가 막힌 소읍에서 아이들과 서서히 적응해갔다.
우리 집은 어업을 하지도 않고 바닷가 마을도 아니었다. 하지만 걸어서 10분 남짓 거리에 수평선이 보이는 짙푸른 바다가 있다는 것이 내 성장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고향을 떠나서 알았다.
<서우젯소리>는 원래 '멸치 떼 후리는 소리'였는데 여러 버전으로 가사를 달리하여 부른다. 그날 라디오에서 들은 '전복 씨 뿌리는 노래'는 영등굿의 한 부분으로 서우젯소리에 가사를 붙여 부른 것이었다. 서우젯소리는 제주 4.3으로 일찍 고아가 된 친정어머니 한숨소리이고 가계를 책임지며 살아온 바다에 목숨을 맡긴 해녀와 어부들의 노동요이다.
제주에서는 꽃샘추위를 '영등할망 들어왔다"라고 했다. 영등신이 제주에 머무는 보름 동안은 예측할 수 없는 날씨 변덕으로 강추위가 온다.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에 서북 계절풍을 거느리고 제주 전역을 돌아다니며 밭에 오곡 씨를 뿌려주고 바다에는 전복, 소라, 해초 씨를 뿌리고 돌아간다. 영등신이 지나가는 바닷가에는 조개나 소라 등속이 모두 껍질이 빈 채로 남게 되는데, 이는 영등할망이 가족을 데리고 와 휘저어 다니며 모두 까먹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기간 제주에서는 농사도 바다 일도 다 쉬고 영등신을 정성으로 모시고 영접해서 보내는 의식, 영등굿이 여기저기서 열린다. 제주사람들은 인력으로 막아낼 수 없는 자연의 거친 생리를 외경으로 대하며 적응해나갔다. 하지만 어업과 무관한 우리 집은 이때가 6남매의 입학 날과 거의 맞물렸다. 변변한 외투가 없어서일까, 나의 초. 중. 고. 대학까지 입학식은 몹시 추웠다는 기억밖에 없다.
옛 칠머리당 영등굿에서 춤 장면 (1981년, 사진 김수남)
영등굿에 참가한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어깨춤을 추며 부르는 노래도 서우젯 노래이다. 이 노래 가락이 하늬바람 갯바람에 실려 나의 성장을 도왔을까.
어혀여차 소리에다 서우젯소리로 놀고 놀자
아야 아야아 어허영 어허요
요배를 타면은 어데로 나갈까
아야 아야아 어허영 어허요
산으로 가면 산신령이요, 바다로 가면 용궁 서낭
썰물이면 동해바다, 뱃물이면 서해바다.
아야 아야아 어허영 어허요
이를 말은 이르고 가고 쉴 곳에선 쉬고 가자
아야 아야아 어허영 어허요
요왕이 놀면 선왕도 놀고 선왕이 놀면 요왕도 논다
아야 아야아 어허영 어허요
하고픈 말 한 아름 싸 한 보름 씩 놀고나 가자
김녕리 영등굿에서 좁씨 뿌리는 해녀( 사진 송기태)
마른 몸피의 해녀 할머니가 숙연한 표정으로 바다로 달려가고 있다. ‘씨드림'은 영등신이 해녀 채취물의 씨를 뿌려주는 모의 행위로 굿의 말미에 해녀들이 좁씨를 바구니에 담아 해안가를 뛰어다니며 씨앗을 뿌리는 절차다. 좁씨가 해산물의 씨앗이 되어 바다가 풍요로워지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심방이 미역·전복·소라 등 씨를 많이 주고 가도록 빈 뒤, 요란하게 악기를 치는 가운데 해녀들이 바닷물에 들어가 여기저기에 좁씨를 뿌린다.
< 해녀 노래>
어떤 사람 복도 좋앙 앚아 살리(앉아서 편히 사는가)
우리네는 바람이랑 밥으로 먹곡(먹고) 구름으로 똥을 싸곡
물절이랑 집안 삼앙(파도를 집 삼아) 부모 동생 놔 두곡
오늘날도 물에 든다.
물절 또랑(파도 따라서) 배질 허기 선주 사공 놀음이곡
밧데 들렁(밭에 들어가) 밧 잘 갈기 농부 아비 놀음이곡
붓대 들렁(들고) 글 잘 쓰기 선비의 놀음이여
낭도 늙엉(늙어서) 고목 되면 놀단 생이(놀던 새) 아니 오곡
물이라도 몱아지민(맑아지면)놀단 고기 아니 놀곡
이내 몸도 늙어지민 물질하기 어렵고나
운좋게 2018년 4.3 추모제 70주년 행사로 미리 제주 내려갔다가 친정어머니와 칠머리당 영등굿 송별제를 보게 되었다. 어머니가 소리가 좋다고 칭찬하신 이용옥 심방이 주재하였다. 이용옥 심방은 칠머리당굿 보유자 김윤수 심방의 부인으로 전통문화 예술인의 긍지와 사명감으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영등할망은 바람의 신이고 영등굿은 땅의 풍년을 기원하고 바다를 풍요롭게 하는 바람의 축제이다. 제주에 사는 동안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영등굿이, 그 속의 무가가 시도 때도 없이 마음을 흔드는 현상을 융의 심리학 용어로 ‘집단 무의식’이라 하던가. 나도 모르게 깊숙이 자리 잡은 정서의 뿌리들, 이제는 멀지 않은 곳에 (요즘 제주행 비행기 삯은 KTX 가격보다 싸다) 고향을 안고 언제라도 갈 것처럼 벼르며 25년째 떠돌며 살고 있다.
* 참고 책: "제주칠머리당영등굿" (문무병 외,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