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윤 <봄의 소리>
60대의 봄이 요한 시트라우스의 왈츠처럼 짠 짜라란 짜라란 짜라란 짠짠~ 나타나길 기대하지는 않지만 산수유의 봄빛 정도는 누릴 수도 있는데 올 봄은 여태 산에 가지도 않았다.
올해, 2022년 봄은 왜 내게 기척이 없는가 답답하던 중 판화가 오윤의 <봄의 소리>가 생각났다. 목에서 피울음을 내는 새의 힘으로 꽃잎은 봄의 개화 시기를 알고 발그레하게 변하고 있다. 새의 목울대에서 나오는 울음의 양 딱 그만큼. 검은 새의 단순한 구상과 파르르 떠는 하얀 깃털, 검은 바탕이 물오르는 민트색 나뭇가지를 받쳐주고 있는 그림. 이 그림을 언제 처음 보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가슴이 메었다는 느낌은 생생하다. 내 이십 대의 봄이 생각나서였다. 나 자신도 힘들고 사회도 암울해서 하루하루 버티는 날들이 많았다. 홍시를 홍시라 못하는 괴로움. 언어의 억압도 무시무시한 폭력이라는 걸 그 시대를 예민하게 통과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무심히 듣는 새소리도 전령사 역할은 힘든 거구나 싶었고 시대마다 굽이진 봄의 처연함을 맞닥뜨린 것 같아 오열하고 싶었지만 저 그림 앞에서는 눈물을 삼켜야 할 것 같았다.
1980년대에 맞이한 이십 대에는 봄이 언제 오고 가는지 몰랐다. 직장 버스를 타고 귀가하다 길가 집 울타리에 등불처럼 피어나던 목련이 못 견디게 싫었고 , 일찍 결혼으로 들어간 친구의 시골집 뒤란에 핀 진홍빛 복숭아꽃은 왜 그리 생경하던지. 이제 생각하면 그때 내 마음이 온통 잿빛이라 봄의 기운을 받아들일 에너지가 고갈되었기 때문이었다.
강요배 <유채밭> ,53*72.7, 캠퍼스에 아크릴, 2013
다행히 아이를 키우면서부터 봄은 내게 행복이란 말을 처음 떠올리게 했다. 갓 걸음을 뗀 아이 손 잡고 걸으며 보았던 길가 유채밭에서는 숭숭 구멍 뚫린 현무암으로 두른 밭 담 사이로 노란빛이 튀어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봄은 각자의 방식으로 올 것이다. 나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새로운 일의 기대로 두근두근 했던 봄이 있었다. 겨울에 줄곧 입던 기모 스타킹을 벗으면 푸스스 떨어지는 살비듬은 내년 봄에도 계속될 것이다. 몸은 물기가 빠져나가도 줄어들지 않는 뱃살도 여전하리라. 그리고 큰 희망이나 바람 없이도 살아내야 하는 시간이 내 앞에 끝이 안 보이는 가로수처럼 늘어서 있다.
인간사의 격동이 무슨 소용이랴, 어쨌거나 시간은 간다. 그동안 겪은 내공도 있으니 이 봄 무심하게 흘려보내지는 않으리라.
내가 자란 제주에서 봄은 샛바람으로 시작됐다. 겨우내 눈 속에 있던 보리 싹이 날이 풀리며 얼굴을 내밀 때 그 여린 싹을 살랑살랑 어루만지며 보릿대를 키우는 샛바람을 어머니는 '본처 바람'이라고 했다. 없는 살림도 포실하게 만드는 조강지처 바람이라는 뜻이다. 제주시를 벗어나면 온통 초록물결이 일렁이고 이따끔씩 들리는 꾸쿠꾸쿠 멧비둘기 소리와 기척만 있어도 푸다닥 날아가는 들꿩 소리는 나의 성장 촉진제이기도 했다.
검은색이 가장 깊은 색이라는 걸 알려주는 그림, 작가 오윤(1946-1986)은 전두환 군부정권 때 저 세상으로 갔다. 1987년 6월 항쟁도 못 보고. 술을 너무 마신 탓이라고 한다. 어디 오윤뿐이겠는가, 서슬 퍼런 그 시기에 오윤은 봄의 소리를 이렇게 들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