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동안 얽힌 인연도 정리할 겸 100여 개의 연락처를 지웠다. 사라진 연락처는 사는 곳이 달라지면 서서히 잊히는 관계들이었다. 그동안 세 번의 이사가 있었다. 병원, 주민센터, 관리사무소, 성당, 도서관등에 관련된 번호들이 먼저 지워지고 핸드폰을 바꾼 3년 전부터 한 번도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없는 지인들의 번호도 일부 정리하였다. 그중에는 고인이 된 이들도 있었다. 묵은 서랍을 정리하는 담담한 기분이었는데, 딸아이가 졸업한 지 4년 된 대학교의 연락처를 지울 때는 가슴이 아렸다.
졸업 후 딸은 전공을 살리지 못했고 그쯤부터 집안 경제사정도 하강곡선으로 기울었다. 딸은 고졸 정도의 학력이 요구되는 일자리를 거치며 무수한 상처 속에 고꾸라지며 성숙해갔다. 어느 날, 자정이 임박해서 일터에서 돌아온 딸이 한숨처럼 토해내던 말
“엄마, 사람의 운명이 다 정해진 것 같아요. 이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평생 이런 삶을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아요...”
아이를 키우며 이 나라의 20대,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대다수의 젊은이에 내 아이도 속하리라고 생각해 보지 못했다. 딸이 전공을 못 살린 것이 사회의 탓은 아니었다. 딸은 실습 유학과정에서 사고로 지병을 얻어 직업적 제한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고, 더불어 내 삶의 계획도 궤도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그때, 사람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물줄기는 바꿀 수 있지만 큰 테두리의 숙명이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 딸은 뇌신경 일부가 손상되어 빛에 노출되면 거의 잠을 못 잤다. 그 고통을 밤새 지켜보던 날,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야 한다면... 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간 적도 있었다. 하느님은 내게 참 인색한 분인 것 같았다. 나는 딸을 낳아 ‘엄마’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칭을 얻게 되어 행복했고, 그런 만큼의 행복을 아이에게 주고 싶었다. 앞으로 딸은 세상을 어떻게, 무엇에 기대어 살아갈까 고민이 무거워지면서 내 몸에도 병이 퍼지고 있었다.
생의 의지는 본인 이외에 누구도 어쩔 수 없는 것이구나 생각하게 했던 아슬아슬한 순간들. 생존하는 것 이상의 진실은 없다는 것을 가르쳐준 딸의 긴 회복과정. 딸의 존재는 왜?라는 의문이 많았던 내 삶의 태도를 ‘녜'로 바꾸게 했다. 내 앞에 주어진, 그리고 일어나는 삶의 현상들을 그저 수굿이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연락처를 지우며 나는 딸의 지병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그래야 딸아이가 세상의 끈을 부여잡을 수 있으니까.
결혼 초 연락처를 무더기로 지운 적이 있었다. 이상을 추구하던 삶에서 내려와 현실주의자로 살겠다는 의지가 담긴 행위였다. 그때는 가치관이 같아야 된다는 것이 결혼 조건 1순위였다. 그 조건을 맞추었을 때 내 앞에는 가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혼생활은 가난에도 등급이 있다는 걸 알게 하였다. 정 없이는 살아도 돈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을 실감했던 적도 있었다. 돌바기 둘째를 처네에 업고 3살 첫째는 걸려서 친정집 가는 길에 우연히 여고 은사님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선생님은 양복 주머니를 뒤져 삼천 원을 아이들에게 주셨다. 그 삼천 원 때문에 난 선생님의 평생 제자가 되었다.
젊어서는 나도 주어진 조건을 벗어나 보려고 어지간히 바둥거렸던 것 같다. 자신의 노력이 아닌 것으로 잘 살아가는 친구들이 내심 미웠고 그 웅크린 마음으로 관계가 헝클어지기도 했다. 내 마음의 헐벗음을 드러내는 수많은 생채기들이 이십 대의 인간관계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이제 내 딸이 그 시간 속을 걸어가고 있다.
무언가를 채우려 애썼던 시간들은 언제부터 불행 쪽으로 기울기가 넘어갔다. 남편이나 아이들에 대한 기대가 어그러졌을 때, 내 삶이 헛된 것처럼 느꼈고 빈손을 바라보는 마음에는 황량한 바람이 머물렀다.
처음 집 장만했을 때는 그 안에 무얼 채울까 고민하였다. 아이들이 어려서 방 하나는 아이들 물품으로 채웠지만 나머지 공간을 채우기 위해 꾸역꾸역 가구며 물건들을 사들였다. 이제는 틈만 나면 무엇을 버릴까 고민한다. 긴히 필요치 않는 물건은 하나도 집안에 들이고 싶지 않다. 공간을 빈 채로 두었을 때 마음이 가벼워지고 여유가 생긴다.
최근에는 내가 속한 조직에 꼭 필요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욕심을 버렸다. 회의가 끝나 저녁식사를 마치고 2차 장소를 물색하는 일행을 두고 화장실에 다녀왔더니 모두 사라진 것이다. 내게 2차 장소를 귀띔해준 사람도 기다려준 이도 없었다. 혼자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려다 마음을 낮추고 일행 중 한 명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어디 있느냐고. 2차 장소를 찾아갔더니 일행 중에 먼저 간 줄 알았다고 반갑게 맞아준 사람은 딱 한 명이었다. 내 존재가 이만큼 희미했었구나, 살짝 충격이 왔다. 무심한 듯 어울리다 흩어져 돌아오는 길에 나는 또 하나를 버렸다. 남이 늘 나를 원할 것이라는 착각을, 난 그저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그만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딸에게 나름 처절한 이 사연을 말했더니 반응이 미미했다, 딸은 “ 엄마, 그동안 행복하게 살았네” 하는 것이 아닌가.
내 앞의 상황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힘이 생겼을 때 어떤 평화로움이 마음에 깃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지우며 살아간다. 앙앙불락 하며 잃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돌아보니 원래 없던 것이었다. 나날이 고장신호를 보내는 몸의 상태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정신의 젊음만은 유지하고 싶지만 이 또한 욕심이 될 것인가. 어쩌면 지금까지 나를 살게 한 것은 연락처를 지우듯 무언가를 버리고 포기할 수 있어서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