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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용 Aug 23. 2021

"장소와 장소상실"

서변마을에 자리한 남해군청사가 기존 부지에 신축, 확장함에 따라 46호의 집이 철거되고 그곳에 살던 주민들은 이주한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또는 이사 와서 떠나는 지금 이 순간까지의 장소기억. 

집, 상점, 골목과 같은 장소기억을 기록하는 연구를 올해 4월부터 진행하고 있다. 



먼저 이주민들에게 서변마을 위성 지도를 보여주며 자신이 살던 집을 짚어 보라고 하는데 자신의 집만 바로 딱 짚는 사람은 없다. 서변마을 사방을 지나는 '큰 도로'들을 살피고->'군청사'를 짚고->'남초(남해초등학교)'의 위치를 확인하고->'골목'을 찾고->'이웃집'을 짚어내면서->'자신의 집'을 짚는다. 서변마을이라는 장소를 기억하는 의식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다음 자신이 살던 집의 배치도를 그려달라고 부탁하면 역시나 자신의 집터만 그리는 사람은 없고, 이웃집과 도로 그리고 군청사와 공설운동장과 같은 큰 건물과 함께 자신의 집 배치도를 그린다.

이 배치도를 보면 집의 본체(살림집) 뿐만 아니라 '큰 바위', '성터', '마당', '화단', '창고'를 그렸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은 그리고 의미 없는 것은 그리지 않기에 이렇게 나온 위 요소들을 하나씩 질문해 보면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집에 대한 장소기억을 어느 정도 끄집어낼 수 있다. 


- 큰 바위 : 바위가 뒷 집의 경계에 물려 있어 큰 바위와 함께 경계 담을 쌓았다. "집 마당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 집에 오는 사람마다 바위 멋있다고 한 마디씩 했지. 집 안에 어떻게 이렇게 큰 바위가 있냐고.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오더니 중요한 바위이니깐 소중히 모시라고 하더라고. 나는 그런 거 믿지 않는데 우리 마누라는 보름날이나 명절 때 그 앞에 상 차려놓고 하더라고. 나도 항상 바위는 깨끗이 닦았지." 


-성터 : 남해 읍성(1459년 축조)의 흔적인 돌담이 남아 있었다. "높이 있었고 지금 보는 돌과는 다른 그런 크고 반듯한 돌들이 있었는데 누가 가져가는지 점점 돌담이 낮아져 버렸다."


-마당, 화단 : 마당 한 켠에 화단을 조성하려고 땅을 파보니 바닥 전체가 흙이 아니라 암반이었다고 한다. 이런 암반 위에 집에 있어서 "우리 집은 기운이 좋구나. 터가 좋은 곳이구나. 그래서 밖에만 나오면 집에 들어가고 싶고, 들어가면 나오기 싫고, 많이 벌지는 못해도 새는 돈이 없어 돈을 모을 수 있었구나."

서변마을은 읍의 중심지로 관청과 시장이 가깝고 조용한 주택지구로 오랫동안 거주한 분들이 많다. 이렇게 오랫동안 거주한 분들을 만나보면 그 장소 상실감이 크다. 이사 와서 며칠을 울었다는 할머니도 있고, 시장 보고 들어갈 때 예전 집으로 항상 발길이 갔다는 분. 집이 철거될 때 하루 종일 앉아서 보고 있었다는 분. 그 이주민의 상실감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집에 대한 좋은 기억을 말할 때에도 눈에는 눈물이 그렁거린다.

이주민들이 장소를 상실함으로써 오는 삶의 단절감을 얇은 끈으로라도 잇기 위해서 그들 터전에 대한 기억을 글과 이미지로 기록하는 것이다. 이 기억들이 새로운 군청사 건축 디자인에 씨앗이 되고 청사가 완공된 후에도 이들의 장소기억을 건물 한쪽에 전시하고자 한다. 그들의 삶이 사라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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