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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용 Nov 21. 2021

다시 찾는 공간

돌창고

Nomadland(2020)

스완키가 펀(프란시스 맥도먼드)에게 과거 자신이 봤던 제비 떼 나는 모습과 부화하고 떨어진 알껍질이 강 위에 떠다니는 모습을 회상하며 말한다.


"지금 이 순간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

"그때 느꼈지 이만하면 완벽한 삶이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스완키는 다시 그곳을 찾아 펀에게 동영상을 보내고 남은 친구들은 그를 추모한다.


매일 아침과 점심 같은 시간 같은 곳을 몇 년째 가고 있지만 갈 때마다 새롭고 다시 가고 싶다. 오늘은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 위로 갈대와 넝쿨이 우거졌는데 그 사이로 새끼 까투리가 종종종종 걸어가고 있었다. 고라니도 있고 멧돼지도 있고 작게는 도마뱀도 있고 참게도 기어 다니고 오래된 돌담 사이에는 족제비가 얼굴을 살짝 내민다. 매일 같은 길(하드웨어)이지만 그 곁에 있는 풀과 나무는 매일 다르고 동물 친구들은 매일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2016년에 시작한 돌창고를 다시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돌창고라는 하드웨어는 그대로지만 걸어 들어오는 길에서 만나는 풀과 나무가 절기에 다른 얼굴을   있도록 하고, 여러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일들을 해가는 돌창고의 프로젝트들도 계절마다 종이 시각물로 전해야겠다. 계절 따라 나오는 들깨, 고구마, 유자, 시금치, 멸치와 같은 재료로 식음료를 만들어 테이블을 다시 열어야겠다.


꼭대기에 올라가면 저수지에서 나를 반겨주는 오리 가족들도 있다. 한 마리라도 안 보이면 혹시 그 저녁에 봤던 큰 올빼미가 어떻게 했나 걱정하다가 물속에서 다시 고개를 들어 나오거나 저만치 뒤쳐져 어미를 쫓아가는 모습에 안도한다. 돌창고를 다시 찾는 방문객들을 알아보고 서로 안부를 묻고 꼭 다시 만나자고 인사도 건네야겠다. 죽음을 앞두고 다시 찾을 곳은 아니더라도 살다가 슬플 때든 좋을 때든 다시 한번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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