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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용 Jan 15. 2022

과수원 길

2021년 11월 28일

"올해까지만 할란다."


3년째 유자청과 시금치를 가져다주는 옥희 어머님이 한 말이다. 옥희 아버님이 작년까지만 해도 그런 말을 안 했는데 올해는 유자 따러 가면서 계속 힘들다 힘들다를 연발했다는 것이다. 허리 수술도 하셨고 나이도 80인데 산비탈에 있는 유자 밭에서 유자 농사를 짓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옥희 어머님도 양쪽 무릎 수술을 해서 유자 농사를 돕는 것이 벅차다는 말이다.


요즘은 40년 된 實生木에 비료 안 하고, 물 안 주고, 약 안치고 키운 유자나무를 찾아보기 힘들다. 있다 하더라도 관리가 안되어  열매를 수확하기 어렵다. 옥희네 유자 밭은 아래에 짚을 깔고 풀을 수시로 매 주고 가지 치기도 해서 자연 상태의 유자임에도 수확이 가능하다. 돌창고 카페에서 옥희네 유자 아니면 다른 유자는 팔기가 싫었다.


"내년부터 제가 해보겠습니다."


대책 없이 말을 내뱉어 버렸다. 올해 수확부터 내년 한 해 유자 밭 관리를 옥희네 아버님을 따라다니며 배우고 내년 수확을 함께하고 이제 내후년부터는 스스로 관리하고 수확해보겠다고 말해버렸다. 옥희 어머님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면서도 웃으며 


"그러면 일 있을 때마다 전화할 테니 오게."

경운기 뒤에 타고 산에 올랐다

우선 경사가 가파르고 길이 좁아 경운기 운전이 까다로워 보였다. 버스 운전면허까지 가지고 있는데 무용지물이었다. 내년부터 이 아찔한 운전을 해야 한다니 겁부터 났다.

유자나무 아래에 그물을 치고 옥희 아버님이 만든 갈고리 장대로 유자나무를 털었다. 키가 크고 잎이 무성해 힘을 주어 털어야 하고, 그물에 정확히 떨어뜨려야 하기에 힘을 조절해 가면서 털어야 했다. 바닥에 떨어지면 그대로 쪼개져 버려 상품성이 떨어진다. 한참을 털고 마지막 남은 유자 하나까지 따기 위해서는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겨우 가지 아랫부분을 건드려 따낸다. 

그물에 떨어진 유자를 줍기 위해 소쿠리와 포대자루를 들고 들어간다. 한참을 줍다가 고개를 들자 유자나무 가시가 머리를 콕 찌른다.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아프다. 유자나무는 길고 굵직한 가시가 있다. 이 가시가 굻어지면 나뭇가지만 해진다. 유자나무 가까이에서 작업을 할 때 긴장을 풀면 창과 같은 가시에 몸이 찔리고 만다. 그렇게 그물을 나무 사이로 옮겨가며 유자를 계속 털고 줍는 것을 반복했다.

이제 경운기에 유자 박스를 싣어야 하는데 길이 없다. 맨몸으로 훌떡 뛰어넘어 올라온 길은 있어도 무거운 유자 박스를 들고 내려갈 길은 없다. 다리를 후들거리며 한 박스씩 옮기는데 잡은 손을 놓고 싶었다. 


배도 고프고 손발에 힘도 없는데 80대의 옥희 아버님은 내려갈 생각을 안 한다. 약속이 있다고 내려가자고 말하고 싶었다. 옥희 어머님이 간식으로 챙겨준 사과주스팩이 없었더라면 내려가자고 사정했을 것이다. 

옥희 어머님이 전화가 와서 점심 차려놨으니 내려오라고 한다. 그제야 아버님은 나머지 유자를 싣고 경운기에 올랐다.

옥희 어머님이 막걸리 한 잔을 준다. 겨울날 밖에서 땀을 흠뻑 흘리고 돌아와 뜨끈한 방에서 막걸리 한 잔을 먹고 쪽파 무침을 안주로 먹으니 몸과 정신이 흐물흐물해진다. 그렇게 줄줄이 나온 게딱지를 넣은 된장찌개 감성돔 구이 시금치무침, 익은 김치에 정신없이 먹고 마셨다. 


"니 계속 하긋나?"


옥희 어머님이 취기가 오른 나에게 물었다. 


"재밌어요."


취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니 


"그러면 다음에 퇴비 줄 때 부를 테니 그때도 오그라." 


나무 한 그루당 퇴비 한 포대를 준다고 하는데 그걸 싣고 가서 나무 주위로 고랑을 파고 퇴비를 날라서 붓는 일이라 하는데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돌창고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업무에 복귀해 프로젝트 페이퍼 작업을 하고 서류들을 챙기니, '아~ 그동안 내가 정말 쉬운 일을 했구나.' 돌창고 카페에서 유자차를 마시니 한 방울도 남길 수가 없었다. 팀원들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컴퓨터를 보고 있는 나에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대표님 좀 무리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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