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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용 Mar 06. 2020

버려야 할 것과 살려야 할 것

남해 미조 제빙창고 2층의 제빙실

부쩍 성장한 후배와 함께 미조 제빙창고를 찾았다. 건축을 공부하고 있는 그는 요리조리 살펴보며 리노베이션 설계에 관해 물었다. 진땀이 날 정도로 디테일하게 물어봐서 현재의 어떤 공간이 변화되고 확장되고 축소될 것인가를 자세히 설명해야 했다. 건축가가 설계한 '도면'을 이해하고 있는 수준이었지 실제 실이 얼만큼 확장 또는 축소가 되는지 수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는 몰랐다. 부끄러웠다. 


"형 재생을 하다보면 버려야 할 것과 살려야 할 것이 있잖아요. 미조 제빙창고는 어떤 걸 버리고 어떤 걸 살렸어요?"

미조 제빙창고 앞 도로

역시 진땀이 났다. 남해라는 지역의 결핍과 시대적 요구를 문화공간의 프로그램과 실별 기능으로 이야기 했었다. 그런데 앞의 가치와 이야기가 미조창고라는 전체 건축물의 리노베이션 설계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부끄러웠다.


"앞을 버리고 뒤를 살렸어."


미조창고의 앞은 항구와 맞닿아 있으며 이 항구는 어항으로 고깃배가 들락날락 하며 가두리 양식장에 갈 배들도 쉴 새 없이 오고간다. 그렇게 배에서 내린 물고기들을 옮기려는 차들도 항상 있다. 고된 어업의 현장이다. 미조창고가 문화공간으로 재생되면 여러 사람들이 방문할 것이고 사진도 찍고 모여 이야기도 하며 이 곳을 향유할 텐데 고된 어업의 현장에 방해가 된다면 이 재생 프로젝트는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미조창고가 미조마을을 돕고 미조가 남해를 돕자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삶을 치열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된다면 재생이 아니다. 

미조 제빙창고 후정

건축가가 어업 행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미조 창고는 방문객들이 항구쪽 출입구가 아닌 후정으로 들어와 진입하며 후정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도록 설계를 하였다. 그러면서도 항구 쪽 출입구를 통해 어부들이 다이렉트로 들어올 수 있도록 출입구를 마련해 놓았다. 설계를 한 건축가는 디자인 뿐만 아니라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방문객들의 관계 형성, 지역 재생의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며 설계를 진행했고, 건축적으로 "앞을 버리고 뒤를 살린 것이다." 


공간을 재생 할 때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살릴까'의 기준은 오래된 것에서 나오는 미적 가치와 시간성. 그리고 현대인의 편리함 보다는 그곳 주위로 살아가는 사람들 매일매일 삶에 끼치는 영향인 것이다.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버려야 할 것과 지켜할 것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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