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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개연성 Oct 29. 2019

콘텐츠 플랫폼이 생존하는 법

고객의 니즈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니 새로운 사업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고객을 알아야 생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박소령 대표에게 직접 듣는

콘텐츠 스타트업 퍼블리의

비즈니스 성장 스토리




2015년, 퍼블리의 출발점


미디어에 관심 있는 사람은 뉴욕타임스 혁신 보고서에 대해 알 것이다. 2014년 혁신 보고서가 나왔을 당시 엄청 센세이셔널했고, 한국 언론사에서도 앞다투어 번역했다.


2014년 유출되어 화제가 됐던 뉴욕타임즈 혁신 보고서


당시 혁신 보고서를 만든 TF의 팀원 중 한명이었던 A. G. Sulzberger는 30대 초반부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대해 연구했다. 그리고 37살에 아버지로부터 발행인의 자리를 물려받아 뉴욕타임즈의 4대 발행인이 되었다.


오른쪽이 A. G. Sulzberger


뉴욕타임스의 전체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30대 후반이라는 것이 시사하는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뉴욕타임스는 일찍부터 디지털에 투자했다. 이는 즉 광고 매출에 의존하지 않고 소비자가 돈 내는 매출 구조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그 성과로 2019년 구독자 수 데이터 순위에서 뉴욕 타임스가 압도적 1위다. 최근 뉴욕타임즈의 라이벌인 타임지에서 A. G. Sulzberger에 관한 장문의 기사를 발행하기도 했다.


디지털 뉴스 구독자 수에서 뉴욕타임즈가 압도적인 1위다.


어떻게 A.G.Sulzberger는 뉴욕타임스를 미래로 이끌었는가 (타임지, 2019년 9월 기사)


나는 이전부터 디지털 시대에 언론이 나아가는 방향, 변화에 관심이 많았다. 영상에서는 넷플릭스, 음악에서는 스포티파이, 웹툰에서는 레진코믹스, 웹소설에서는 문피아와 조아라와 같은 디지털에서 소비자가 구입하게 하는 콘텐츠 사업자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고객의 불편을 해결해주면, 이제는 무형의 지식/교육 서비스에도 돈을 낸다



2015년 영국 이코노미스트 특집 호에서 Lifelong Work and Learn(평생 일하고 배우는 것)에 대해 다룬 적 있다. 우리 모두가 이미 이런 패턴으로 이미 살고 있고, 또 살게 될 것이다. '지식/교육 서비스는 커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며 15년 퍼블리를 시작했다.



콘텐츠 플랫폼에서 고객 중심으로 일한다는 것의 의미


처음 서비스를 시작할 때는 이 사업모델에 대해 사람들이 훨씬 더 부정적이었다. ‘디지털 콘텐츠를 누가 돈 내고 사?’라는 말을 들었고, 실제로 소비자가 누구일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창업자인 박소령/김안나를 우리가 제1소비자로 놓고 집중적으로 콘텐츠를 만들었다. 이 시기에는 평소 가고 싶었던 해외의 각종 페어나 컨퍼런스에 관한 콘텐츠가 많았다.


퍼블리의 초기 콘텐츠


2018년이 되니 인기 콘텐츠의 흐름이 바뀌었다. <도쿄의 디테일>,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 <수평적 조직문화 파헤치기>는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우리 팀 사람들이 만든 콘텐츠인데 소비자 반응이 훨씬 좋았다. 그래서 고객이 변했구나 생각했다.


또 이전에는 유료 콘텐츠를 하나하나 기획해 판매하는 모델을 갖고 있었는데 2017년 여름, 그동안 크라우드 펀딩으로 만든 모든 콘텐츠를 월 21,900원에 다 볼 수 있는 월 정기구독 사업 모델(섭스크립션 비즈니스 모델)을 베타 테스트 성격으로 도입했다. 당시에는 그동안 만든 콘텐츠를 묶어서 팔아보자는 간단한 생각밖에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퍼블리의 업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퍼블리의 시작

소비자에게 주는 가치: 읽고 싶었던 콘텐츠를 디지털로 소유하게 하는 것

퍼블리 업의 정의: 콘텐츠를 잘 만들어 많이 파는 것


섭스크립션 비즈니스 도입 후  

소비자에게 주는 가치: 내가 돈 주고 구매한 시간을 경험

퍼블리 업의 정의: "Time well spent 서비스를 제공"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챌린지는 ‘어떻게 해야 innovator(이노베이터)와 early adopter(얼리어답터)로부터 early majority(얼리메저리티)로 넘어갈 것인가’였다. 넘어가지 못하면 얼리어답터만을 대상으로 소소하게 서비스할 수밖에 없다.


캐즘(Chasm) 차트. 얼리어답터와 얼리매저리티 사이에 캐즘(절벽)이 존재한다.


콘텐츠 소비에 있어 얼리매저리티 고객의 니즈는 얼리어답터 고객과 다르다. 또 사용 패턴, 결제 동기도 다르다. 얼리어답터 고객은 읽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콘텐츠 애호가이고, 우리 서비스에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 얼리 매저리티 고객은 콘텐츠는 돈과 교환한 상품으로 인식하고, 콘텐츠가 상품으로써 가치가 없으면 빠르게 실망한다. ‘내 돈을 낸 가치가 뭐지?’라고 질문한다.


이처럼 고객의 니즈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니 새로운 사업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고객을 알아야 생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퍼블리 팀에게 반복적으로 말하기 시작한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퍼블리는 고객 중심 회사다


“이런 콘텐츠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라는 생각으로 출발하면 아티스트는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비즈니스다. 콘텐츠를 만들 때 ‘소재/저자 아이디어'에서 출발하면 대박 나거나 쪽박 치거나, 모 아니면 도인 흥행 비즈니스가 되기 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고객 중심으로 사고하기 위해 계속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아티스트가 아닌 프로페셔널로서 일하고자 했다.


    고객이 누구인가?  

    어떤 Pain Point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의 솔루션은 무엇인가?  



서비스 기획에서는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지만, 콘텐츠 기획에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퍼블리에서는 이런 프레임 하에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기술도 내부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한다. 고객을 잘 알기 위해서는, 고객에 대한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이터도 한계가 있다. why를 알려주지 않는다.


<인스파이어드>라는 책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성공한 마티 케이건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


좋은 팀은 최종 사용자 및 고객과 매주 직접 만난다. 최신 아이디어에 대한 고객의 반응을 확인한다.

나쁜 팀은 그들 자신이 고객이라고 생각한다.


드롭박스에서는 ‘Real World Wednesday'라는 이벤트를 열어서 수요일마다 사용자를 초대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이 이벤트에는 전문 리서처가 아니라 디자이너, 엔지니어, 프로덕트 매니저가 주로 참여한다. 고객의 목소리를 누군가의 필터를 거쳐 듣는 것과 직접 듣는 것은 무척 다르다는 의미에서다.


드롭박스의 Real World Wednesday에 관한 글


나의 1주일, 1달 캘린더 중 고객을 직접 만나거나 고객에 대해 탐구한 시간이 얼마나 될까 자문자답해보니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래서 퍼블리는 고객을 직접 만나기 시작했다. 작년 가을 고객들을 사무실에 초대했다. 또 2019년 9월 멤버십 결제 고객 1,000명의 서베이를 받아 100명과 1시간씩 1:1 대화를 진행했다. 인터뷰 노트를 정리하고 정독하는 데에만 10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대형 사이즈의 고객과 인터뷰하는 것 이외에도 신규 서비스에 대한 고객 조사를 한다던지, 특정 콘텐츠에 대해 조사한다던지와 같은 일을 수시로, 빈번하게 하는 것이 올해 들어서의 큰 변화이다.



마이크로 타게팅을 위한 전략


B2C 콘텐츠 비즈니스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가 넷플릭스와 스포티파이다. 작년 vulture라는 매거진에서 쓴 넷플릭스 콘텐츠 팀이 어떻게 일하는지에 관한 기사를 발행했다. 기사에 나온 넷플릭스의 Growth Engine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나서 ‘이것이구나' 생각했다.


더 많은 콘텐츠는 더 많은 시청을, 더 많은 시청은 더 많은 구독을, 더 많은 구독은 더 큰 매출을, 더 큰 매출은 더 많은 콘텐츠를 가능하게 합니다.
넷플릭스의 Growth Engine


넷플릭스 콘텐츠팀에 관한 VULTURE의 기사


넷플릭스의 Growth Engine을 따라가기 위해, “더 많은 콘텐츠"부터 출발했다. 콘텐츠 발행하는 속도를 4배 늘렸다. 그런데 고객의 행동 데이터를 보니 더 많은 콘텐츠가 더 오랜 체류시간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왜 그런지 고객과 인터뷰해보니 “내가 보고 싶은 콘텐츠는 다 봤다" “내 관심분야 콘텐츠 양이 충분하지 않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객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양을 늘린다고 해서 더 많이 보지는 않는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넷플릭스와 다른 길을 가야 하는구나 깨닫게 되었다.


왜 다를까. 동일한 콘텐츠이지만 넷플릭스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고, 우리는 지식/정보 콘텐츠라는 게 다른 길로 가게 하는 핵심 요인이 아닐까.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는 대량 타겟팅이 가능한 비즈니스인 것 같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희로애락이라는 보편적 감정에 호소하고, 그렇다 보니 하나의 콘텐츠가 터지면 기업이 잘 될 정도로 글로벌 스케일로 흥행할 수 있다. 한편 우리가 속해있는 지식/정보 콘텐츠는 micro-targeting 비즈니스다. 좁은 타깃을 건드려야 한다. 개개인마다 알고 있는 지식수준, 처해있는 환경에 따라 콘텐츠 이해도가 천차만별이고, 이처럼 사람마다의 환경이 균질하지 않기 때문에 높은 만족도를 대중 전반에 제공하기가 극히 어렵다.


그래서 매스타게팅이 아닌 마이크로타게팅으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이크로타게팅의 첫 단추는 기획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면, 우리 서비스에 '알림 신청 중인 콘텐츠'가 있다. 어떤 경우에는 저자가 없는 것도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고객이 이런 콘텐츠를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을 draft 형태로 빠르게 올려보는 것이다. 아직 시작하지 않은 콘텐츠이지만, 반응하는 소비자가 얼마나 있을지 알기 위해 알아보기 위한 장치다. 필요한 최소 인원을 못 넘어서면 콘텐츠를 안 만든다. 어느 정도의 마이크로타게팅을 하되, 너무 니치한 콘텐츠는 아니고 일정 규모의 모수가 모여있는 콘텐츠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퍼블리의 알림 신청 중인 콘텐츠 목록



현재 퍼블리는 섭스크립션 비즈니스의 전략 방향은, 데이터 기반으로 분류된 마이크로타게팅 고객이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지식 콘텐츠를 꾸준히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 하에 여러 전략 TF를 진행했다. 각 유형의 타겟 고객에 집중해서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Target Segmentation TF. 퍼블리 멤버십을 사용하는 고객에게 우리는 어떠한 가치를 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Value Proposition TF. 마지막으로 비전 TF. 비전 TF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핵심 키워드 세 가지는 신뢰, 실용, 습관이었다. 콘텐츠 비즈니스에서 신뢰라는 기반 하에 결제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우리가 주는 지식은 아카데미성 지식이 아닌 실제 일하는 데 써먹을 수 있는 실용적인 지식이다. 마지막 키워드인 습관은, 시간을 쓸수록 죄책감이 드는 게 아닌 시간을 투여하는 게 충분히 만족스러운 서비스가 되고자 키워드로 삼았다. '건강한 습관을 어떻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를 장기적으로 고민할 예정이다.



퍼블리의 비전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공부하고 일하다 30살 처음 미국에 갔다. 그리고 대학원에서 2년 동안 공부했다. 당시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을 강하게 표현하면 굉장히 큰 열등감, 자괴감이었다.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이 차이를 만드는가?’를 질문했고, 그것이 단순히 개인의 노력 때문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라는 생각을 했다. 사회가 받쳐주는 시스템의 출발선이 다르면 누군가는 더 빠르게 출발할 수 있다.


한국은 한국 전쟁 이후 경제/정치 인프라는 굉장히 빠르게 성장했지만, 지식/교육 인프라와 같은 무형적인 가치는 아직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지식 인프라가 점점 중요해질 것이다. 사회가 발전하거나 진보할 때 필요한 생산성, 혁신성, 개방성, 다양성과 같은 가치들에 지식/교육 인프라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것이 오랜 기간 문화를 쌓아온 선진국과, 지식/교육 인프라를 만든 지 수십 년 밖에 안 된 한국의 차이를 만든다.


다음 세대에게 한발 더 앞서서 출발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고 싶다


다음 세대가 나 같은 감정을 안 느끼도록 하는 것이 우리 세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2017년 대비 2019년의 퍼블리는 사실상 새로운 회사라고 생각하고 일하고 있다. 사람도, 일하는 방식도, BM도 바뀌었다. 하지만 아래의 비전은 그동안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일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습관, 퍼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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