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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개연성 Aug 13. 2017

왜 그럴까 조금 촌스러운 걸 좋아해

우리가 좋아하는 촌스러움 리스트


나만 이렇게 촌스러운 걸 좋아해? 길티 플레저처럼 간직만 하고 있던 우리의 취향을 당당하게 밝힌다. 




촌스러운 패션


"평소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브리짓 존스(르네 젤위거 역)와 마크 다시(콜린 퍼스 역)가 처음 만나는 장면을 좋아한다. 브리짓은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엄마의 소개로 마크를 처음 만나는데, 잠시나마 마크가 '내가 찾던 그이'일지도 모르겠다고 기대했던 마음이 그의 촌스러운 사슴 스웨터를 보고 산산조각 나 버린다. 이 얼마나 귀엽고 유쾌한 첫 만남인지!


사실 나는 완벽하게 스타일링 된 세련되고 깔끔한 옷보다 촌스러운 패션 쪽을 좋아한다. 이유는 글쎄. 흥미로우니까! 완벽하고 재미없는 것보다 결함이 있더라도 고유의 개성이 드러나는 편이 좋다. 연예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들의 촌스러운 패션을 보면 인간적으로 다가와서 좋다."

-개연성


사실 브리짓의 패션도 촌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둘은 모두 엄마가 선물한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디스코


"디스코는 70년대 유행했던 음악이고 스타일이니까, 말하자면 한물가고 촌스럽다. 그런데 그걸 시대를 넘어 현재까지 끌고 와서 고유한 스타일로 즐기면서 쿨한 문화가 되었다. 일단 멜로디가 섹시하고 에너지가 넘쳐서, 언제 듣더라도 몸이 저절로 그루브 타게 된다. 디스코를 들으면 언제든지 춤출 수 있다. 나에게 딱 맞는 옷을 입은 느낌.


어떤 느낌이냐고? 섹시하고 퇴폐적인데 심각한 척하지 않고 유머러스하다. 그래서 하우스나 테크노와 다르다. 우리나라 노래로 치면 뽕삘과 비슷하다."

-취준생 H


디스코를 즐기는 H



싸이월드 감성


"내 나이는 버디버디/싸이월드의 마지막 세대이다. 그 아래 세대는 아마도 페이스북/인스타그램 세대일 것이다. 내가 중학교 때는 싸이월드 감성 짤이 유행했다. 다시 봐도 당황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싸이월드 특유의 오글거림을 좋아한다. 정말 일기장처럼 자기 심경을 그대로 쓴, 누워서 발차기하게 만드는, 다음날 읽으면 시공간이 오그라드는 그런 글들 말이다. 그것들은 '날 것 그대로의 매력'이 있다.


싸이월드만의 매력은 페이스북과 비교할 때 더 명확해진다. 싸이월드의 자리를 대체한 페이스북은 보통 사적인 용도라기보다는 공적인 느낌이 강한데, 내밀한 자기의 이야기보다는 좋아요를 많이 받기 위한 글이 주를 이룬다. 중요한 것은 '내 감정'보다는 '타인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이다. 이런 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소셜 네트워킹에 더 적합하다거나, 나름의 장점이 있다.) 내 감정과 상태를 남들이 보기 좋게 포장해서 전시하는 페이스북은, 뭐랄까, 세련되어도 너무 세련됐다."

-개연성


살려주세요



발리우드 음악


"발리우드 영화는 서사가 거침이 없다. 보통 영화에서 따라가야 될 서사의 법칙이 있는데 그게 그렇게 단계를 거쳐 전개되지 않고 갑자기 통째로 생략하고 일이 진행되기도 하고 그런 식이다. 전래동화에서 보여주는 서사랑 비슷하다. 우연에 많이 의존하고.


그래서일까, 영화를 볼 때 해방감이 든다. 기대를 배반하는 즐거움이랄까. 이 장면에서 이 장면이 나오면 안 될 것 같은데 진지한 장면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춤을 추고. 춤을 이렇게 추면 안될 것 같은데 몸을 이렇게 움직이고.


특히 페이퍼 같은 것 쓰다가 머리가 너무 복잡할 때, 한계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들 때, 아무 생각도 없이 볼 수 있고 즐겁고 흥겨워서 좋다. 통쾌함을 느낀다."

-대학원생 H


처음 발리우드 영화를 접한 건 마이클잭슨의 스릴러 패러디 영상. 이상하게도 이런 춤이 좋더라.



케이팝


"뉴질랜드의 오클랜드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의 일이다. 오클랜드 대학에는 K-pop Planet이라는 케이팝 동아리가 있었는데, 친구도 만들고 문화교류도 할 겸 그 동아리에 가입했다가 현지인들의 엄청난 '덕후력'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 '덕후력'이란 어떤 케이팝 노래가 나오든 그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저들이 모르는 케이팝 노래와 춤이 있긴 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케이팝 댄스를 하루에 몇 시간이나 연습하거나, 한국어를 몇 년이나 공부하거나 하는 식으로 열정도 대단했다. 나만 보면 모르는 아이돌 가수 얘기를 하는 통에 그들과 친해지지는 못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것이 있다니 대단하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끝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케이팝을 좋아하는가?'라는 것. 나도 한 때 아이돌을 좋아하긴 했지만, 언어도 다른 타국의 가수와 노래를 그렇게까지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델이나 마룬파이브 같은 가수도 있는데, 케이팝의 매력이 대체 뭐길래?


그러던 중 함께 교환학생을 하던 K의 "케이팝이 유치해서 그런 게 아닐까"라고 말에 눈이 확 트이는 것 같았다. 트와이스의 노래 가사를 보라. '언제부턴가 난 네가 좋아지기 시작했어 바보야 시그널 보내 찌릿찌릿'이란다. 유치하고, 촌스러운데, 그게 또 잘 먹힌다. 아무튼 복잡하지 않고 신난다."

-개연성


유치해도 좋다. 아니, 유치해서 좋다.




일본 여자 아이돌


"사실 일본 여자 아이돌은 그냥 보기에도 대체로 촌스럽다. 일단 대부분의 일본 여자 아이돌은, 주 구매 층인 남자 오타쿠들의 취향에 맞춘다는 이유로 염색은 물론이고 귀를 뚫거나 진한 화장을 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금기처럼 여겨지고 있고, 그러다 보니 일반적으로 아이돌에게서 떠올리는 세련되고 패셔너블한 모습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일자 앞머리라던가, 소위 ‘더듬이’라고 불리는 애교머리 같은 것들. 교복을 연상시키는, 혹은 인형 옷처럼 프릴이나 레이스, 리본이 과도하게 장식되어 있는, 아니면 트로트 가수 의상처럼 과하게 반짝거리거나 언뜻 보기에도 값이 싸 보이는 재질의 의상들. 세련된 사운드도, 화려한 군무도 없는 무대. 비음이 잔뜩 섞인, 때로는 음정조차 맞지 않는 노래들.


그녀들의 세계도 그녀들의 겉모습이 그러하듯이 너무도 뻔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다정하고 자상한,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고 믿을 수도 있는 부모. 가끔 다투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이가 좋은, 언제나 즐겁게 떠들 수 있는 상냥한 친구들. 달콤 쌉싸름한 첫사랑,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는 않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 그녀들의 세계에서 유일한 갈등은 사랑으로 인한 것이고, 그것들은 문구점에서 파는 싸구려 사탕처럼 반짝이는 홀로그램 비닐로 포장되어 있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일본 여자 아이돌을 좋아하기 시작했던 2000년대 초부터 일본 여자 아이돌의 이런 특징들은 놀라우리만치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차라리 이제는 클리셰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따금씩 일본 여자 아이돌계의 각종 금기나 클리셰에 도전장을 던지는 듯한 기획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것들은 역으로 이미 존재하는 클리셰를 강화시킬 뿐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외관이나 그들이 재현하는 세계뿐만이 아니다. 그들이 동원되는 각종 예능이나 기획들은 여전히 유치하고, 때로는 가학적이기까지 하다. 어딘가 어수선한 만듦새도 ‘아이돌이니까’라는 말로 쉽게 납득이 되어버리는 세계. 절제라는 말을 모르는 것처럼 끝없이 쏟아내는 ‘소녀스러운’ 디테일들. 정말이지, 어디 하나 촌스럽지 않은 부분이 없을뿐더러, 그 속에서 소모되고 소비되는 것들을 하나하나 가늠해 보면 일본 여자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어쩐지 촌스럽게 여겨지다 못해 가벼운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여자 아이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면 그건 아마 그녀들이 그려내는 세계가 그녀들과 비슷한 나이였을 무렵의 내가 원하고 바라던 것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의지할 수 있는 어른, 우호적인 동료들, 공격적이지 않은 세계. 그런 세계에서라면 사랑스럽지 않은 나도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믿음. 지금이야 그런 믿음이 유치하고 비현실적이라는 걸 잘 알지만 그때로서는 그런 것들을 믿을 수밖에 없었기에, 여전히 촌스러운 그녀들을 촌스러웠던 나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여전히 사랑할 수밖에 없다."

-소설가 H


일본의 아이돌 AKB48



순정남녀


"썸을 탄다는 말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All이 아니라 Some이라서.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일까, 요즘 사람들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깊게 하는 대신 상대의 마음을 얻을 방법을 먼저 찾는다. 언제 선톡을 보낼지, 그 사람의 이상형은 뭔지 계산하고 검색하고 그러면서도 지질해 보이지 않기 위한 탈출구를 마련한다.


하지만 시대를 역행하는 이들도 있다. 카톡도 SNS도 계산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고 마음으로 앓는 순정남녀들! 한 번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이들은 소개팅에 나가지도, 클럽을 기웃거리지도 않는다.


문제는 이들이 상대를 지나치게 배려한 나머지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곤란해하지 않을까, 계속 아는 사이로 남고 싶은 게 아닐까 고민하다 결국 입을 다문다. 주변 이들은 대시하고 포기하거나 차라리 아예 잊어버리라 하지만 그들에게는 이런 말이 들리지 않는다. 이들은 상대가 자신을 바라보지 않아서 혹은 상대가 다른 사람을 좋아해서 생기는 고통은 다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


결국 상대의 마음은 다른 곳으로 떠나버리고, 그들은 어쩌지 못한 감정을 안고 끙끙 앓는다. 요즘의 연애방식을 배우지 못해 도태된 이들은 결국 술잔을 비우고, ‘쿨’한 커플들을 보며 바보 같은 미소를 띠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촌스러운 미소를! 


이들의 촌스러움이 사랑스럽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들이 사랑스럽다. 좋아함에 모든 걸 투자할 수 있는 정열이, 기꺼이 마음의 요동을 허락하는 대범함이, 그 활기가 부럽다. 나도 그들의 사랑을 받아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사랑은 너무나 순수한 나머지 나마저도 빛나게 할 것 같다. 이들은 상대를 사랑하기에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웹소설 작가 L




좋아함에 모든 걸 투자할 수 있는 정열이, 기꺼이 마음의 요동을 허락하는 대범함이, 그 활기가 부럽다. 나도 그들의 사랑을 받아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사랑은 너무나 순수한 나머지 나마저도 빛나게 할 것 같다. 이들은 상대를 사랑하기에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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