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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개연성 Oct 15. 2019

참으로 공평한 인생

타인의 삶이 부러워질 때 읽으려고 쓴 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전공 교수님은 수업 시간에 자주 얼마나 인생이 공평한지에 대해 설파하곤 했다. 이런 식이었다.


"저의 과 남자 동기 중 가장 잘 나가는 친구는 졸업하자마자 누구나 알아주는 로펌에 들어가 그 후로 내내 승승장구했고, 억대 연봉을 받아요. 얼굴도 매우 잘 생겼고, 해외 출장도 자주 다니고, 집안도 좋고, 겉으로 보면 남부러울 데 없죠. 그런데 최근 우연히 같이 술자리를 갖게 됐는데 깜짝 놀랐어요. 사생활이 쓰레기더라고요. 아내는 진작에 바람이 나 이혼했고, 지금 그의 곁에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다른 동기들은 잘 모르지만요."


그러니 겉으로 보여지는 것만을 보고 너무 쉽게 누군가를 부러워하지 말라는 것이 그녀의 요지였다. 그리고 또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다.


인생은 너무나 공평해서 누구나 똑같이 불행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어떤 종류의 불행인지 선택하는 것 뿐이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만큼이나 충격을 받았었다.



우리가 보려 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런 사례는 사실 수도 없이 많다. 친한 지인이 자신의 중학교 때 친구에 대해 내게 얘기해준 적 있다. 그녀의 중학교 때 절친은 무척 예쁜 데다가 욕심도 많아 늘 주위의 이목을 독차지하곤 했고, 반대로 자신은 평범하게 생긴데다가 내성적인 편이었다고 한다.


둘은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대학에 들어가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생각나 친구의 인스타그램을 들어가봤더니 여전히 연예인마냥 예쁜데다가 인스타그램 스타가 되어 몇천 몇만 명의 팔로워를 지녔으며 예전의 욕심 많던 성격대로 활동도 이것 저것 많이 하고 즐겁게 살고 있었다고.


"피드만 보면 누가 봐도 부러워할 사람이었어. 무엇보다 너무 예쁘니까. 그런데 나는 하나도 부럽지 않더라고." 그녀는 내게 말했다. "왜냐면 나는 이 아이의 아픔을 알고 있거든. 정신 지체가 있는 남동생이 있어. 욕심이 많은 아이니까 그 사실이 알려지는 걸 끔찍히 싫어했지. 지금도 SNS 어디서도 남동생의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더라고. 웃기게 들릴 수도 있지만, 욕심도 별로 없고 수더분하게 생긴 나를 중학교 때 이 친구가 질투했었어. 당시에는 이해를 못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아. 적어도 나는 가정이 화목했으니까. 욕심도 별로 없었고. 하지만 내가 만약 이런 사정을 몰랐더라면, 그녀를 SNS로만 봤더라면 나도 분명히 그녀의 삶이 부러웠을거야."



'인생은 공평하고 누구나 각자 몫의 불행함이 있다'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나는 남보다 더 불행하다고 나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남의 삶을 쉽게 부러워하지 않는다. 대신 어떻게 더 올바른 선택을 해서 내 몫의 불행함을 나 혼자 온전히 소화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이왕 어떤 불행을 겪어야 한다면, 가장 견딜만한 것으로 선택하는 식이다. 가족이 행복한 게 중요하니까 나의 독립성을 포기하거나, 일이 중요하니까 사랑을 포기하거나. 삶은 나에게 완벽하게 모든 것을 주지도 않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은 얻을 수 있다.


물론 교수님의 말에 동의를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거라는 걸 안다. 누구는 정말로 운이 좋아 평생 어떤 걱정거리 없이, 괴로움 없이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교수님이 했던 말에 일말의 삶의 진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괴로움이 전혀 없는 삶도, 그것대로 허무하고 불행한 인생이고 말이다. 모든 위대한 사람들은 굴곡이 큰 삶을 살았던 것을 기억하라. 괴로움이 전혀 없는 삶은 모든 성장할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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