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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동 Jul 10. 2018

미스터동의 베트남 여행기 7편

호치민

[지난 6편 이야기]


베트남 호치민에서 '메콩강 투어'에 나섰던 미스터동.


마지막 투어 현장에서 뱀술을 마주한다. 뚜껑에서부터 역겨운 냄새가 한껏 올라오고 있었다.


그때 들려온 가이드의 한 마디. "뱀술 마셔볼 사람?"



뱀 몇 마리가 술에 들어가있을까


똬리를 틀고 있는 녀석들을 보니, 분명 '맛'있게 먹을만한  아니었다. 사람도 먹기 힘든 술을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삼켰을 뱀을 생각하니 정말 미안했다.


순간,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어미 꽃게에 입장에서 자식인 꽃게와 함께 간장게장으로 담기는 시점. 그걸 덤덤히 받아들이며 모성적으로 풀어낸 시다.


시에서 어미 꽃게는 살아있는 상태에서 간장이 차오르는 걸 자식 꽃게에게 '밤'이 왔노라고 한다.  '저 뱀 또한 그러하겠지...' 난 생각했다.


 사이, 가이드는 뱀통에서 술을 한 국자 퍼냈다. 건너편에 있던 서양 어린이들은 "끄악-"하며 고주파 탄성을 질러댔다. 나도 그렇게 소리 지르고 싶었다. 조금만 더 어렸어도.


비주얼은 최악이었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뱀술을 먹어보겠나' 싶었다. 나는 가이드가 컵에 따라 준 술을 일행 중 제일 먼저 집어 들었다.


뱀술을 작게 담아 파는 모양이다.


나는 뱀술을 입에 털어놓었다. 입에 머금지도 않고. 곧바로 목구멍으로 넘겨쳤다.


"크-악-!" 나는 얼음장 같은 약수터 물을 한껏 들이켠 것처럼 탄성을 냈다.


내가 먹는 모습을 보곤 2-3명의 사내가 뱀술 체험에 나섰다. 그리고 서울에서 왔다던 20대 여자 한 명도 호기롭게 도전했다. 


아주 뿌듯했다. 사실, 뱀술을 더럽게 맛없었다. 나만 당할 수 없었다. 큭큭


메롱.


메콩강 떠나기 직전! 버스에 오르며.


다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분침시침은 북극과 남극을 장렬하게 찌르고 있었다.


가이드는 모든 투어 일정이 끝났음을 선언했다. 버스 좌석을 꽉꽉 채운 승객 모두가 가이드를 향해 박수를 쳤다. 2초 남짓. 지금 생각해보니 대단히 의례적이었다.


그렇게, 버스는 메콩강 유역에서 호치민 시내로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버스 맨 뒷자리에서 오늘 만났던 형님과 함께 투어 일정에 대해 대만족 했다. 단돈 '만 원'이라는 저렴한 투어 비용이었지만 알찬 하루로 즐겁게 놀았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가성비 이었다.


점심밥도 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쇼핑의 목적이지만 중간중간 쉬어도 가고, 배도 태워주고 말이지.


그래도 저녁밥까진 주지 않는다던 가이드 말에 조금은 섭섭했다. 염치도 없게끔.


나는 눈을 잠깐 감았는데, 어느덧 우리 버스 옆에 수많은 오토바이가 다닥 붙어있었다. 마치 개구리 옆에 얽혀있는 올챙이 알 같았다.


나는 '도대체 여기 버스 기사님들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운전할까' 매우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운전 안 하고 있는 내가 오히려 신경이 곤두섰다.




메콩강 투어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온 뒤 샤워를 짧게 했다. 따뜻한 물을 맞고 나니, 몸속 피곤함이 내 눈꺼풀을 무겁게 했다.


'그래도 저녁밥은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기 위해 다시 거리로 나섰다. 열기를 내뿜던 해는 지구 반대편으로 사라졌고 커다란 달만이 그 위치를 대신하고 있었다.



나는 쌀국수를 먹고 싶었다. 그런데 외국인들이 맥주 한 잔 먹을 만한 식당은 많았지만 밥을 먹는 식당은 문이 많이 닫아 있었다.


시간은 이미 저녁 9시쯤이었다.


어둡고 긴 골목을 지나쳤다. 그러다 사람도 한적한 길에서 한 쌀국수집을 마주쳤다. 가게 유리창 안으로 보니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늦은 퇴근길에 야식을 먹는 직장인 같은 사람 몇 명이 가게에 있었다. 나는 단번에 맛집임을 직감했다. 


그렇게 나는 이날  인생 맛집 쌀국수를 찾을 수 있었다.


인생맛집 쌀국수를 찾았다.


한 젓가락에 고기를 두 점씩 먹어도 남을만한 고기의 양. 그리고 보통의 쌀국수와 달리 우동면을 쓰고 있어 오동통한 면발의 느낌이 좋았다.


국물에서 고기 잡내가 나지 않았고 묵직하진 않아 개운한 맛이었다. 마음에 들었던 건 주방 상태가 매우 청결했다.


그리운 내 고향 부산의 돼지국밥을 먹는 기분이었다.


쌀국수 한 그릇에 시원한 환타 한 잔. 지금 생각해도 참 그리운 맛이다.




어젯밤 왔던 쌀국수집. 또 왔다.



빈둥빈둥한 오늘


어젯밤 야식으로 먹었던 쌀국수 집을 재방문했다. 어제 먹었던 쌀국수 향을 잊을 수가 없었다. 담백하면서도 구수한 국물이 입에 계속 맴돌았다.


나는 매일 아침을 이곳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날까지 이 다짐을 지켰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 곳을 찾아 아침을 해결했다. 그러다 보니 매일 조금씩 고기의 양이 늘었다.


외국 여행자도 단골을 만들면 '인심'이 생기는구나. 세계는 넓지만 사람은 같다는 걸 느꼈다.



이번 여행 중 가장 강렬한 태양 빛이었다. 오래 켜놓은 백열등을 만지는 느낌이었다. 아뜨.


오늘 정해놓은 일정은 없었다. 그저 휴식. 빈둥빈둥 하루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책이나 읽으며 말이지.


따가운 햇살을 피해 눈에 보이는 카페 안으로 피신했다. 예쁜 카페를 찾으려고 했지만 무더위를 참을 수 없었다. 난 카페쓰어다(베트남 연유커피) 한 잔을 시키곤 테라스에 앉았다.


선글라스를 내려놓고 1분 남짓 앉아있으니, 커피와 재떨이를 점원이 가져다줬다. 힙합을 꽤나 좋아하게 생긴 점원은 내게 "Do you need water?"이라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Can I get some ice water?"라고 했더니, "sure!"이라는 기분 좋은 답변을 받았다. 


내 앞에 커피와 책이 놓여있었고, 시간마저 여유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소확행이었다. 귀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올드 팝송. 카페 테라스를 휘감는 바람의 꼬리. 그리고 달콤한 커피가 함께 있으니 말이다.


건물 외관이 멋졌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절반쯤 읽어가던 책은 이제 그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그 끝 부분을 조금 남겨놓고 책을 덮었다. '탁'


난 커피를 다 먹은 뒤 남은 얼음을 '호로록' 소리가 나게 끌어올렸다. 카페에서 나와 좀 걷기로 했다. 그러기 전에 잠시!


나는 우리나라처럼 다 먹은 커피 잔을 치워야 하는지 헷갈렸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떤 남자가 테이블에 커피 잔을 두고 가는 것을 봤다.


하지만 나는 '저 남잔 매너가 없을지도 모르지'라고 생각하여 한 명 더 기다려봤다. 그리고 다음 사람 역시 테이블을 치우지 않고 자리를 떴다. 그제야 나는 망설임 없이 카페를 벗어날 수 있었다.


롯데리아다. 약속장소를 정하는 곳으로 유용하게 쓰인다고 한다. "야 롯데리아 앞에서 만나"


오토바이 군단이 지나간다. 부르릉!


발자취를 남기듯, 사진을 찍으며 걸어다녔다.


오랜만이다. 높은 건물!


명품가방이 즐비하다. 물론, 짝퉁이다.



걷다보니, 여긴 어딘가. 짝퉁시장으로 유명한 '벤탄시장' 근처다.


나는 왜 호치민에 왔는가



부산에 사는 내가 베트남 호치민까지 오기 쉽진 않았다. 


우선, 부산은 인천에 비해 항공편이 다양하지 않다. 물론, 베트남항공에서 유일하게 직항으로 이어 주곤 있지만 여행의 목적으로 오기엔 항공료가 만만치 않다.


그리고 중요한 건, 호치민은 다른 여행 도시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 베트남이 해외 여행지로 급부상했다고 하지만 다낭과 하노이 중심이다.


사실, 내가 베트남 호치민을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거길 왜 가냐는 말도 많았다. 우리 부모님조차도 호치민보다는 하노이로 갈 것을 추천했다.


하지만 난 호치민에 가고 싶었다. 왤까.


예쁜 카페가 보인다.


내가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다큐멘터리인지, 뉴스였던지 기억은 잘 안 난다. 거기서 난 세계 최대의 짝퉁시장이 베트남 호치민에 있다는 걸 들었다. (사실, 세계 최대의 짝퉁시장은 중국 광저우에 있는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짝퉁 시장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나는 강력하고도 억센 궁금증에 눌러앉았다.


그때, 나는 호치민이라는 곳을 가보고 싶었다. 그렇게 약 7~8년 뒤인 2018년. 내가 호치민에 오게 된 가장 주된 이유다. 



호치민의 첫인상은 이 여행기를 천천히 오랜 시간에 걸려 써내려 가는 동안에도 여전히 생생하다.


야심한 밤에 호치민 상공을 유유히 날아다니던 비행기 한 대. 그곳에 내가 있었고 호치민은 금빛 도시였다.(1편 참고)


부산 해운대, 타이베이, 오사카, 홍콩의 야경에 뒤지지 않던 강렬함을 내뿜던 도시 이어라.



그래도 공항 밖에서 대기하던 수많은 호객꾼들. 사방에 깔린 오토바이의 질주와 굉음. 그리고 소매치기와 바가지의 위험이 도사린 곳이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여행지 그 자체론 매력 점수가 절대 높지 않다. 앞에서 말한 대로 도시 전체가 전반적으로 시끄럽고, 바가지의 위험이 많다.


네이버 블로그만 살펴봐도 비정상적인 택시 요금으로 실랑이를 했다는 내용이 수두룩하다. 특히, 휴대폰이나 지갑을 오토바이 소매치기 당했다며 호치민을 최악의 여행지로 꼽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베트남 호치민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문화재가 있거나 엄청난 규모의 자연경관이 있어 볼거리가 즐비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뭘까.


표현하기 힘든 매력이 있는 곳이 호치민이다. 특히 혼자 여행을 오는 사람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내가 다녀보니 그랬다.



나는 호치민 중앙 우체국을 바라보는 맥주집 겸 카페에 앉았다. 카페 2차다.


요 며칠 동안 날씨가 덥다는 핑계로 계속 차가운 커피를 마셔댔다. 그러다 보니 오늘 아침부터 속이 계속 좋지 않았다. 위에 꼬인 느낌이랄까.


그래서 나는 생강차를 시켰다. 그런데 실수로 아이스로 달라고 해버렸다.


따뜻한 걸로 속을 달래려고 했는데...


생강차 양이 어마무시하다.


한가로운 야외 테라스에서 생강차를 마시며, 가족과 친한 지인에게 전화를 했다.


한국에 있을 부모님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내 기대와 달리 크게 반겨주시진 않았다. -.-


부모님은 내게 그저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오라고 당부하셨다. 예전에 혼자서 홍콩을 가보겠다고 하니 걱정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엊그제 같다.


그리고 그렇게 혼자서 여행을 몇 번 다녀오니, 이젠 신경을 크게 쓰시지 않는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부모님에겐 어떤 선물을 사줘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흠. 


돌이켜보건대, 난 여행을 좋아하는 부모님의 DNA를 물려받았다. 참 감사하다.


내가 이런 DNA가 없었다면, 대한민국 부산이 내 세계관 전부였을 거다. 둥근 지구본은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상상력의 장난감이었을 거고.


하지만 그 지구본의 바다를 지나, 난 베트남의 경제 상업 중심! 옛 사이공의 도시! 바로, 호치민에서 두 발 딛고 서 있다.


푸른 녹읍이 더위를 식힌다.
거대한 나무를 마주쳤다.


도시 전체를 순찰하는 보안관처럼 도시의 모세혈관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체력적으로 바닥이 났다.


헤어드라이기를 얼굴 앞에서 틀고 있는 기분이랄까. 답답한 마음에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싶어 숨을 깊게 마셔봤다.


한증막에서 숨을 들이쉰 것 같았다. 젠장. 마저 더위에 헐떡이는 듯했다. 쉼터를 찾아야 했다.




어서 와. 이발소는 처음이지?



사실 가기 싫었다. 진짜.


동남아시아 여행을 다녀온 남자한텐 빠짐없이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음흉한 미소와 함께.


ㅎ..해....해봤어?


이 여행기엔 나오지 않았지만, 홀로 여행을 하다 보면 수많은 인연을 만난다. 특히, 게스트 하우스에 가면 밤새도록 맥주를 마시며 떠든다.


보통 새벽 2시쯤이 넘어서면, 전부 술이 걸쭉하게 들어간 상태다. 그쯤 나오는 얘기. 바로 동남아시아 퇴폐업소 얘기다.


나도 베트남에서 약 일주일 정도 있었는데, 매일 퇴폐업소의 호객행위를 당했다. 처음엔 부끄러워하며 "NO"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예 내가 표적이다.


전단지를 들고 내게 와서 "오빠~. 마쏴징? >.<"라고 말한다. 아이고 참. 나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데...


근데 참 웃긴 게, 내 숙소 앞에 바로 그런 퇴폐업소가 있어서 매일 그녀를 마주쳤다. 그렇게 3일 정도 지속되자, 그녀는 이제 반가운 친구를 만난 거 마냥 내게 말을 건넸다. 근데 어쩐지 나도 반가웠다. "또 너야?"라는 식이다.


그리고 그녀를 한방에 물리치는 방법을 알아차렸다. 영어도 베트남어도 필요 없다. 그냥 한국말로 "나 거지야. 돈 없어"라고 말하면 된다.


그랬더니, 그녀가 내 팔을 세차게 꼬집으면서 웃는다. 그래서 내가 바지 주머니를 까뒤집으며 "나 학생이라 돈 없어"라고 한국말로 했다. 그제야 날 보내줬다.


바보. 난 돈을 윗 옷 가슴포켓에 넣어 다니는데.



아. 어쨌든 지금 하려고 하는 얘기는 베트남 이발소다. 동남아시아 퇴폐업소 얘기가 나오면 꼭 나오는 장소가 '베트남 이발소'다.


사실 베트남 이발소는 퇴폐업소가 아니다. 예전엔 퇴폐업소였다가 지금은 아니라고 한다. 나도 베트남 이발소가 아직 퇴폐업소인 줄 알았다.


그래서 안 가려고 했다. 동남아시아 여행을 갔다고 하면, 음흉하게 물어보는 '해봤어?'에 당당해지고 싶었다. 성(sex)을 사고파는 걸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어제 메콩강 투어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베트남 이발소는 퇴폐가 아니에요'라고 전해 들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매일 아침마다 간다고 했다. '왜?' 그냥 자기가 아침에 머리 감고 면도하기 귀찮아서란다.


음... 그럼 못 갈 이유는 없다.


내 눈 앞에 '이발소'라고 적혀있는 간판을 봤고 , 난 직진이다.

넓은 교차로다. 이곳을 신호등 없이 횡단하는 느낌은 짜릿하다.


먼저, 베트남 이발소를 다녀온 후기를 한 줄로 요약해보자.


'아버지를 데려 오고 싶다'


가족과 함께 오자고 한 것은 그야말로 '건전'했다는 거다. 만일, 우리 엄마가 면도를 해야 했다면, 엄마도 데려오고 싶었다.


더운 날씨에 헐떡이며 들어간 베트남 이발소. 옛날 이발소에 있을 법한 의자를 뒤로 젖혀 나를 살짝 눕힌다.

그러면 방금 시베리아 한복판에서 가져온 듯한 차가운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준다. 정말 시원했다. 왜 고깃집에 가면 아저씨들이 물수건으로 세수하는지 알 수 있었다.


얼굴에 땀과 기름기가 싹 사라지면, 시원한 오이와 마스크팩을 얹어준다. 18도로 맞춰놓은 에어컨 밑에서 오이팩을 하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팩을 하는 동안, 손과 발을 마사지해준다. 딱히 시원하지는 않다. 이 사람들이 전문 마사지사가 아니니 말이다.


그래도 언제 이런 호사를 누려보겠나.




그렇게 한참을 쉬다가 귀지를 파준다. 몹시 긴 귀이개를 가져온다. 장비만 보면 이비인후과 수술이다.


내 어깨를 툭툭 치고는 옆으로 돌아 누워란다. 내가 옆으로 휙 돌리면 집도가 시작된다.


마스크팩을 하고 있어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험상궂게 생긴 누나가 지하 100m 갱도에 석탄이라도 캘 것처럼 머리에 전등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기다란 귀이개가 내 귓속을 이리저리 긁어내는데, 시-!원하다. 막 귀에서 달그락 소리를 듣는데 시원해 죽는 줄 알았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떠올리니, 이상하게 지금 귀가 가렵다.


오이팩을 거두고, 뜨거운 수건으로 내 얼굴을 찜질한다.


이발소의 하이라이트. 면도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예전에 내가 진짜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간 이발소에서 본 것 같은 면도였다. 케이크 생크림 같은 면도크림을 얼굴에 바르고 작은 칼로 면도를 하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슥슥-'


얼굴 전체를 면도해주는데 사각거리는 느낌은 정말 좋았다.


이발소를 다녀오니, 해는 이미 졌다.


해는 이미 저 수평선 뒤로 넘어가 있었다.


호치민의 밤은 어두웠다. 하지만 그건 밤의 어두움이 아니라 심연의 어두움이었다.


어두웠지만 깊이가 있었다. 알 수 없는 우주의 끝의 색과 같으리.


개가 따라와 따돌린다고 애썼다.
나...지금 도로를 횡단 중이다. 무섭다...


오늘 밤 저녁은 무엇을 먹어야 할까.


얼마 전, 베트남을 방문한 오바마 전 대통령이 서민 식당에서 '분짜'를 먹는 게 화제였다. 


그래서였을까. '오바마 분짜'가 있었다. 웃기면서 신선했다.


만약 우리나라 대통령이었다면, 'MB분짜, 이니분짜'가 되었을 거다. 


신선한 가게 이름으로 오늘 저녁엔 오바바 분짜를 먹기로 했다.


오바바 분짜가 50K다.  한화로 약 2500원이다.
한 상이 차려졌다.



귀여운 꼬마야. 안녕


분짜는 맛있었다. 우리 한국 사람 입맛에 딱이다.


불러진 배를 통통 치면서 나왔다. 호텔로 바로 돌아갈까 했지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달콤한 초콜릿 셰이크 한 잔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밤에도 오토바이 속도는 빠르다.


초콜릿 셰이크 한 잔을 시키고, 테라스에 앉았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꼬마 여자애가 보였다.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정말 예뻤다.


귀여운 꼬마야 안녕.


내가 "Hi~"라고 하자 배시시 웃었다.


자신은 미국에서 왔다던 꼬마의 할아버지가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엄청 반가워했다. 자니윤을 닮은 할아버지였다. 그리곤 자신의 가족들을 차례로 소개하여줬다.


나는 할아버지 보고 "꼬마 아버지가 아니고 할아버지였어요?"라며 "너무 젊어서 할아버지인 줄 몰랐다"고 했다. 그러니 할아버지는 나를 두고 재밌는 청년이라고 했다.


난 꼬마 보고 몇 살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뽀오-"라고 답했다. 정말 귀여웠다. 그래서 난 "No No"라고 한 뒤, 손가락 4개를 펼친 뒤 "Try this"라고 했다.


그랬더니 꼬마는 손가락 3개만 펼친 채 "뽀오-"라고 했다.


베트남 편의점에 대부분 과자는 한국산이었다.




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어젠, 편의점에서 한국 부부를 만났다. 난 목이 말라 야심한 밤에 편의점을 들렀다.


나는 물 한 병을 들고 카운터에 섰다. 이미 계산대에 있던 그 부부. 약 60대로 보였다. 그들은 베트남의 큰 화폐단위로 돈을 세는 게 어색해 보였다.


내가 "돈 세는 게 참 힘들다. 그쵸?"라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어머나! 놀래라. 여기서 한국인 만나기 힘든데..."라고 했다.


그들은 베트남을 횡단 여행하는 중이라고 하셨다. 나도 늙으면 저들처럼 되고 싶었다.


"정말 멋있어요"라고 하니 노부부는 부끄러워하셨다.


날이 좋았다. 창명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밥은 쌀국수다.



베트남 거리에서 초록색 옷을 입고 있는 오토바이 군단이 있다.


그들은 누굴까.


나는 초록색 옷을 입고 있는 오토바이를 불렀다. 어떻게?



그건 다음 8편에서 마저 얘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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