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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동 Jul 18. 2018

미스터동의 베트남 여행기 8편

호치민

[지난 7편 이야기]


초록색 옷을 입은 오토바이 군단을 발견한 미스터동.


그들은 누구일까.


미스터동도 그들을 부르기로 한다.




여행 기간 내내 날씨가 좋다.



자유를 느끼다


베트남에 온 지 6일째다.


후덥지근한 날씨를 적응한 동시에 일상은 조금 지루해졌다.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일탈을 감행할 시점이었다.


나는 쌀국수집에서 다 먹은 쌀국수 그릇을 앞에 두고 고민에 빠졌다. '오늘 난 뭘 하면 좋을까' 젓가락으로 숙주나물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생각했다.


고개를 돌려 유리창 너머 밖을 지켜봤다. 오토바이 주차를 담당하는 경비원이 보였다. 그는 길바닥에 간이 의자를 만들어놓고는 퍼질러 누워있었다. 그는 간간이 오토바이가 올 때마다, 귀찮은 듯  잠시 일어나 비어있는 주차 공간을 가리키고는 제자리로 냉큼 돌아갔다.


충분히 이해할만했다. 찜질방 에서 롱 패딩을 입고 있는 듯한 날씨에 누가 힘이 날까.


오토바이 주차 안내의 고단함을 느끼고 있던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 그리고 번뜩였다!



그래, 오토바이를 타자



왜 진작에 이렇게 생각 못했는지 나 스스로 한심스러웠다.


단, 내가 오토바이를 운전하기엔 무리였다. 오토바이 대여소는 많았지만 국제면허증이 없었다. 공안에게 걸리 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특히, 초보 오토바이 운전자인 내가 여기서 운전하기엔 너무 위험했다.


그래서 선택한 게 남의 오토바이를 타는 거였다.


난 우버를 활용하기로 했다.


동남아시아선 '우버(Uber)'가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우리나라에선 불법이다.) 특히, 베트남은 오토바이의 천국답게 오토바이 우버 있는데 승용차보다 훨씬 저렴하고 빨라 인기가 많다.


나는 동남아시아의 우버라고 불리는 '그랩'을 선택했다. 우버하고 똑같은 서비스인데 내 체감상 베트남에선 우버보다 그랩을 더 많이 이용하는 것 같았다.


호치민 도로를 살펴보면 그랩 오토바이가 거의 점령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랩의 오토바이는 초록색 옷에 초록색 헬멧을 쓰고 있어 눈이 엄청 잘 띠기 때문이다.


사진_삼성전자


그랩의 어플을 깔고, GPS를 켠다. 그런 다음 내가 갈 목적지를 입력한 뒤 'search'를 누르면 끝.


내가 내야 할 금액이 나오고, 날 태우로 올 기사님의 정보가 뜬다.


그리고 채 1-2분도 안돼서 그 기사님이 내 앞에 똬악! 하니 도착한다.


그렇게 내가 있던 쌀국수집 앞으로 초록색 오토바이 한 대가 왔다. 흥분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나도 베트남의 거대한 오토바이 행렬에 하나가 되는구나!' 나 스스로 감격에 찼다.


나는 오토바이 기사님에게 "난 오토바이가 처음이고, 베트남에서 오토바이를 타면 재밌을 거 같고, 뒷자리에 앉으면 어딜 잡아야 하나" 등 수많은 말을 뿜었다.


그러자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좀 타라-"


"Oh! Okay-" 난 서둘러 오토바이 뒷좌석에 올랐다. 그래 달려보자. TV에 나왔던 것처럼 오빠 달려 말이야.


지화자. 오토바이가 이리저리 방향을 틀자 겁이 좀 났다. 호기롭게 나섰던 조금 전 용기는 멀리 간지 오래다. 오토바이군 떼 안에서 속도를 더 내자 손에서 땀이 났다.


애써 담담한 척은 했지만, 오토바이가 쓰러지면 어떻게 착지할지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었다. '한 바퀴 뒹굴고 난 뒤, 손바닥으로 땅을 탁 치면서, 번쩍하고 서야지'


도착. 오토바이로 약 15-20분 정도 달려왔다. 오토바이 기사님에겐 약 1000원 정도 줬다.


오토바이를 보내고 내가 도착한 거대한 쇼핑몰을 바라봤다. 외관이 그리 낯설지 않다.


내가 온 여기는 롯데마트.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여기서 기념품이나 필요한 것들을 많이 산다고 한다. 특히, 면세점에서 사는 것보단 저렴하다고 알려져 있다(카더라).


킹크랩은 여기서도 비싸다.


그래서 굳이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짝퉁시장에서 베트남 커피라든지 여타 기념품을 살 필요가 없다.


아무래도 정찰제를 유지하는 마트이다 보니 바가지 위험이 없어 좋았고, 제품에 대해 어느정도 신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롯데마트 1층. '롯데'라는 단어가 들어간 브랜드는 모두 집합시켜놨다. 정말 롯데라는 큰 형이 롯데 계열사 동생들을 일렬횡대로 줄 세워 놓은 형국이었다.


엔젤 인 어스, 롯데리아 등등 우리가 알법한 브랜드들이 있었다.


나는 롯데 형제들 속에 나 홀로 버티고(?) 있던 '푹 롱'에 들어가 봤다. '푹 롱'은 베트남의 스타벅스라고 불린다. 난 달달한 연유 커피 한 잔을 사들고 매장 구경에 나섰다. (커피 맛은 별로였다)




대한민국, 불쌍하고 위대한 나라



찬찬히 마트를 둘러보는데 참 놀라웠다. 마트 진열장 대부분이 한국산 제품이 꽉 차있었다. 그냥 부산 남포동에 있던 롯데마트를 통째로 옮겨놓았다. 추측해보건대, 롯데마트여서 한국산 제품이 많은 게 아니고, 원래 이곳에서 한국산 제품이 인기가 많은 것 같았다.


한류는 K-POP 말고도 활발히 진행 중이었다. 새삼 대단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대한민국은 척박한 땅에 나라가 세워져 불쌍한 나라다. 검은 황금, 석유는 고사하고 광물이라고 해봤자 돈 되는 건 하나도 없다. (웃긴 건 대한민국도 산유국으로는 분류돼 있다.)


그렇다고 해서 경이로운 대자연이 있어, 가만히 있어도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매력적인 땅도 아니다. 그리고 하필, 북한으로 인해 사실상 섬나라가 된 우리나라는 대륙의 이점도 얻지 못하고 있다.


하... 또 있다. 어릴 때부터 우리 선조는 지혜롭다고 했으나, 수도 없이 외세의 침략을 받았고 힘없는 백성만 죽어나갔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나라가 삼성이라는 세계적인 브랜드를 출생시키고, 머나먼 타국 쇼핑몰에서 제품 점유율을 싹쓸이 했을까. 대단한 민족이자 국가다. 이뿐인가. 도요타에 뒤지지 않게 우리나라 현대와 기아차가 세계 곳곳의 도로에서 달리고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 여권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비자도 없이 세계 대부분의 국가를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다. 대한민국 사람은 테러 등의 의심대상에서 멀어 입국심사도 빠르다.


타국에선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 했다. 나도 베트남 롯데마트에서 뜨거워진 심장을 느꼈다.


이제 오토바이 뒤에서 휴대폰을 하는 여유가 생겼다.



노니! 노니?



마트를 천천히 둘러봤는데, 정말 살게 하나도 없었다.


주위 사람들한테 기념품으로 뭐라도 사주고 싶었다. 하지만 살게 하-나도 없었다.  베트남 커피가 유명하다곤 하지만, 믹스커피는 우리나라 맥심이 훨씬 낫다.


그리고 다람쥐 커피가 유명하지만 동물학대로 만들어낸 인위적 커피라서 사지 않았다.


살게 없어서 나가려고 하던 순간. 혹시나 싶어 집으로 전 걸어봤다.


"엄마. 나 한국 가기 전에 뭐 사갈까 하는데 뭐 필요한 거 있어?" 내가 말했다.


엄마는 내 전화를 기다렸다듯이 외쳤다. 숨도 쉬지 않고 "노니 사와라. 노니!"라고 말했다. 난 '롤리, 논니, 넌니' 뭐가 맞냐고 재차 물었다. '노니'라는 건 난생처음 들었다.


노니는 세포 회복에 탁월한 성분이 있다고 알려진 과일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베트남 고엽자 피해자들이 노니로 효과를 봤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사실상 '만병통치약'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내가 볼 땐, 제2의 깔라만시와 게르마늄 팔찌다.


그런데 이 노니가 한국에서 사면 가격이 2~3배로 비싸다. 아무래도 현지에서 사는 게 저렴하다. 하지만 노니는 여기 현 물가 수준에서도 비싼 편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엄마의 부탁이지 않나. 노니 분말통 2개를 집어 들었다. 진열대에 노니가 단 2개뿐이었는데, 내가 다 쓸어담았다.


그때!


반팔과 반바지를 입은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 아저씨 3~4명이 내게 다가왔다. 짧은 옷에 님이 그들의 팔뚝과 다리를 휘감고 있었다. 심지어 흑백이 아닌 칼라였다.


덩치도 어찌나 크던지, 딱 봐도 최소 80kg에서 100kg 정도의 체격을 가지고 있어 보였다.


그런 그들이 내게 물었다.


"여기. 노니! 거 노니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꺼?"



아씨. 소위 말해서 '* 됐다'


난 땀이 나지 않는 체질인데, 갑자기 땀이 날려고 했다.


'어떡하지. 내가 노니 다 쓸어담았는데...'


노니 분말통이 담긴 카트를 재빨리 뒤로 돌린 채, 내가 말했다.


"아.ㅎㅎ하.ㅎ... 저도 찾고 있어요...ㅎ..하하"



그 아저씨들은 두리번두리번거렸다.


나는 서둘로 현장(?)을 빠져나갔다. 아저씨들에게서 최대한 멀어지려고 했다. '거-씨 노니가 어데있노!', '와 없지?' 라는 말이 내 등 뒤에서 들렸다.


자연스럽게. 아주 스무스하게 말이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진열대 물건을 구경하는 척하면서 그들과 멀어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저기요!



"예...? 저요?" 난 살짝 긴장한 채로 답했다.


그러자 한 아저씨가 "여기 점원한테 말했십니더. 노니 제품이 없다고예-. 곧 (진열대에) 물건 채워질겁니더"라고 전했다.


이어 "그쪽도 노니가 필요하면 여~서 가져가요"라고 덧붙였다.


투박하지만 친절한 의 아버지들이었다. 어떨떨했다. 나는 "예.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한 뒤 자리를 떴다.


사람을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되지만, 그래도 용 그림은 무서웠다.


호치민 관공서가 보인다.
깔끔한 도로다.
오토바이 행렬은 봐도봐도 신기하다.



한국으로 보내는 엽서 한 장


마트에서 나와 다시 오토바이를 탔다. 길가에서 바라보던 오토바이와 달랐다. 오토바이에서 바라 본 호치민 거리는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관점의 차이는 컸다. 시끄럽고 위험해 보이던 오토바이는 빠르고 저렴한 교통수단으로 여겨졌다

나는 호텔로 돌아와 짐만 던져놓고 냉큼 나왔다.


마트에 가서 산거라곤, 엄마가 부탁한 노니밖에 없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노니 가격에 여윳돈을 많이 써버렸다.


착잡한 마음을 안은 채 호치민 거릴 걸었다. 오늘은 호치민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호치민 중앙 우체국'을 향했다.


베트남을 들리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는 '콩카페'가 보인다.


호치민 중앙 우체국 옆에는 노트르담 성당이 있다.


우선, 우체국부터 가자.


붙어있는 두 여행 스팟.


여기가 호치민의 자랑! 중앙 우체국이다.


우체국 앞. 삼삼오오 모여 있는 중국 사람들. 그들은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매우 특이했다. 노란색 중에서도 가장 밝은 노란색 모자를 다 같이 쓰고 있었다.


노란색 모자는 완전한 자체발광을 했다. 수많은 관광객 인파 속 단연 돋보였다. 초등학생들도 부끄러워할 단체 모자를 하고 있으니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단체사진을 찍고 있는 그들을 뒤로하고 곧장 호치민 우체국으로 들어갔다.


전형적인 프랑스 형식의 건축물이다.
떡하니 중앙에 자리 잡은 초상화. 보나마나 호찌민이다.


우체국 내부는 내가 봤던 사진과 달랐다. 사진은 우체국 특유의 신비감과 몽환적인 느낌을 전달해주지 못했다.


마치 나는 영화 '해리포터' 속으로 빨려 들어온 것만 같았다. 특히, 높은 천장은 나를 압도했고 이건 마치 유명한 성당 들어온 것처럼 했다.


한편, 호치민 중앙우체국은 외국인에게 인기 관광지이지만, 동시에 실제 우정 업무를 보는 공간이다. 그러다 보니 관광객과 현지인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서울은 당당하게 세계 주요도시에 포함돼 있다.


나는 우체국 한 중간에 선 채 고개를 쳐 올려, 내부를 살펴봤다. 전체적인 내부 인테리어는 기원전 고대 그리스 신전과 같았다. 


시선을 천장에서 아래로 내리면, 우체국을 빙 두른 우편 접수대가 보인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엔 관광객들을 위한 기념품을 파는 매장이 있다.


호치민 관광객들을 모두 한 곳에 불러다놓은 것 마냥 사람이 많다.


아무래도 우체국이다 보니, 일반 기념품보단 우표나 엽서 따위를 많이 팔고 있다. 그럼 왜 파느냐.


여기서 엽서를 산 뒤, 고국으로 보낼 수 있기 때문.


나도 동참하기로 했다. 내가 한국에 돌아와 베트남 여행을 잊을 즈음, 엽서 한 장이 도착하는 것이다.


엽서 한 장을 샀다. 베트남 아낙네들의 모습이다. 사람이 너무 많아 사진이 흔들렸다.


국제우편을 보내는 곳이다.


교회에 가면 있을 법한 의자. 기다란 의자에 책상이 달린 의자 몇 개가 우체국 안에 있다. 엽서를 쓰는 관광객을 위한 것. 나는 그 의자 맨 끝부분에 앉았다.


그리곤 엽서 하나를 쥐고 만년필을 꺼내 들었다.  예리한 촉엔 푸른 잉크색이 맺혀있었다. 나는 '만년필이 이제야 제 몫을 다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만년필로 엽서를 쓰는 것. 너무 낭만적이지 않나!


엽서 뒷면에 어떤 말을 적을까.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 집으로 오기까지 2주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그러니 2주 뒤 나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이제 정신 차리고 공부하자'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부모님께 써야 하나 고민에 고민을 했다.


에라 모르겠다. 몇 자 휘갈기고는 한국으로 보내버렸다.


우리집. 기념품을 모아두는 진열장에 당당히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지 2주째. 어느 날 우리 집 기념품을 모아두는 진열장에는 베트남에서 온 엽서가 들어가 있었다.


나는 여행을 갔다 온 도시의 대표 기념품을 꼭 사 온다. 그것을 우리 집 진열장에 넣어둔다. 이건 나의 철칙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가 하던 것인데, 어느샌가 나도 따라 하고 있다.


결국, 일본 기타큐슈를 갔아왔을 때 사온 북어 인형, 오사카의 소주잔, 타이페이의 유물 미니어처,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미니어처 그리고 베트남의 엽서 한 장이 진열장 안을 꾸미게 됐다.


아참! 베트남에서 보낸 엽서를 확인해봤다.


그곳엔 '베트남 마지막 날을 추억하며. 한국으로 이 엽서를 보냅니다. 미스터동.'이라고 적혀 있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우체국을 나왔다. 저 멀리 있는 태양도 오늘 하루 종일 열을 내뿜는다고 지쳤을까. 그 기력을 다하고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난 우체국 입구의 계단에 걸터앉았다. 내 옆엔 하얀 살색을 가진 여성 3명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고 서 있는 백인 여성 1명이 있었다.


그렇게 나를 포함한 5명이서 아무 말도 없이 앉아있었다. 그들은 휴대폰을 뒤적이는 것이 다음 여행지를 검색하는 듯 보였고, 난 그저 바람을 맞고 있었다.


그러길 5분. 난 그들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봤다. 그들 중 한 명이 간단히 답했다. "북유럽이요" 그리고선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그 답을 하기 전, 내가 재차 물었다. "북유럽 중 어디? 노르웨이, 스웨덴 어디야?"


또 다른 그들 중 한 명이 '노르웨이'라고 했다. 


어허. 내가 대한민국 행정학도 아니겠나. 그들에게 그랬다. "복지 강국 스웨덴에서 왔구나! 너희들 친구들이야?" (행정학도가 아니라도 스웨덴이 복지강국이란 건 안다)


근데 참. 동양인은 나이가 들수록 동안이다. 당연히 나보다 누나일 줄 알았던 그녀들. 알고 보니 20대 초반이다. 서양인들은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나이를 알고서 놀랐지만 놀라지 않은 척했다.


"Bye~. Have a nice day!"


노트르담 성당이 보인다.


마리아가 보인다.



목적지 없는 발걸음


'터벅터벅'


좀 불안하기는 했다. 꼭 우리네 인생처럼. 우리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면 그렇지 않을 거다. 


하지만 맘대로 되지 않은 게 인생이고 여행이다. 그래서 우린 계획을 세우고 이를 따른다. 그나마 불안을 달래 본다.


하지만 지금 난 그저 걷고 있다. 목적과 목표가 없다 보니,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느려졌고 날 앞질러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차량 사이를 비집고 걸었다.
그들의 일상을 파고 들었다.


여행의 속도가 느려졌다. 거리에서 대화 중인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사람들 표정이 내 눈에 담겼다.


가판대에서 국수를 사 먹는 아저씨,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아줌마. 교복을 입고 재잘거리는 초등학생들.


누군가는 인상 쓰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웃고 있었으며. 그리고 누군가는 그들을 관찰했다.


배가 고파, 빵 하나를 사먹었다.
유니클로 상표가 보인다. 하지만 유니클로 옷은 안 판다. 아이러니 그 자체.



종교와 마주하다



와... 역대급이다



호치민의 퇴근시간이었다. 그런 것 같았다.


'베트남 국민께 알립니다. 미스터동 저 자식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오토바이를 끌고 가보세요!!!'


이런 방송이라도 한 걸까. 오토바이가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런 표현이 적절할까. 사오정이 입 안에서 나방을 내뿜던 것처럼 오토바이가 나오고 있었다.

저... 길 좀 건널게요...
외국인인 내가 신기하셨나보다..하하..


뭘까. 진짜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핑크색. 키티가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은 성당을 발견했다. 


'떵딘 성당'. 나중에 알게 됐지만 우리나라에 익히 알려진 성당이었다.


조심스럽게 성당에 들어섰다. 늦은 시간이었는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성당 안에는 미사를 진행 중이었던 것 같다.


내 종교는 불교다. 하지만 성당이라는 공간을 참 좋아한다.



1년 전, 내가 홍콩에 갔을 때였다. 


화려한 홍콩의 마천루를 보고 나서 우연히 한 성당을 들리게 됐다. 정말 우연히. 아주 작게 열린 성당 대문을 통과해 들어갔다.


거긴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라고 했다.


웅장하게 울려 퍼지던 오르곤 소리, 천장에서 뱅글뱅글 돌아가던 선풍기. 모든 게 평화로웠다. 거기서 난 진실되게 기도했다. 성당에 다녀보지 않아서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 진 모르지만 진심을 다해 기도했다.


마음은 차분해졌고, 내 기도처럼 모든 게 잘 되리라고 생각했다.


난 아직까지 홍콩 여행을 떠올리면 그것을 가장 먼저 생각한다. 화려한 홍콩 야경보다.


그래서 '성당'이라는 곳을 참 좋아한다.




다른 사람의 기도가 방해되지 않게, 성당 맨 뒤에 섰다. 그리고 간이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렇게 15분 정도를 앉아있었다.



예수의 발자취를 표현해놨다. 기독교의 역사를 대략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죽은자와 산 자가 공존돼 있어, 매우 특이했다.



안녕. 밤


밤이 깊어졌다. 오늘은 베트남 호치민의 마지막 밤.


오토바이를 탔다. 한결 여유로워진 라이딩. 


오토바이 뒷자석에서 거리를 찍어봤다.


여행자 거리는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가슴을 울리는 베이스 소리와 정신없이 휘갈기는 레이저. 그리고 남녀가 뒤섞여있는 테이블.


이 밤을 어찌 잊으리.


길고 긴 호치민에서의 그 간의 일주일이 이제 끝마쳐 간다.


내일 아침 일어나면, 어제처럼 쌀국수를 먹으러 갈 것이다.


단단한 추억을 다지기 위해.



8편 끝. 9편(마지막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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