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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동 Jul 31. 2018

미스터동의 캄보디아 여행기 1편

앙코르와트를 보러 가다, 씨엠립 출발 편


맹렬하고 장엄한 역사의 현장에 서다



감히 사람이 했을 거라 생각되지 않았다. 그곳은 신의 영역이었고 신을 위한 공간 일지니.


선글라스를 벗어재낀 뒤, 맨눈으로 그 경이로움을 목도했다.


아직도 800년 전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


보디아 국민의 자존심이자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



나는  '앙코르와트' 앞에 섰다.


Photo by Cristian Moscoso



캄보디아, 출발선에 올라서다



다시 공항에 왔다. 베트남 호치민을 다녀온 지 두 달만이다.  


조금 늦은 시간이 돼서 김해 공항에 도착했다. 오후의 해는 넘어갔지만 파란 하늘의 여운은 아직 남아있는 상태였다. 손목시계를 보니 7시 되기 3분 전.


저녁식사 시간이지만 배는 고프지 않았다. 긴장감이 내 단전을 누르고 있었을 터.


나는 공항 출국장에 들어섰다.


높은 천장에서 나오는 안내방송. 간혹 '내 이름이 나올까'하고 귀 기울여봤지만 아직 나타나지 않은 승객을 찾는 게 전부였다.


승무원 목에 걸린 무전기에선 끊임없이 사람 목소리가 치고 빠진다. 그리고 골프웨어를 입고 껌을 딱딱 씹는 남자, 햇빛은 없지만 선글라스를 모자에 걸친 여자가 눈에 보였다.


총알은 있는지 한번 물어보고 싶은 공항경찰이 공항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러니깐, 공항은 지극히 평범했다.


아니, 잠깐. 공항이 평범하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공항은 북적댔고 어제와 다른 새로운 사람들의 들뜸이 꽉 차있었다. 그러니깐 사실 평범하다곤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평범'하다고 느낀 건, 그동안의 여행과는 달랐기 때문.

들뜨고 설레지 않았다. 차라리 '구태여 가야 하나' 하는 근심과 귀찮음으로 가득했다.


나는 승무원에게 무심하게 여권을 내밀었다.(라고 하지만 웃으며 인사했다) 그리고 창가석으로 달라고 했다. 그동안 비행기를 타면서 화장실에 가본 적 없기에. 이번에도 아마 그러겠지.


5 시간 하고도 10분 더. 부산에서 캄보디아 씨엠립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하... 유럽도 아닌데 오래 걸리네...'라고 나는 생각했다.


김해공항 출국장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


1861년 캄보디아 씨엠립. 이곳에서 프랑스 학자 앙리 무오가 수백 년 동안 정글 속에 파묻혀있던 '앙코르와트'를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진다. 규모면이나 예술적인 면에서 앙코르와트는 단번에 세계 불가사의한 건축물로 꼽히게 됐다.


그렇게 씨엠립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보다 훨씬 유명한 도시가 됐고 연간 400만 명의 관광객을 세계에서 끌어모으고 있다.


하지만  씨엠립을 가고 싶어 가는 건 아니었다.


여러분 주위를 둘러보시라. "나 이번에 캄보디아 자유여행 간다~신난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지. 아마 없을 거다.


그럼 난 왜 가나.


그저 항공권 특가가 떴었다. 생각 없이 샀고 어느새 내가 공항에 있게 됐다.


그랬다. 나는 어딜 가는지 염두에 두지 않고 항공권 특가만 보고 샀다. 그러니 평소 내가 가고 싶어 하던 여행과는 감정이 다를 수밖에.


커피 한 잔을 먹었다.

캄보디아로 가기 하루 전. 급하게 교보문고를 들렸다.


씨엠립 관광을 위한 책 한 권을 사기로 했다.


캄보디아 씨엠립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찾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씨엠립을 가는 자유 여행객 수는 여타 일본, 중국, 태국 등에 비해 극히 적다. 그리고 보통 패키지 투어로 캄보디아 여행을 떠나니 자유 여행에 맞는 정보가 거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게 씨엠립 관광 바이블이라 불리는 책 하나가 있다.


그 책은 '앙코르와트 내비게이션'.


이 책은 오직 씨엠립과 앙코르와트에 대해 기술돼 있었다. 다른 책이 태국과 라오스 여행에다가 부록처럼 '캄보디아 편'이 포함된 것과 달랐다.


가방에 책 한 권을 넣어두고 집에 와 잠을 청했다. 짐도 계획도 꾸리지 않고.


'비행기 타고 가는 동안 하면 되겠지...'



비행시간이 다가오니, 사람들이 게이트로 몰렸다.


비행기 탑승 30분 전이다. 탑승게이트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웅성웅성한 소리가 커졌다.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가니 패키지로 떠나는 중장년층이 대부분이었다. 그 속에 내가 있자니 조금 어색했다.


그리고 바닥에 앉아 있는 아이 다섯 명이 내 앞에 있었다. 보호자로 보이는 아주머니 자신은 의자에 앉아 캄보디아 관련 퀴즈를 내고 있었다.


아주머니의 맛깔난 퀴즈쇼 진행에 내 눈은 휴대폰을 보고 있었지만 귀는 퀴즈쇼에 '쫑긋' 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이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퀴즈를 단번에 맞추고 있었다. 그건 마치 누구나 알고 있는 퀴즈여서 '스피드'만이 유일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난 아이들이 정답이라고 외친 것을 듣고도 퀴즈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큰일이었다.


나는 서둘러 '앙코르와트 내비게이션'을 폈다. 내가 여행 준비가 안돼도 너무 안된 것이었다.


여행을 떠나는 직전, 비행기 탑승 30분 전. 그제야 여행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아저씨의 손가락이 고의가 아니길 빌어본다.



귀중한 인연은 개척하는 것



"승객 여러분. 기장입니다. 우리는 잠시 후 씨엠립 국제공항에 착륙합니다. 현재 씨엠립의 날씨는 고온다습으로..."


기장의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그래. 나는 크메르 제국의 영광, 캄보디아 왕국에 들어섰다.


그리고 알았다. 우리가 5시간 10분 동안 떠들었다는 것을.




오후 7시 47분. 부산 김해 국제공항 주기장.

캄보디아로 떠나는 비행기에 가장 먼저 올라섰다. 텅 비어있는 비행기 내부를 보며 내 자리를 찾아 나갔다.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나만을 위해 준비해놓은 느낌이랄까.


내가 자리에 앉자, 등산복을 교복으로 지정해놓은 듯한 패키지팀이 비행기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40-60대로 보이는 분들의 옷에는 형광색이 필수로 들어가 있었다. 길을 잃어버려도 금방 찾을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순간 비행기 인테리어를 해놓은 관광버스를 탄 것 같았고 동시에 여긴 완전 아수라장이 됐다. 흡사 시골 5일 장 분위기였다. 아직 승객이 다 타지 않았지만, 일행과 같이 앉으려고 자리를 바꾸려는 아주머니로 줄이 꽉 막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본 다른 아주머니들이 덩달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다른 사람과 자리 교환 협상에 들어가고 있었다. 아뿔싸. 자신의 짐부터 넣으려고 좁은 복도를 파헤치고 다니는 아저씨까지 등장해버렸다.


이로 인해, 몇몇 손님은 복도에 아주 껴-버렸다. 소위 말해 '지못미'.


승무원은 우선 '자신의 자리에 앉고, 짐은 순서대로 넣어달라'고 '소리'쳤다. 아이고 어떡해. 그건 내 귀에만 들렸다. 어찌나 시끌벅적하던지.


에라 모르겠다. 난 차라리 뽕짝 노래나 틀어줬으면 했다. 승무원에겐 미안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더 신나게 말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비행기 안은 어느 정도 안정됐다. 패키지팀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다소 시끄럽거나 통제가 안 될지 언정 밉진 않았다. 그들은 유쾌하다. 웃음소리부터가 다르다. '하하'라고 웃지 않고 '깔깔'하고 웃는다. 여기에 박수까지 곁들여지니 나 역시 덩달아 흥겨워진다.


그리고 내 옆에 이제 막 신혼으로 보이는 부부가 앉았다.


곧 비행기가 후진하기 시작했다.(사실 비행기는 토잉카로 후진을 당하는 거다) 이때, 창가석 앉은 사람들의 특권이 있다.


떠나는 비행기를 향해 공항 관계자들이 손을 크게 흔들어준다. 이게 별 거 아니지만 사람 기분을 무지하게 좋게 만들어준다. 마치 나보고 '걱정 말고 조심히 다녀와~'라고 전하는 마음 같다. 나는 비행기 창문 너머에 있는 이들을 향해 소심하게 손바닥을 흔들었다. '고마워요!'


타이페이 도시 쪽으로 간다.


"안녕하세요. 여행 가시는 거예요?" 나는 옆자리 부부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다 돌아온 대답은 "아니에요~"였다.


살짝 당황했다. 내 예상 답변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난 당연히 그들도 나 같은 여행객인 줄 알았다.


나와 자리 한 칸이 떨어진 복도 측 자리에 앉은 남자가 말했다. "우린 부부인데요. 캄보디아에 살아요"


난 깜짝 놀랐다. 현지 교민을 만나다니. 정말 크나큰 행운이었다.


"캄보디아에 혼자서 놀러 오신 겁니까? 이야. 대단하시다!" 남편에 내게 말했다. 난 오히려 캄보디아에 정착해 사는 그들이 더 대단했다.


내가 말했다. "부인께서는 정말 미인이시네요. 그런데 남편은 아니라서 부부라고 생각 못했어요. 크크"라고 짓궂은 농담을 건넸다. 부인을 높이고 남편은 살짝 깎아내리는 농담은 100이면 99는 성공한다.

남편은 자신의 아내가 미인이라는 말에 기분 좋아하고 부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내 농담은 반농담 반 진실이었다. 실제로 남편은 피부가 까무잡잡하면서 덩치가 우람했지만 부인은 피부가 하얗고 체격도 작으셔서 대비가 많이 됐다. 야수와 미녀의 현실판이었다.


그러자 남편은 나를 향해 가볍게 반격했다. "저와 많이 닮았는데요?"젠장.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나는 앞으로 외모 공격은 하지 않기로 이때 마음먹었다.


곧이어 내가 먼저 말했다. 딱 봐도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니 반말하시라 했다. 그리고 난 삼촌이라 부른다고 선언했다.


그 사이, 기내식이 나왔다. 따끈따끈한 해물볶음밥이었다. 삼촌은 내게 자신의 기내식을 양보했다. 소화가 안된다며. 밥을 양보해주는 삼촌. 완전 호감이었다. 삼촌이라 부르길 잘했다.


불 꺼진 기내. 자야 했지만...


기내식이 치워진 테이블엔 '앙코르와트 내비게이션'이 올려줘 있었다.


삼촌은 이 책을 쓴 저자를 안다고 했다. 그리고 책을 보며 관광 경로를 짜다 궁금한 게 있으면 부담 갖지 말고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말했다. 엄청 든든했다. 흔치 않은 기회이자 소중한 인연이 맺어진 순간이었다.


삼촌은 캄보디아 현지에서 관광업, 부동산업 등 여러 사업을 한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부인은 삼촌이 가이드도 했다고 거들었다. (돈 많이 벌어서 좋겠다고 부인께 말했더니, 행복한 미소를 지으셨다)


그러다 나는 아예 책을 덮었고, 삼촌은 부인과 자리를 바꿔 내 옆으로 왔다. 본격적인 만담이 시작된 거다.


삼촌은 씨엠립과 앙코르와트 지도를 펼쳐 내가 갈 경로를 설정해줬고, 현지에서 주의할 점일러줬다. 다행히 설정해준 경로와 일러준 여행 팁이 나와 정말 잘 맞았다. 여행 스타일이 비슷해지니 삼촌과 난 더 친밀해졌다.

진짜 거짓말 안 하고 다른 사람이 우릴 봤다면 한 3년은 알고 지낸 사이라고 봤을 거다.

그리고 혹시 여행 중 문제가 생기면 연락하라고 삼촌은 자신의 카톡 ID가 적힌 명함을 건넸다.


고마웠다. 나는 부인을 향해 "이제 보니 깐 (못생긴) 삼촌과 결혼한 이유가 있으시네요. 엄청 다정하시네요"라고 말했다. 부인은 그 모습에 결혼했다고 했다. 난 문득 궁금해졌다.


은 어떻게 만나게 된 걸까.


그렇게 삼촌의 연애 특강은 장장 2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특히, 내가 자신과 닮았으니 유심히 들으라고 했다. 나 같은 사람도 미인과 결혼할 수 있다고.


기분이 묘하게 나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비법이 매우  알고 싶었다.


기나 긴 2시간 특강을 요약하면 이렇다. '약약-강-무-강'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다고 해서 무작정 들이밀면 안 된단다. 천천히. 그리고 편안하게. 바로 '약약(smooth)'


그렇게 다가서다 갑작스러운 '강(strong)'이 있어야 한단다. 상대방이 '어라 쟤가 나에게 관심 있네'라고 느끼게.


핵심은 '강' 다음이다. 우리와 같은 '과(species)'에겐 미인이 넘어오지 않는단다. 이 역시 부정하기 힘든 팩트였다. 뼈를 제대로 맞았다. 정강이가 얼얼하다.


"그래서요? 그다음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캄보디아 씨엠립 공항에 우리 비행기가 착륙한다. 호치민과 달리 야경이 거의 없다.


계속 어필하다 보면 상대방은 부담감을 느끼고 멀리하게 된다고. 그래서 '무(nothing)'가 필요하다고 했다.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알아버린 상대방은 자신에게 갑자기 어필하지 않으면, 괜히 신경이 쓰인다고 설명했다.


묘하게 설득력을 가졌다. 삼촌의 특강 내용보다는 실제로 미인에다가 마음씨도 좋은 부인이 삼촌 옆에 있으니 말이다.


한동안 연락이 뜸하다가 다시 다가서면 된다며 특강을 마쳤다.

내 언젠가 삼촌의 전략을 써먹으리.

그리고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기내 스피커에선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승객 여러분. 기장입니다. 우리는 잠시 후 씨엠립 국제공항에 착륙합니다. 현재 씨엠립의 날씨는 고온다습으로..."


착륙하는 비행기 안. 내 손엔 황사 마스크 2장이 쥐어져 있었다. 내일 툭툭이를 타면 먼지가 많이 날린다며 부인께서 주신 거였다.


아! 잠시. 그래서 그 부부는 맨 처음 어디서 만났냐.




부산의 한 나이트클럽이라고 했다.


큭.




3달러의 유혹, 뿌리치지 못했다.



캄보디아 공항의 악습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다.


캄보디아 입국을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한데, 현지 공항에서 바로 발급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유독 한국인에게만 비자 값과 별개로 1달러를 추가로 요구하는 것. 당연히 부당한 처사다.


만일, 1달러를 챙겨주지 않으면 길게 늘어선 줄 맨 끝으로 보내는 등의 방법으로 입국을 지연시킨다고. 왜 하필 한국인에게만 이런 관습이 생겨났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아마도 패키지 관광객의 빠른 입국을 위해 1달러씩 주던 게 고착화되었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썰이다.


그런데 나와 함께 왔던 삼촌은 그냥 3달러를 주라고 했다. 1달러도 아니고.



왜요?



난 아예 1달러도 줄 마음이 없었다. 돈을 계속 주니 한국인만 호갱으로 잡혀 돈이 뜯기는 것이다. 나는 그 단단한 댐을 조금씩 깨뜨려야 했다. 언젠간 작은 실 구멍이 큰 댐을 터트리는 거다. 미약할지 모르지만.


특히, 최근에는 젊은 여행객 중심으로 1달러 요구에 당당히 거부하자는 움직임이 강하다. 내가 여기서 돈을 주면 다음에 오는 관광객도 계속 줘야 할 거다.


난 삼촌에게 싫다고 했다.


삼촌이 말했다. "어차피 1달러를 줘야 할 거야. 그냥 그 실랑이 벌이지 말고 줘버려" 그러면서 "공항 관계자에게 3달러를 주면 VIP 혜택을 누릴 수 있어"


"VIP요?"


"비자발급을 위해 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입국 심사를 위해 대기하지 않아도 돼. 그냥 짐만 찾고 있으면 여권과 비자를 네게 가져다 주지"


나는 공무원에게 뇌물을 줘 특혜를 받는 일련의 행위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어차피 내가 예약해뒀던 호텔에서 나를 픽업하기로 해서 바쁜 것도 없었다. 나는 굳이 긴 줄을 서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 내게 삼촌은 계속 타일렀다. "3 달러면 적은 돈이잖아? 오늘 밤 빨리 숙소 가서 내일 여행을 준비하는 게 더 현명하다고"


나는 현실적인 문제도 언급했다. 3달러를 누구한테 어떻게 주냐고.


"내게 3달러와 여권을 줘. 그다음은 내가 알아서 처리해줄게" 삼촌은 말했다. 친절한 검은손이었다.


캄보디아 공항은 매우 작다.


삼촌의 설득에 결국 나는 그리 하겠다고 했다. 일종의 패스트트랙을 이용하는 셈이지.


비행기에 내려 공항 내부로 들어섰다. 삼촌은 제복을 입고 있는 공항 관계자를 부르더니 자신의 여권과 내 여권을 함께 내밀었다.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30초 남짓 나눴다.


나와 부인은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갑자기 군인 같은 사람이 날 보고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내가 간 곳은 수하물을 찾는 곳. 날 보고 짐이나 찾으라 했다.


그때 엄청 초조했다. 혹시 여권을 강탈당하는 건 아닌지 말이다. 계속 입국 심사장을 노려봤고 삼촌이 어딜 도망가는 건 아닌 지 감시했다.


아!

 

그리고 보니, 참 이상했다. VIP 서비스라고 해서 소수만이 이 서비스를 받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정식 입국 절차대로 비자발급을 기다리는 줄보다 나같이 밖으로 나와 'one-stop' 서비스를 받는 VIP들이 더 많았다. 대략 8할은 이미 입국심사가 끝나 있었다.


이게 입국심사인지 시외버스터미널에 티켓 판매소인지 헷갈리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방금 전 군인 같은 사람이 "Where is 미스터동?"이라고 외쳤다.


나는 손을 번쩍 들어 "me!"라고 했다. 다행이었다. 여권은 강탈되지 않았으니.


그는 시크하게 여권을 주고 가버렸다. 여권을 열어보니 캄보디아 비자와 입국 심사가 완료된 도장이 '쾅'하고 찍혀있었다.


삼촌은 내게 거들먹 거리며 말했다. "거봐. 엄청 빠르지? 좋은 여행하고 시간 되면 우리 집에서 와서 밥 먹자"


나는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약간은 떨떠름했지만.


난 그렇게 부산에서 캄보디아로 온 승객 중 가장 먼저 공항 입국장을 나설 수 있었다.




미스터동, 미아되다. 어떡하냐



오전 12시 12분에 모든 상황이 종료됐다. 난 무사했고 지금은 호텔에서 보내 준 봉고차 안이다. 나는 하마터면 국제미아가 될 뻔했다. 아직도 심장은 마구 뛰고 진정되지 않는다.


내 여행 수첩에 적힌 글이다. 유난히 저 글이 적혀있는 수첩의 종이만 너덜너덜했고 글씨체는 어지럽혀 있었다.


여행은 예기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라고 했지만 나만큼은 예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입국장에 나와서 'Mr.dong'이라고 적혀 있을 종이를 찾았다.


캄보디아로 오기 전, 내가 묵을 호텔에 메일을 보내 났었다. 공항 픽업 서비스를 해달라고. 물론, 무료라서 그랬다. 이번 여행에서 호텔은 4성급으로 씨엠립에서 꽤나 서비스 좋기로 호평이 난 곳이었다.


나도 언젠간 정말 좋은 호텔에서 자고 싶어 가격대가 있는 호텔을 예약해뒀다.


그리고 내가 김해공항에 있을 때, 공항 측으로부터 답신이 왔었다. 우리는 당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그리고 당신을 위해 공항 픽업을 기꺼이 할 것이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문의하라고 했다.


왜 내 픽업 기사가 없지?


그런데 내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있어야 할 기사는 없었다. 종이를 들고 있는 사람들은 대략 15명 정도였다.


나는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시선을 천천히 옮겼다. 그러기를 3번 정도 반복했다. 당황스러웠다.


픽업 기사가 조금 늦는 것일까.


침착하게 생각했다. 아니 일을 하다 보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괜히 호텔에 전화를 걸어 컴플레인 걸고 싶지 않았다. 픽업 기사가 문책당하지 않게.


그런데 점점 초조해져 갔다. 긴장이라고 표현하기엔 약하다. 엄청 떨렸다. 결정적이었던 건 공항의 실내등과 전등을 꺼졌다. 깜깜한 공항에 난 남겨졌다 아니 버려졌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들이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갔고, 공항에 남은 이는 불과 10명 정도였다. 그나마 5-6명은 공항 관계자였다. 공항 입국장을 가장 먼저 벗어났지만 가장 늦게 남게 됐다.


나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뭐지...' 불길함이 엄습했다.


우선 비행기 안에서 인연을 맺었던 삼촌에게 급히 카톡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호텔에 전화해 문의 좀 해주세요'


하지만 삼촌의 카톡 '1'은 사라지지 않았다. 삼촌은 운전 중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집까지 운전해서 간다고 내게 말했었다.


결국 유심칩을 구매했던 가게로 갔다. 떨리는 목소리와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눈동자로 말했다.



Help me



"호텔에서 나를 픽업하기로 했는데 오지 않았어. 나 좀 도와줘"라며 호텔 전화번호가 적혀있는 바우처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공항 입국장에 나오자마자 들렀던 유심칩 가게였다. 나는 당연히 현지에서 전화를 사용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고 데이터만 사용 가능한 유심으로 구매했다. 그래서 내 휴대폰으로는 호텔에 전화를 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바로 이렇게 전화가 필요한 일이 생길진 전혀 몰랐다.


다행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유심칩 가게 있는 청년은 바우처를 휙- 보더니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자신의 가게 앞에 내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정말 그렇게 잘생기고 멋진 청년이 또 어디 있을까. 그 순간 그는 내게 천사이자 구원자였다.


그리고 전화를 끝더니, 자신의 가게 앞에 있으면 된다고 했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난 컴컴해진 공항 대기실에 앉았다. 불안했지만 아까보단 나았다.


호텔에서 날 데리러 와줬다.


공항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하얀색 봉고차에서 내렸다.


날 보자마자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지금이라도 왔으니 상관없다고 했다. 그 남자를 보자 난 비로소 안심이 됐다. '이제 호텔에 갈 수 있다'


그때, '미스터동'이라고 적힌 종이를 든 남자가 쭈뼛쭈뼛 다가왔다. 원래 날 픽업하기러 한 기사였다. 그는 공항 뒤편에서 잠을 잤다고 했다. 나 참.


어쩌겠나. 상황은 이미 종료됐다.




호텔은 조용하고 차분한 공기를 머금고 있었다.


호텔명에 '템플'이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었는데, 그 이름에 걸맞게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를 해두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목재를 이용한 구조여서 시각적으로 편안함이 느껴졌다.


높은 천장과 넓은 방은 4성급 호텔 다웠다.
방문에서 침대까지 대략 15걸음 정도 되는 것 같다.
호텔 로비다.
무료로 수영장을 사용할 수 있다.



너 참 센스 있는 아이구나




Good morning



호텔 로비로 내려가니 툭툭이 기사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툭툭이. 오토바이 뒤에 좌석을 달아놓은 이동수단으로 저렴하면서 동남아시아 특유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다만, 매연과 먼지를 주의해야 한다.


나는 어젯밤 툭툭이 기사를 불러달라고 호텔에 부탁했었다. 오늘 하루 종일 나와 함께 이동할 툭툭이를 예약한 것이다.


그런데 돈이 좋긴 좋다. 비싼 호텔이다 보니 전용 툭툭이가 따로 있다. 그래서 툭툭이를 빌리는데 흥정할 필요가 없다. 당연히 바가지도 없다.


그리고 비용을 툭툭이 기사에게 주지 않아도 된다. 여행 마지막 날 호텔 체크아웃할 때, 호텔 로비에 지불하면 된다.


돈을 많이 벌어야 되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어쨌든 툭툭이 기사와 내가 오늘 갈 일정을 정리하고자 했다.


아! 우선 앙코르와트를 들어가기 위한 티켓이 필요했다.


"어이 꼬레안. 우선 타! 너 티켓 없잖아. 사러 가자"


"좋아. 가보자. 신나게 달려줘. 나 지금 엄청 설레거든" 나는 기분 좋게 툭툭이를 올라탔다.


본격적인 캄보디아 씨엠립의 여행이 시작된 거다.


툭툭이의 굉음이 내 심장 깊숙한 판막까지 흔들어 재꼈다. 고요하던 심장은 요동쳤고 양 팔에는 힘이 잔뜩 들어갔다. 꽉 잡으시라. 출발한다.


'부르 부르 부르릉!'


툭툭이 가운데 탔다. 생각보다 괜찮은 승차감이었다.
요리조리 잘 피해서 다니는 툭툭이.
강렬한 햇빛에 기사님이 걱정됐다.
앙코르와트 티켓을 파는 곳에 도착했다.


자. 이제 정리를 좀 해야겠다. 캄보디아 관광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이 여행기를 시작할 때 앙코르와트를 보러 왔다고 했다. 하지만 여긴 앙코르와트만 있는 게 아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난 앙코르 유적을 보러 온 것.


앙코르와트는 앙코르 유적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여 유명한 유적지다.


'앙코르'는 AD 802년부터 1431년까지 629년 동안 이어졌던 앙코르 제국의 왕도(王都). 그러니깐 왕궁이 있는 도시를 말하고 '와트'는 사원을 뜻한다.


그러니깐 앙코르와트는 앙코르 유적 100여 개의 사원 중 하나다. 그래도 앙코르와트가 가장 핵심적인 유적이라는 사실엔 변함은 없다.


어쨌든 앙코르와트 말고도 '앙코르 유적엔 볼거리가 많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앙코르 유적은 한 곳에서 통괄적으로 티켓을 관리하고 있는데, 앙코르 유적 티켓 한 장만 있으면 앙코르 유적지 어디라도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다.


아 그래서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뭐냐면.


난 앙코르 유적 티켓을 사러 갔다는 거다.


씨엠립에 온 관광객은 누구나 들리는 곳이다. 티켓을 사야 유적지에 들어갈 수 있으니.


툭툭이 기사가 앙코르 유적지 티켓을 파는 장소에 데려다줬다. 내가 티켓을 산 뒤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주차장 한쪽 끝에 툭툭이를 세웠다. 센스 있는 기사님!


아침 일찍이었지만 여긴 이미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달콤한 사탕에 떼 지어 붙어버린 개미처럼 바글바글했다.


티켓 창고가 많아 줄이 급세 줄어든다.


앙코르 유적지 티켓은 자유이용권으로 정해진 기간 안에 제한 없이 유적지를 관람할 수 있다.


그 종류는 3가지로 1일권, 3일권, 7일권이다. 3일권 티켓이 미화로 62달러인데, 이곳 물가를 감안하면 상당히 비싸다. 그리고 안타까운 것은 하루가 다르게 이 티켓값이 올라가고 있다.


어차피, 티켓값이 비싸다고 해서 관광객이 줄어들 진 않을 거다. 그리고 다음에 또다시 올 관광객의 발걸음을 돌리는 것도 아니다.

 

내가 생각해도 앙코르와트는 한 번 봤으면 됐지, 2-3번 다시 방문할 곳은 아니다. 유적지 자체는 훌륭하지만 일반인에게는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한편, 앙코르 유적 보존과 복원을 위해서 앙코르와트 폐쇄에 대한 무성한 소문이 매년 나돌고 있다. 이를 빌미가 티켓값이 오르는데 기인했을 거라고 나는 추측한다.


앞에 사람이 어떻게 사는 지 잘 지켜봤다.


외국에 나가면 카운터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당신(아니라면 죄송하다). 여기선 기죽을 필요 없다.


영어를 할 줄 몰라도 되고, 심지어 돈을 셀 지 몰라도 된다. 카운터 앞에 있는 도우미께서 친절하게 다 알아서 해주신다. 밑장 빼기나 바가지 염려는 하지 않아도 좋다. 굉장히 친절했다. 더군다나 웬만한 한국어도 좀 하셨다.


그래서 난 편안하게 티켓을 구매할 수 있었다.


아참! 그리고 사람이라면 생각할 수 있는 편법이 있다. '티켓을 7일권으로 산 뒤, 내가 3일 사용하고 나중에 3일권이 필요한 사람에게 팔면 이익이다'라는 잔머리 말이다.


하지만 잔머리는 잔머리고 편법은 편법이다. 티켓을 살 때, 증명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그 사진이 내 티켓에 딱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앙코르 유적 어딜 가나 내가 들고 있는 티켓과 사진 속 내가 같은 사람인지 철저하게 확인했다.


그러니 마음 편하게 티켓을 사는 게 좋다.


시원한 포카리!


티켓을 사고 나오는 길에 포카리 음료수 2개를 샀다. 나 하나. 툭툭이 기사님 하나.


내가 한 잔 마시라고 하자, 그는 "넌 참 센스 있는 아이구나"라고 했다. 나는 베트남과 다르게 여기 사람들은 순수하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다. 때가 타지 않은 것이라고 해야 하나. 뭐 그랬다.


나는 대뜸 물었다. 이름과 나이를. 그는 30대 초반으로 나보다 형이었고 결혼도 해 작고 귀여운 아기가 있었다. 물론, 뒤이어서 내 소개도 했다. 영어를 잘했다. 오히려 내 영어실력이 부족해 대화가 막히곤 했다.


좋다. 그럼 우리 호칭을 '형 동생'으로 하자고 했다. 그는 맑게 웃으면서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난 우리 서로를 '브라더'로 불렀다.



씨엠립 지도를 툭툭이에 올려놓고 내가 말했다.


"브라더! 난 오늘 앙코르와트를 가지 않을 거야. 그 주변에 있는 사원들을 둘러볼 예정이야. 브라더 생각은 어때?"


"어? 왜 앙코르와트를 가지 않는 거야? 앙코르와트가 최고 좋은 곳이야!"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처음부터 앙코르와트를 보면 다른 사원 구경이 재미없을까 봐. 주인공은 언제나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지. 맞지?"


브라더는 동의했다. "그것도 맞는 말이네. 그럼 내일 앙코르와트를 보러 가는 거고. 지금은?"


"앙코르 톰으로 가자"


강렬한 캄보디아 햇볕도 시원한 바람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현현한 곳, 올라서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곳. 아니 실망과 우려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곳.


여기 캄보디아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족히 몇백 년을 됐을 나무가 우거진 숲을 지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말해 돌덩이를 보러 가는 기분은 썩 좋지만은 않았다.


그냥 왔으니 어쩔 수 없이 본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이윽고, 잔잔한 호수. 잘랑거리는 물결과 약간의 뜸을 두고 들리는 새소리가 있는 곳에 다 달았었다.


거짓말 하나 하지 않고 단단한 몽둥이로 내 가슴 정중앙을 그대로 들이 맞은 것 같았다. 아니 맞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아름다운 호수를 보고 그런 건 아니었다.


호수 뒤 편에 자리 잡은 나무 사이. 그 사이로 보이는 돌 사원이 보였나니. 신비롭고 고혹한 그 자태가 살랑살랑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마주친 사원의 대문.


현현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현묘하며 심오하다.


이게 원래 있었던 것인지 사람이 만든 것인지 구별하기 힘들었다.


신의 영역에 당도하다.


그때.



툭툭이 기사가 내게 말했다.



"내려"

.

.

.

.

.

"What?" 난 진심으로 당황해 선글라스를 벗으며 말했다.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니 나보고 갑자기 내리라니.

 








1편 끝. 2편에서 계속



COPYRIGHT. 미스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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