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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동 Aug 13. 2018

미스터동의 캄보디아 여행기 2편

역대급 여행지임을 느끼다


[지난 1편 이야기]


미스터동이 탄 툭툭이가 앙코르 톰 입구에 다다른다.


그때, 미스터동은 귀를 의심하게 하는 말을 듣게 된다.








비현실적인 하늘과 함께



툭툭이는 시원스럽게 내달렸다. 툭툭이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바람은 내게 곧장 불어왔다.


툭툭이는 점점 울창한 숲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매캐한 매연냄새보다 풀 냄새가 더 많이 맡아졌다.


이윽고 앙코르 유적의 첫 관광을 알리는 입구가 등장했다. 이름하여 '앙코르 톰 남문'


그곳에서 약 100m가량 떨어진 지점에서 툭툭이는 멈췄다. 그리고 내 앞머리를 가르던 바람은 사라지고 말았다.


툭툭이 기사는 헬멧을 벗은 뒤 내게 말했다. "내려~"


어이가 없었다. 그가 내려라고 한 말에 난 그를 '브라더'라고 부르기로 한 약속을 취소하고 싶었다.

나는 말했다. "브라더, 난 오늘  툭툭이를 하루 동안 빌렸어. 너 그거 알고 있지?"


당연히 안다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뭘까. 뭐가 문제일까. 나는 'why?'라고 물었지만 그는 이해할 수 없는 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래 좋게 해석하자. 아마 여기서부터는 자동차가 못 들어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 앞을 내다보니, 좁은 문 사이로 자동차가 쉭쉭- 지나다니고 있었다. 내 해석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러니깐 이었다.


별 수 있나. 나는 관광객용 자동차는 제한하는구나라고 다시  판단했다. 이 정도면 만능 긍정맨이다. 나는 노력했다. 어떻게든 여행의 기분을 망칠 수 없기에.


"브라더! 그러면 '코끼리 테라스'라는 곳에서 만나! 알겠지? 거기서 기다려야 돼! 꼭!"


'앙코르와트 내비게이션' 그러니깐 내가 가져온 여행 책에 따르면, 헤어진 툭툭이 기사는 '코끼리 테라스'라는 곳에서 재회한다.


나는 간절함을 담아 말했지만 브라더의 대답은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였다. 답답노릇이었다.


결국, 속수무책이 된 나는 브라더와 인사를 한 뒤,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나중에 여기로 다시 되돌아오면 만날 수 있겠지...' 나는 텅 빈 허공에다가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


작다고 느껴진다면, 그 잘못은 오롯이 나다. 실제로 보면, 무거운 위압감을 자랑한다.


걸어 나갔다. 아니, 내가 걸어 난 게 아니고 저 이 날 부르고 있었다. 그래서 이끌리듯 내 몸은 당겨졌다고 해야겠다.


난 천천히 앙코르 톰의 남문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우리로 치면 경복궁을 보러 가기 전, 숭례문(남대문)을 통과하는 셈.


그때, 내 툭툭이가 내 옆을 슝-하고 지나갔다. "저!..저...하...어이없네..."


나는 그가 한적한 그늘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고선 별 수가 없기에.


해자에서 건져올린 머리가 있다.


앙코르 톰의 남문 앞엔 해자와 다리가 있다. 이를 건너면 진정 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다리에 올라서니 양 옆에 늘어선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52개나 되는 신의 형상은 다리 난간으로 몸통이 돼 인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멀리서 보니, 그들은 마치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난 그 형상을 어루만져보기로 했다. 사람으로 치면 어깨에 해당하는 부분부터 팔꿈치까지 천천히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꺼끌 거리면서도 어느 부분에선 부드러웠다. 수백 년의 시간 동안 바람과 비를 맞았을 거고 사람의 손이 닿았다. 즉,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것이라. 그래서 더욱 신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다만, 새하얀 시멘트로 복원된 몇몇의 형상은 그 신성함을 약간 방해하고 있어 아쉬웠다.


주위를 둘러보니, 같이 온 일행들은 서로 사진을 찍어 주고 있었다. 나도 그들처럼 '함께'였으면 좋았을 텐데. 태양은 더 뜨겁게 나를 향해 내리꽂았다.


해자와 다리


그래도 기념사진 한 장은 남겨야 되지 않겠나 싶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방앗간 냄새가 날만큼 달달한 동양인 커플이 보였다. 난 그들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난 남자를 향해 부탁했지만 정작 휴대폰을 가로챈 건 옆에 서 있던 여자였다.


"1달러를 줘야 사진을 찍어 줄 수 있는데요?"


난 순간 그녀의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보통 때였으면 당연히 농담인 것을 알아챘겠지만.


이미 그녀의 손에 들어간 휴대폰을 바라보고는 난 설마 휴대폰 강도인가라고 아주 살짝 추측도 해봤다. 아마도 너무 더운 날씨  과장된 상상을 했으리라. 그리고 툭툭이 기사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조금 예민해져 그랬던 것 같았다.


나는 눈썹은 지켜 올리고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네?"라고 했다.


그제야 남자가 그냥 농담한 거예요라고 말한 뒤 여자를 보고 이런 장난꾸러기! 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남자의 눈을 바라봤다. 남자의 눈망울은 그 여자를 온전히 담아내고 싶어 했다. 정말 사랑하는 사이 같았다.


여잔 나에게 빨리 포즈를 잡으라고 했다. 난 그제야 머쓱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내 카메라를 응시했다.


그렇게 내 사진 몇 장을 남기고 내가 말했다. "저기요-"



남문 위엔 '사면상'이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다.


"제가 두 분 사진 찍어드릴게요" 이번엔 내가 그들에게 사진을 선물차례였다.


남자는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여자는 만류하는 남자를 툭 치고는 곧장 나에게 카메라를 맡겼다.


나에게 카메라를 던져놓곤 포즈를 잡고 있는 커플. 난 그들이 준 카메라를 가만히 들고만 있었다. 그리고 난 콧방귀를 살짝 하고선 "What are you doing now?"라고 말했다.


여자의 미간은 좁아졌고 입은 쩍 하고 벌어졌다. 그녀는 나에게 왜?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한 말. "넌 나에게 1달러를 주지 않았잖아. 사진 찍으려면 나에게 돈 줘"


그제야 여자자신의 목젖을 내게 보여주려고 작정한 듯 세상에서 제일 크게 웃어젖혔다.


홍콩에서 왔다던 그 커플. 굳어버린 돼지기름 같이 기분 나쁘게 뭉개져있던 캄보디아 공기를 느슨하게 풀어줬다.



층층이 돌로 된 벽돌을 쌓아 올린 남문은 흡사 우리나라의 석굴암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맨 위에 위치한 사면상은 인자한 부처의 얼굴로 동서남북 모두를 향해 들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사면상의 크기는 생각보다 커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다.


그래서일까. 저 문을 지나면 말이지. 정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만 같았다. 정말로.




하지만 문을 통과하는 건 찰나였다. 무엇인가 대단한 걸 느끼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을 통과한다면 나는 다른 우주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라고. 아니, 적어도 다른 광경이 펼쳐지진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상상이었다. 난 현실에 두발 딛고 서 있을 뿐이었다.


짧았던 여운 탓일까. 문을 통과하고도 그 문을 한참 바라봤다. '그 옛날엔 저 무거운 돌덩이를 어떻게 쌓아 올렸을까'라는 단순한 생각과 함께.


그때.


그때였다. 내가 하늘에서 내리째는 햇볕이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 찾고 있을 때였다. 내 시선에 '나의 툭툭이 기사' 바로, 브라더가 보였다.


브라더는 나무가 만들어놓은 커다란 그늘에 앉아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서서 말했다. 정말 멋진 곳_wonderful이야. 앞으로 보게 될 유적이 더욱 기대돼. 그러자 그는 하얀 이를 내게 보이며 네 말이 맞아라고 수긍했다. 그러고 보니 브라더는 SNL에서 열연했던 김민교를 닮은 것 같았다.


그런 그를 뒤로하고 건물 5층 높이는 돼 보이는 나무가 양 옆에 즐비한 길을 따라 걸어가고자 을 떼었다.


툭툭이에서 한 세 걸음 정도 벗어났을까. 브라더가 날 불렀다. 왜?


브라더는 내게 어딜 가냐고 물었다. 나는 직선으로 나 있는 길을 가리켰다. 이 길을 따라서 걷겠다는 표시였다.


그랬더니 브라더가 내게 말했다. "걸어가기엔 너무 멀어. 넌 툭툭이를 타야 돼. 구경 다했으면 이제 툭툭이에 타!"


아하. 그랬던 것이다.


앙코르 톰의 남문. 그 앞에서 사진을 찍어라고 내게 시간을 준 것이었다. 일종의 배려인 셈. 일전에 브라더가 내게 '내려'라고 한 데엔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다.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툭툭이에 올랐다. 4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에 나 홀로 앉으니 여유로워 좋다고 생각했다. 점점 캄보디아 여행에 적응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어라.


나무가 만들어준 그늘과 녹읍. 그리고 툭툭이가 내지르면서 만드는 바람이 내 뺨 결을 살포시 어루만지며 스쳐갔다.



브라더가 찍어준 사진이다.



침을 삼키기 힘들었다



정말. 침을. 으음, 침조차 삼키기가 힘들었다.


하늘색 구름 도화지에 정교하게 합성한 건 아닐까라고 난 생각했다. "아니, 이건 실제로 네가 마주한 조형물이야"라고 들려왔다. 마치 내 생각을 읽은 듯 그것이 내게 말을 건넸다.


어떻게 정글 속에 이런 게 있을까. 난 차라리 이건 드라마 세트장이야 정신 차려라고 말해줬으면 했다. "아니라니깐 글쎄. 넌 지금 실재_existence에 왔어" 그것이 또다시 내 생각을 읽은 듯 말했다.


바이욘(앙코르 톰 유적 내 사원)을 마주한 순간.


캄보디아 여행에 대한 불신과 염려가 사라지는 시간이었다.


여기. 그래 내가 왔다. 사진을 자세히보면, 인자한 부처의 얼굴 수십개가 보인다.


아직 앙코르와트를 보진 못했지만 이것만 봐도 충분하지 않을까라고 넘겨짚어봤다.


약 1000년의 세월을 버티고 있는 거대한 석조 사원은 가히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첫 감동은 거대한 규모보다 세밀한 꼼꼼함에서 표출하는 그 화려함에서 왔다. 돌 하나하나 조각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 뜻은 사람의 손길이 대충 흘러나갔을 돌덩이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리라.


세밀하게 조각된 돌이 거대한 하나의 건축물로 만들어진 건 분명 자연스러운 건 아니었다. 대단히 인공적이라 해야 했다.


이는 분명 사람이 만든 것 일터인데. 난 어찌 된 것인지 자연적인 자연을 보는 것 같았다.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고 싶어 하는 마음이랄까. 인위적이었지만 어색하진 않았다.


그래서 그럴까. 그늘 하나 없는 땡볕이었지만 오랫동안 내 두 눈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이곳까지 와서 휴대폰 앵글로만으로 목도하긴 싫었다.



책을 살펴보니, 지금은 그저 까만 돌로 이뤄진 외관이 과거엔 금칠로 되어 있었을 거라고 추측된다고. 그 모습을 상상해보니 당대의 화려함은 지금보다 배였으리라.


기둥 몇 가닥이 간신히 살아남은 아테네 신전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신성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때 생각한 것이 지금도 변함없이 생각하고 있는 게 있다.



내가 다녀온 여행지 중 최고다



앞으로 내가 어딜 여행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여긴 최고의 여행지 중 하나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멋있는 유적과 맛있는 음식 그리고 시원한 마사지가 있는 곳이니 말이다.(마사지는 나중에 얘기하겠다)


여긴 사원이다. 따라서 긴 바지를 입어야 한다.


난 조심히 아주 조심히 발자국을 떼었다. 혹시 가여운 개미 하나를 밟진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말이다.


박물관에 갔을 때처럼 유리창 너머로 문화재를 바라보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깊고 근엄한 역사를 품고 있는 문화재, 그 안으로 들어갈지니. 어찌 진정된 마음을 가지겠나.


바이욘에 점점 다가서자 심장소리가 내 귓속에서 울려 퍼졌다. 점점 더 크게.


하늘 아래 삐죽삐죽 나와있는 수많은 사면상이 보인다.


돌 하나하나 조각되고 기록되어 있다.


벽에 새겨진 당시 병사들은 제각기 다른 표정과 다른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복사-붙여넣기를 한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이 건물을 지을 때 얼마나 많은 수고와 노력이 들어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세월을 비껴갈 순 없었는지 곳곳에 파손되거나 부식된 흔적이 보였다.


마음이 아팠다. 만일 지금의 캄보디아가 이 건축물이 지어진 크메르 왕국 때처럼 소위 '잘 나갔다'면 이 유적은 어땠을까.


선조의 위대한 유산을 이리 놔두진 못했을 거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봤다.


그리고 먼 훗날, 아니 멀지 않은 내일. 우리는 '현재의 앙코르'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보존되지 않아서. 더군다나 지금과 같이 많은 관광객 방문은 이를 촉진시킬 것이 자명했다.


과거, 우리는 석굴암 내부까지 모두 볼 수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마주한 석굴암은 유리 차단벽으로 가로막힌 문화재로 전락했다. 여기에 에어컨으로 인공호흡기를 달아 억지로 숨을 붙여놓은 상태다.


물론 우리의 잘못만으로 석굴암이 그리 된 건 아니다. 하지만 문화재를 올바르게 보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난 여기 캄보디아에서 석굴암의 모습을 그려봤다.


지금 난 앙코르 유적에 발을 딛었지만 언젠간 이곳도 갇혀있는. 그리고 인공호흡기와 줄줄이 달린 약물에 연명하는 시한부 신세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세계유산인 만큼 우리가 도울 방법은 없을까'


이 질문까지 오면서 생각이 들었던 건 '일본은 참 대단한 나라다'였다.(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적인 뜻에서 말이다) 다만, 이 얘긴 다음 기회에 얘기해야겠다. 우선은 '앙코르 톰'에 더 집중할 때이니깐.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는 문화재 조각들. 관광객의 발길에 차이고 있었다.
어디서 떨어진 걸까.
한 관광객의 포즈와 천장의 사면상의 표정이 절묘하다.
부처의 형상은 눈에 뜨지 않은 곳에서도 조각돼 있다. 사실상 여기선 '빈' 공간이 없다.



우선, 거절할게



미안한데 나 혼자 있고 싶어



내가 그에게 말했다. 뭔가 미안했지만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였다.


그래도 그는 내 곁을 벗어나지 않았다. 솔직히 싫진 않았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은 있었다.




나는 바이욘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고 있었다. 바이욘 내부가 워낙 복잡해 어디로 올라가야 할지 헷갈렸다.


게다가 돌로 만들어진 내부엔 전등 같은 건 없었다. 나는 완전히 어둠 속에 삼켜졌다. 어떨 땐, 커다란 물고기의 위장 속으로 들어온 건만 같았다.


그래도 무섭진 않았다. 소리는 유일하게 내 발자국 소리만을 허용했지만 이따금 어디선가 새로운 관광객이 내 앞으로 등장했다. 내심 반가웠지만 난 특별히 반응하진 않았다.



하지만 같은 공간을 두 바퀴 정도 맴돌았다는 것을 내가 알았을 때. 가슴속 깊이 묻혀있던 고독함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의 치명적 단점이 출몰한 것이리라.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혼자선 헤쳐나가기가 힘들 때가 있다. 진흙 속에 파묻힌 내가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렸지만 그럴수록 진흙은 나를 더욱 끌어당긴다.


그렇다고 해서, '함께'였다고 문제가 쉽사리 해결됐을까.


그건 아니지. 그래 그건 아니다. 하지만 문제의 상황을 공유하는 것만이라도 해결을 위한 에너지가 된다.


자. 난 지금 이 문제를 같이 공유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까부터 나를 따라오던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조용한 유적지 내부


"Hey. my friend! Where you from?"


그가 내게 말했다. 언제 봤다고 친구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친근함을 들어내고 싶어 하는 건 분명했다.


낯선 여행지에서 알 수 없는 친절함은 반드시 주의해야 하지 않겠나.


"미안하지만 난 혼자 있고 싶어"


사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리고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난 그렇게 말했다.


뭔가 미안했지만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였다.


그래도 그는 내 곁을 벗어나지 않았다. 솔직히 싫진 않았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은 여전했다.


나의 거절에도 그는 내 뒷 꽁무니를 계속 따라다녔다. 그 집요함에 나는 할 수 없이 대답해주기로 했다.


"나 한국에서 왔어. 여기 매우 덥다. 그렇지?"


그러자 그는 "맞아. 네가 한국에서 왔다면 더 덥다고 느낄 거야. 한국은 여기보다 덥지 않아"


정말 잘 알고 있었다. 다만 2018년의 여름은 동남아보다 더웠지만.


그는 자기를 따라오라며 바이욘 1층 곳곳을 설명해줬다. 일반인들은 잘 모를 구석구석을 이끌었다. 그러면서 설명도 곁들었다.


솔직히, 좋긴 좋았다. 그냥 지나쳤으면 알지 못했을 것을 알게 되니 좋았다. 특히, 뱀 모양의 의자에 앉은 부처상 그리고 그 위에 태양과 일직선으로 만들어진 빛 구멍은 그가 아니었으면 모르고 갔을 것이다.


하지만 느낌이 이상했다. 그래서 계속 불편한 기색을 내보였다.


그리고 난 다시 한번 강력하게 말했다.


"네 친절에 감사해. 진심으로 말이야. 하지만 난 지금 혼자 있고 싶어"


그제야 그는 날 따라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마치 연기로 변한 것처럼 '펑'하고 사라져 있었다. 정말 순식간에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나중에서야 그의 정체를 알게 됐다. 음. 그의 정체는 '그 사건'을 소개할 때 말하는 게 좋겠다.




'나'라는 존재



내가 백두산 천지를 갔었을 때다. 지금으로부터 약 6-7년 전이지.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던 천지를 난 마주할 수 있었다.


조금 과장해보면, 나는 천지를 보고는 산 꼭대기에 바다가 있는 줄 알았다. 그러니깐 상상할 수 없었던 광경을 봤던 것이리라.


그리고 천지의 물은 금방이라도 찰랑찰랑 거리다가 온 우주를 적실만큼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여기서 그때 그 느낌이 다시 들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무더운 한여름에.


그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느낌.


바로, 37개의 사면상과 눈이 딱 들어맞았을 때. 머리가 아닌 피부가 말해주고 있었다.


사면상. 크메르의 미소라고도 한다.
자비와 온화함이 보인다.
포즈를 잡고 있는 중국 관광객.


애초에 크메르의 미소, 사면상은 54개가 있어야 하지만 지금 남아있는 건 37개뿐이다. 복원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던 모양. 안타까운 사실이다.


그래도 남아있는 사면상에서 재밌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언뜻 봐도 모두 같은 얼굴인 것. 하지만 표정은 모두 다르게 하고 있다. 그들의 차이점을 찾아보는 것이 포인트다.


꽤나 큰 사면상의 크기와 높이가 청명한 하늘빛과 절묘했다. 고도화된 과학기술을 가진 오늘. 인간이 우주에 갔다가 되돌아오는 오늘날. 그럼에도 종교의 아우라는 대단했다.


자- 그렇다면 사면상은 누구인가. 부처인가.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면 당대의 왕인가. 이것 또한 확실하지 않다고.


분명한 건, 종교적 의미가 있다는 것과 앙코르 유적의 대표선수라는 거다.


그래서 이곳 씨엠립 기념품엔 앙코르와트 미니어처에 못지않게 사면상 미니어처가 가장 잘 팔리는 기념품 중 하나다.


나도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사면상 미니어처를 사 왔다. 지금은 우리 집 여행 기념품 진열장에 들어가 있다.


1000년 전 변소로 보인다.
크메르의 미소 안엔 부처가 있다.


사면상에 둘러싸인 중앙탑 안에는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언뜻 보기에도 이곳 사람들이 여길 신성한 장소로 여기는 건 분명했다.


신발을 벗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장소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어 한쪽에 가지런히 놓았다. 차가운 돌바닥 기운이 내 발바닥으로 올라왔다.


북적되던 바깥과 달리 매우 엄숙했다. 내부를 밝히는 용도인지 종교적 의미로 놔둔 건지 모르겠지만 촛불은 꼿꼿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부처상에 다가갈수록 향 냄새가 짙게 풍겼다. 살짝 기침이 나올 정도로.


나는 현지인들 기도에 방해되지 않게 벽 쪽에 바짝 붙어 섰다. 그리고 두 손바닥을 맞붙인 채 간절히 바랬다.


'가족의 건강을'




그냥 좋았다



아직 바이욘 3층.


3층이라고 하지만 실내는 아니다. 옥상이라고 봐야 정확하지.


어쨌든 나는 다시 바깥으로 나왔고 사면상을 또 마주했다. 여전히 사면상은 미소 짓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중국어가 들렸다. 딱히 듣기 좋다고 할 순 없었다. 시끄러웠기에.



뜨거운 햇볕을 피할 만한 적당한 장소를 찾았다.


한낮. 태양의 열기로 그늘진 곳엔 사람들이 꽉 차있었다. 나는 목이 타는 갈증을 느꼈다. 심각한 가뭄으로 몸이 쩍쩍 갈라지는 듯했다.


그때, 돌로 만들어진 창틀이 보였다. 두꺼운 창틀 덕분에 사람 하나 앉을만한 자리였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그 자리를 뺏길까 봐 냉큼 가서 앉았다.


그렇게 나는 바이욘 맨 꼭대기에 위치한 창틀에 앉았다. 바람이 불어왔다. 뜨거운 태양의 열기로 살짝 데워진 공기였지만 아무렴 어떤가. 여기가 제일 명당이라 여겼다.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서 내가 제일 여유로운 사람 같았다. 이보다 더한 한량은 없으리라.


시간을 엄수해야 할 패키지팀은 창틀에 앉을 시간이 없어 보였다. 사면상을 휙 둘러보고는 내려가기에 바빴다. 그리고 친구끼리 와도 바이욘 꼭대기에서 오래 있기엔 무리다. 왜냐면 햇볕을 피할 창틀 크기는 1인용이었으니.


난 오늘 하루 종일 여기 있을 거라서 급할 것도 챙겨할 일행이 없다.


마음 놓고 자리에 앉아 주위를 구경했다.


창틀을 가까이서 봤다.


가방에서 물을 꺼내 들었다.


호텔 방에 있던 로, 아침에 가방이 무거울까 봐 들었다 놨다 했던 물이었다.


캄보디아의 찌는 듯한 더위에 물은 미지근했지만 이보다 달콤한 맛이 있으랴. 전날 과음한 뒤 아침에 마시는 물과 같았다. 고량주를 들이켠 것처럼 장기 하나하나 위치를 일깨우며 내 몸을 적셔줬다.


미지근한 물 한 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어라.


나는 한국에서 챙겨 온 책. '데미안'_헤르만 헤세 을 폈다.


이것을 들어 옮기고, 조각하고, 조립하기까지 상상하기 힘들정도의 수고다.


'데미안'


내가 산 책은 아니다. 고마운 내 친구가 사준 책 한 권이다.


원래 나는 소설책을 읽지 않았다.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무쓸모 하게 여겼다고 해야 정확하다. 나는 감성보다는 지성이 세상을 살아가는 원동력이라고 여겼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도 달러는 왜 강세인가.
-중국의 위안화는 왜 기축통화가 될 수 없는 것인가.
-독일은 일본이 본받아야 할 모범 국가인가.


이상의 질문이 궁금하지 않은가.


2008년 세계경제위기를 자초한 미국은 여전히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달러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달러의 지위가 더욱 높아졌다고 평가하는 전문가도 있다.


세계 경제 2위 중국. G2를 자처하지만 그 누가 국제통화로 위안화를 인정하는가.


과거사 청산 문제에 항상 거론되는 독일. 자신들의 과거를 진실되게 반성한다고. 하지만 그 이면에 숨어있는 독일은 그렇지 않다.


이 질문에 대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에너지라고 생각했다.


복원을 기다리는 유적물


하지만 세상엔 에너지만 있어선 살아가기겐 뻑뻑했다.


윤활제가 있어야 하고, 적절한 조작도 필요한게지.


내게 책을 선물해준 친구가 그걸 알려줬다.


그래서 요즘은 소설책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와 헤밍웨이 책을.


책을 주면서 그 친구는 그랬다. 세상과 타협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맞아. 우린 아직 젊고 세상엔 할게 많아" 내가 대답했었다.


.

.

.


그리고 그 친구.


지금 세상과 타협하고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가 숨 쉬는 곳은 현실이다.


커다란 부처의 모습이 보인다.



바푸온, 시간의 역사



바이욘에서 진한 감동을 가지고 나왔다. 커피잔 밑에 남은 진한 커피 가루를 마신 것처럼.


이제 바푸온 사원으로 가는 길. 바이욘에서 대략 5분 정도 걸으면 바푸온이 나온다.


걸어가는 길에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부모님께 안부인사와 함께 푸념을 늘어놓았다. "왜 날 데리고 가지 않았어요"


우리 부모님은 나를 제외하고 캄보디아를 여행을 이미 다녀왔었다.


"이렇게 좋은 곳이 있으면 다음부터 같이 가요. 제발"


"그래 알았다. 항상 조심해" 통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혼자서 여행하는 아들이 별 걱정 안 하시는 것 같았다. 섭섭했지만 내심 좋았다.


날 믿어주는 걸 아닐까.


복원을 기다리고 있는 돌무더기다.
그늘이 진 곳엔 그래도 좀 시원했다.


바푸온의 입구.



캬. 정말 믿을 수 없네



또다시 사람을 놀라게 했다.


쭉 뻗은 다리를 지나야 만날 수 있는 바푸온의 위상은 실로 대단했다.


거대한 크기의 사원 속 세밀한 조공에 입이 벌어진 것은 맞다. 하지만 이 거대한 석조 사원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에 더 놀라웠다.


원래 있던 바위산을 깎아 만든 것은 아니기에 이 돌을 어떻게 들고 옮겼을까.


원래 이 주변엔 석조 사원을 지을만한 적당한 돌이 없었다고 한다. 지금으로선 이곳과 가까운 산에서 채굴해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힌두교의 3대 신 중 하나인 시바 신을 섬기기 위해 만들어진 바푸온.


시바 신이 있다면, 바푸온 사원을 보고 매우 흡족했으리라.


우주의 작은 생명체. 작디작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이 광경을 두고 신이 그냥 지나칠리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아름다운 바푸온의 모습을 보지 못했을 거다. 약 10년 전에 캄보디아에 다녀왔던 우리 부모님은 아마도 바푸온 외관만 보고 지나갔을 거다.


바푸온의 내부는 2011년에 공개됐다. 지반 침식으로 지난 50년간 복원되다가 최근에서야 개방된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푸온은 여전히 복구 진행 중이다. 프랑스가 복구를 맡고 있는데 이 복구가 언제 끝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시간의 역사가 흘러가던 바푸온의 시계는 거꾸로 거슬러가니. 이제 우리는 반가운 소식을 기다릴 수밖에.



바푸온의 옆면은 흡사 고구려 장군총과 같았다.


다만, 앞서 본 바이욘의 여운이 강했던 것인지 바푸온만의 큰 감동을 주진 못했다. 바푸온을 들린 관광객도 바이욘에 비해 매우 적었다.


조용하고 한적하게 유적을 관찰했다. 중간중간 물을 보충해주면서.


'뭐 새로운 게 없나?' 나는 가이드북을 펼쳐 바푸온에 대한 내용을 살펴봤다.


[바푸온 뒤로 가보시오.]


바푸온 뒷면, 아니! 이게 뭐야!


위에 사진이 바푸온 뒷면이다. 무엇이 보이는가.


'왜 뒤에 가보라고 한 거야'


다시 한번 사진을 살펴보자. 나는 선글라스를 벗고 봤다. 아무리 봐도 '뭔가'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다. 보인다. 보여.


'와불상'이다!


흙으로 구워 만든 벽도 아닌 단단하고 무거운 돌의 굴곡으로 누워있는 부처를 만들어냈다.


그들의 지혜와 반전에 절로 존경스러웠다.




정신 바짝 차려야지



바푸온 옥상으로 올라가려면 엄청난 각도의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굴러 떨어지기 십상이지.


좁은 계단에 높은 각도는 사람을 아찔하게 만든다.


"헤이 꼬레안 안녕"


순박한 캄보디아 청년 한 명이 내게 말을 건넸다. 바푸온 옥상에 올라온 바로 직후였다.


이 청년은 바이욘에서 만났던 그 사람과 비슷했다.


청년은 바푸온 구석에 있던 원숭이 전쟁에 대해 설명했다.


불편한 기색을 보였지만 나보고 자신을 자꾸 따라오라고 했다.


자신이 이곳저곳을 설명해주겠다고 하며.


날 데리고 설명하던 그 청년의 정체는 내가 "고맙지만 난 갈 거야"라고 말한 뒤에야 알 수 있었다.


그 청년이 내게 원했던 건 말이지. 아니다. 오늘은 말을 너무 많이 했다.


2편은 여기까지 하고 3편에서 마저 얘기하겠다.








2편 끝.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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