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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동 Sep 17. 2018

미스터동의 캄보디아 여행기 4편

앙코르 유적을 탐방하다

[지난 3편 이야기]


미스터동은 다사다난한 캄보디아 여행을 하고 있다. 돈을 뺏길 뻔한 위기를 넘겼다.


그러다 맥없이 무너져버리고 있는 석조 사원, '따 프롬'에 오게 된다. 그곳에서 미스터동은 '나'를 발견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지게 된다.


이윽고 소중한 인연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는데...





밀림 속 석조 사원




일본, 참... 대단해



"삼촌!!!" 나는 정말 반가운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부산에서 캄보디아로 오는 비행기에서 인연을 맺은 삼촌(이라고 부르기로 한 옆자리 승객)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1화 참고)


진짜 삼촌은 아니었지만, 삼촌이라고 부르니 진짜 삼촌 같았다. 그는 내게 여행 잘 하고 있어? 하고 물었다. 어느새 삼촌 자신도 진짜 삼촌이 된 양 나에게 반말을 하고 있었다.


"삼촌! 더워 죽겠어요" 내가 하소연하듯 말했다. 정말 더웠다.


그러자 수화음 넘어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혹시 오늘 저녁에 약속이 없으면 밥 같이 먹을까?"


뜻밖에 제안이라 놀랐다. 부산에서 캄보디아로 오는 비행기에서 '사람'을 좋아한다던 삼촌의 말이 떠올랐다.


"진짜요!?"


더위에 지친 나는 당장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짧은 일정 탓에 가야 할 곳이 있었다. 오늘 저녁, 나는 앙코르 유적에서 선셋을 봐야 했다.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때, 맑은 하늘에서 물이 떨어졌다. 무거운 비는 아니었지만 제법 굵은 빗방울이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 한 점 없었다. 나는 강렬한 햇빛에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했다.


이 비가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시 하늘을 바라보고 싶었지만 나는 전화에 집중했다.


"오늘은 쁘레 룹(앙코르 유적 중 하나)에 가기로 했어요. 거기서 저녁을 보내려고요. 그래서 오늘은 안될 것 같아요. 시간이 된다면 내일 봐요! 괜찮죠?"


"그래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내가 내일 스케줄 보고 다시 연락해줄게. 그건 그렇고, 지금 어디야?"


"지금 '따 프롬'에 와 있는데, 무너져버린 석조 사원. 그 중간에서 자라난 나무가 아주 인상적이에요. 밀림 속에 와 있는 고고학자가 된 기분이에요"


"아 거기- 갔구나. 사람 많아?" 삼촌이 말했다.


나는 사람들이 간간이 있다고 답하며 고개를 하늘 위로 올려다봤다. 통화하면서 날씨가 계속 신경 쓰였다. 맑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멈추지 않고 있었다.


혹시나 휴대폰에 물이 들어가 고장이라도 날까 노심초사했다. 방수되는 휴대폰이었지만 불안했다.


나는 통화를 서둘러 마무리하면서 어느 사원의 실내로 들어갔다. 생긴 건 우리나라 종묘에 있는 건물과 같았다.


빗방울이 점점 더 굵어지자 몇몇 관광객이 손으로 머리만 가린 채,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녔다. 나는 건물 계단에 걸터앉아 그들을 구경했다.


이윽고, 주변에 모든 사람이 내 시야에 사라져 버렸다. 울창한 숲 속에서 비와 나뭇잎들이 부딪히는 잔잔한 소리가 그 공간을 가득 채웠다. 시끄럽지도 그렇다고 조용하지도 않을 만큼만.


그러다 언뜻 무섭기도 했다.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은 곳에 홀로 남겨져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해가 쨍쨍한 날씨에 추적추적 비까지 내리니 분위기가 삽시간에 내려앉았다.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달리 생각해보면 혼자서 즐길 수 있는 한가로운 여유인 것이지.


숨을 깊게 들이마셔보니, 오래된 집에서 나는 냄새와 비에 젖은 흙냄새가 밀려 올라왔다. 내가 앉아 있는 공간이 오래된 역사를 품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내 맞은편에 설치된 안내판으로 걸어가 봤다. 비를 약간 맞는 걸 감수하고.


유적의 복원 전(위)과 복원 후(아래)


안내판을 보니, 내가 비를 피한 곳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수수 허물어져 있었던 곳이었다. 지금은 복원을 통해 자기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지만.


안내판에는 유네스코 문양과 함께 복원에 참여한 국가의 국기가 새겨져 있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캄보디아 여행기 1편에서 '일본은 참 대단하다'라고 말한 걸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왜 그런 말을 했는고 하니, 이제 여행 이틀째이지만 앙코르 유적지 곳곳에는 일장기가 새겨져 있다.(앞으로도 더 있을 예정이고.) 보아하니, 캄보디아 정부에서는 유적 복원에 도움을 준 국가를 위해, 유적지 앞에 안내판을 세워 홍보(?) 해주고 있었다.


이때, 일본이 워낙 복원에 많이 참여하다 보니, 살짝 과장해서 말하면 앙코르 유적지 어딜 가나 일장기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오늘 돌아본 앙코르 유적지 모두 일본이 복원했던 곳이었다. 게다가 내일 가게 될 '앙코르와트' 역시 일본이 주도적으로 복원에 참여하고 있다.


일본은 우수한 기술을 가지고 캄보디아에 무상 복원을 지원해주고 있었다. 일본 말고도 프랑스, 스위스, 중국, 인도 등이 앙코르 유적 복원에 참여하고 있었다.


언뜻 보면, 재능기부지만 국제 외교에선 공짜란 없다. 실제로 일본은 캄보디아 개발권에 많은 이권을 챙겼다는 후문이다.


내가 중학생 때, 필리핀 마닐라에서 한 달 정도 지낸 적이 있었다. 그때 가이드에게서 들은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관광버스를 타고 마닐라의 한 쇼핑몰을 가고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당시 중학생이던 내게 좀 이상한 게 있었다. 가이드에게 곧장 물어봤다.


"가이드님, 우리나라에서는 '도요타'가 비싼 외제 차에 속하는데요. 우리나라보다 경제력이 약한 필리핀에선 도요타 자동차가  이렇게 많죠?"


그러자 가이드가 답했다. "일본 정부가 마닐라 시내 도로를 깔끔하게 닦아줬어요. 그리고 자동차 사업에 교두보를 마련하는 거죠"




도로가 없어서 차를 팔지 못하면, 그 나라에 도로를 깔면 된다. 일본 정부는 대규모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펼쳐 개발도상국의 인프라를 건설해주고 있었다. 때로는 그 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복원시켜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 나라의 민심과 사업권을 얻는 것이다.

      

내가 얼마 전 다녀온 베트남 호치민 공항도 일본의 기술력이 들어가 있었다.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곳곳에 일본의 돈과 기술이 스며들어가 있다.


이를 토대로, 일본 기업들은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일본이 깔아놓은 도로에 현대차가, 일본이 만들어놓은 기찻길에 KTX가, 일본이 깔아놓은 전산망에 농협은행이 들어갈 자리는 비좁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우리나라는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됐다. 갈 길이 멀지만 참 다행이다.


우리가 바쁘게 일상을 보내는 사이, 앙코르 와트가 있는 이곳 캄보디아 씨엠립 한중간에 '코이카'(한국 국제협력단) 병원이 지어져 있다. 그리고 엄청나게 큰 태극기가 건물 외관에 그려져 있다.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도 요즘엔 태극기를 마주치기 힘들다. 하지만 상상해보시라.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도시 한 중간에 태극기가 있는 모습을.


자랑스럽다. 그리고 캄보디아 국민에게 우호적인 모습으로 대한민국 기억될 것이고, 장기적으로 국익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기행문을 쓰면서 알게 된 사실, 최근 우리나라도 앙코르 유적 복원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앙코르 유적지 어딘가에 태극기가 당당히 자리 잡고 있을 거다.




얼마 만인가



따 프롬 중앙에 위치했다. 아니, 아마 중앙쯤이었을 거다. 미로 같은 사원 구조로 위치감각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럼 이곳을 어떻게 빠져나가냐고?


그건 모르지. 그때 가서 고민하면 될 일이다. 지금 걱정한다고 내가 알아낼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니깐.


비가 잠시 왔었지만 언제 빗방울이 떨어졌냐 듯이 뜨거운 태양 빛은 나를 향해 쏘아대고 있었다.


아파트 5층 높이 남짓 될만한 나무 아래에서 내 발길이 멈췄다. 순간 나는 하늘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내 앞에 마주한 하늘이 아닌 내 위에 있는 하늘 말이다.


재볼 게 없었다. 곧바로 자리에 털썩하고 앉았다. 그리고 등을 땅에 붙였다. 다리는 일자로 폈고 두 손은 단전 위에 가지런히 얹었다. 언뜻 시신의 모양인가 하고 생각이 들었다. 아무렴 어떤가.


혹시나 다른 관광객이 봤을 때, '꼴불견'이라든지 '주취자'로 오해하지 않게 나름 공손하게 누운 거였다.


나는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인터넷이 잘 터지지 않은 밀림 속, 나는 미리 저장해둔 mp3에서 재생목록을 살펴봤다.


'비틀즈...'


나는 비틀즈의 명곡 모음집을 재생시켰다. '비틀즈 노래를 듣고 싶었던 딱히...' mp3로 저장된 노래가 비틀즈 노래밖에 없었다.


비틀즈의 음성이 귓속 깊은 곳까지 울려 퍼졌다. 나는 살포시 눈을 감았다.


작년 겨울, 일본 기타큐슈의 시모노세키항으로 내 몸은 연결됐다. 나는 가만히 서서 출렁이는 바다 물결에 비가 스며드는 걸 한참 지켜봤다. 비틀즈의 'Hey Jude'라는 노래를 듣고 있었다.


그때, 그윽한 커피 향이 짙게 퍼지고 있었다. '황홀하다'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황홀',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로는 처음 사용해봤었다.


씁씁한 커피가 당길 때, 거짓말 같이 기막힌 타이밍에 풍겨오던 커피 향은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나는 커피 향을 따라 걸었다. 마치 만화 속에서 보이지 않은 '냄새'를 표현하기 위해 굵은 선으로 그려놓았듯이 나는 커피 냄새를 보면서 그 근원지를 찾아 나갔다.


이윽고 다다른 조그마한 카페.


카페 문을 열자 종소리가 '딸랑딸랑' 거렸다. 카페 내부를 살펴봤다. 커다란 로스팅 기계가 보였고 나무 테이블 네댓 개가 있었다. 그리고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성이 있었다.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오른쪽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분.명.히'


그런데 비틀즈의 노래가 양쪽 귀를 통해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결국, 이어폰 모두를 뺏지만 내가 듣고 있던 노래 'Hey Jude'는 멈추지 않고 들려왔다.


영화 같은 장면이었이리라. 커피 향을 따라 찾아간 작은 카페. 그곳에서 내가 듣고 있는 음악과 같은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이윽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이 내 테이블에 놓였다. 커피 한 모금, 참 따스했다.


그리고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가진 여성이 내 앞에 앉았다. 누가 봐도 귀여운 외모를 가진 그녀. 기타큐슈는 처음이냐고 내게 물었지. 자신은 카페를 하는 이모를 도와주고 있다고.


이때, 오래된 TV가 지지직 거리듯 나는 회상을 멈췄다.


두 눈을 크게 떠봤다.


바닥에 누워 바라 본 하늘


가만히 하늘을 보고 누웠다. 이렇게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던 때가 언제였던 가 싶었다.


'이런 하릴없이 누워만 있어도 되나'라는 자책감은 조금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무는 아까보다 더 길쭉하다고 생각 들었다.




생각하지 못한 선물



엉덩이를 털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 '쁘레 룹'으로 가야 했다. 그곳에서 선셋을 보기로 했다. 툭툭이 기사 '브라더'에게도 미리 말을 해뒀다.


파아란 하늘에 불에 타는 듯한 붉은색이 물 들어가는 걸 지켜볼 거다.


다시 툭툭이 기사에게로 갔다.


브라더는 내게 선셋을 보러 가기엔 아직 너무 이르지 않냐고 했다. 그때 시간이 오후 3시 30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속도를 내지 말고 천천히 가달라고 했다.


브라더는 좋아하고 말했다. 툭툭이가 다시 밀림 속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열심히 바람을 가르며 달리던 툭툭이가 급히 갓길에 멈춰 섰다.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거다. 툭툭이가 출발한 지 5분도 안 됐다.



장대 같은 소나기가 내렸다. 아스팔트 도로는 금세 까맣게 변했다. 흙은 질퍽질퍽해지고 있었다. 다만, 우울한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아니었다.


툭툭이 지붕 위로 내리는 빗소리가 둔탁하게 들려왔다. 툭툭이 기사 브라더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는 비가 그치면 출발하자고 했다. 금세 비가 그칠 거야 걱정하지 마 하고 날 안심시켰다.


"좋아. 훨씬 여유롭고 좋아" 내가 대답했다.


찌는 듯한 더위에 시원한 소나기는 기분 좋은 선물이었다. 나는 툭툭이에서 잠시 나와 비를 맞아 봤다. 잠깐이었지만 옷은 흠뻑 젖었다. 


시원했다. 마음도 한결 시원 해지는 기분이었다. '산성비' 때문에 비를 맞으면 안 된다는 지적 따위를 무시해버리니, 비를 맞는 건 그리 나쁜 행동은 아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던 브라더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툭툭이에 다시 몸을 실었다. 그리고 브라더에게 말했다. "툭툭이 안으로 들어와"


우리는 툭툭이에 올라 타 마주 보고 앉았다. 



여행 중에 비가 내리면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비가 오는 색다른 풍경을 보는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흔하지 않은 장면을 마주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또한 멋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깔끔해진 도로


비는 그리 길게 오지 않았다. 5분 남짓이었다. 브라더는 다시 오토바이 운전석에 올라앉았다. 나에게 출발할 거라는 손 신호를 줬다.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잠깐이었지만 세차게 내리던 비 덕분에 공기 중 남아있는 먼지가 깔끔하게 사라졌다. 툭툭이는 아까와 달리 '치이익' 하는 발소리를 냈다. 도로에 묻어있는 물이 굴러가는 바퀴를 만나자 괴상한 소리를 냈다.


참 한가로운 오후였다.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였다.



10분쯤 달렸을까. 툭툭이는 다시 멈췄다.


선셋(일몰)으로 유명한 '쁘레 룹'에 도착했다.


사실, '쁘레 룹'보다는 '프놈 바켕'이라는 곳이 훨씬 유명하다. 하지만 그 유명세에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일몰이 아닌 앞사람의 뒤통수만 보고 올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한적한 쁘레 룹으로 왔다.



평평한 평야에 우뚝 올라선 사원 '쁘레 룹'은 선셋을 보기엔 훌륭한 입지적 요소를 가졌다.


주변에 그 어떤 상가, 주택, 큰 도로가 없다. 그리고 빽빽한 나무가 사원을 중심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다.


다만, 정상까지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한다. 노약자나 어린이는 올라오지 못할 경사도를 가진 계단이었다.


좁은 계단 너비에, 붙잡을 난관조차 없어 젊은 나 역시 긴장을 많이 했다.


그래서 사진 한 장 찍지 못했다. 




흩어지는 기억의 조각들



쁘레 룹 정상에는 선셋을 보러 온 관광객이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중앙 성소(탑) 계단에 앉았다. 제일 높은 곳이었다.


중간에 저 나무가 '쁘레 룹'에서 가장 큰 단점로 꼽힌다.


엄청나게 큰 가위로 쁘레 룹 주변 나무들을 '사각'하고 자른 것일까.


일정하게 자라난 평원의 나무, 그리고 그사이에 '툭'하고 자라난 나무 한 그루.


선셋을 바라보는 관광객들의 시야를 조금 가리고 있다.


냉큼 그 나무를 잘라버릴 순 있었겠지만, 어쩐지 저 나무의 운명은 비관적이지 않다.


시야를 가진 그 나무 또한 자연이 만들어 낸 화폭이자 액자다. 인간의 시야로 모든 섭리를 잴 순 노릇. 이곳 캄보디아인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저 멀리 지평선을 바라봤다.



두텁게 자리 잡은 구름 때문에 해는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해는 넘어가고 있었다. 구름 너머 실루엣으로 그 흐름을 알 수 있었다.


해는 죽어가고 있는 것이라. 마치 우리처럼 말이다. 


우리는 살아가고 있지만,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다. 그 끝을 알 순 없지만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그렇다면 정해진 운명의 끝을 향해 죽어가고 있는 것이라.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래. 그렇다면 저 완만히 넘어가고 있는 저 해는 죽어가고 있다. 


하지만 내일을 향해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 흩어져버린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동쪽에서 박차고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여름엔 영롱하게 피어나는 꽃향기가 될 것이고 겨울에는 지붕 끝 위태로운 고드름이 될 것이다. 


어느새 사람들이 많아졌다. 선셋을 보러 온 사람들이다.
붉게 타는 노을을 보진 못했다.


시간은 이미 6시를 넘었다. 선셋을 보러 온 사람들 사이에서 안타까운 탄식이 여기저기서 터졌다.


이미 해는 자취를 감춰버렸고, 해를 따라가지 못한 조금의 빛만이 뒤늦게 남아있었다.


구름이 짙게 깔린 탓에 지평선을 넘어가는 장면은 볼 수 없었다. 나는 아쉬운 마음에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나보다 늦게 온 사람들이 하나둘 이곳을 떠나기 시작했다. 마치 극장에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왔을 때처럼.


할 수 없이 나도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비로소 오늘 하루 일정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성큼성큼 내려가기 힘든 계단이었다.
한가로운 개팔자. 묶여있는 우리나라 시골개보다 훨씬 행복해보인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 브라더 뒤에서 찍어봤다. 브라더가 신나보였다. "퇴근이다!"




마사지 받즈아



이번 캄보디아 여행에선 숙소를 정하는데 돈을 좀 썼다. 그래서 그런지 공항에서 호텔로, 호텔에서 공항으로 무료 픽업을 해준다.


그 외에도 도시락을 싸주기도 하고, 저녁 식사가 코스로 제공된다. 그리고 호텔 내에 있는 샵에서 2시간 무료 마사지도 해준다!


넓은 방에 친절한 서비스까지 받으니, 황홀할 지경이다. 역시 돈이 좋긴 좋다. 이건 만고의 진리다.


우선 호텔 1층에 있는 식당에 왔다. 캄보디아 전통 코스요리로 준다고 해서 왔다.


식전 빵이 나왔다.


식전 빵이 제공됐다.


코스요리의 장점은 내가 밥을 먹는 속도에 맞춰, 음식이 나온다는 것.


천천히 빵에다가 버터를 발라 먹었다. 따뜻한 빵이 좋았다.


그 이후로, 메인 음식이 나오고 디저트까지 나왔다. 하지만 사진이 없는 이유는?


맛이 없었다. 너무.


그래서 룸서비스를 시키기로 했다.


하와이 피자라고 했다.


룸서비스를 시키기까지 약 30분 동안 고민했다. 내가 이렇게 돈을 써도 되는가 하고 말이다. 그리고 피자를 시키면 팁까지 줘야 하는데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다. 4성급 호텔에서 자는 투숙객에게는 어울리지 않은 고민이지만.


마음 같아서는 내가 피자를 주문하고 가져왔으면 했다. 그러면 팁을 안 줘도 되잖아!


불쌍한 생각은 딱 거기까지였다. 배가 고파 나는 할 수 없이 전화기를 들었다.


"301호인데, 하와이 피자 하나 가져다주세요" 내가 말했다.


15분 뒤, 띵동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방문을 열었다. 


영화 '나 홀로 집에'처럼 호텔리어가 한 손에 쟁반을 얹어 피자를 들고 있었다. 그는 내게 피자와 영수증이 담긴 수첩(?)을 건넸다.


이런 호텔 서비스는 처음이라 살짝 당황했다. 모텔의 치킨 배달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평상시에도 이런 고급 서비스를 받는다는 여유로운 제스처를 취했다. 하하.


20달러를 수첩 안에 넣고 다시 그에게 건넸다.


잠시 후.


호텔리어는 다시 내 방문을 두드렸다. 잔돈을 가져온 것이었다.  나는 4달러 중 3달러만 뺀 뒤. 1달러는 그에게 줬다. "This is your tip!"




새벽 기상으로 헛둘




툭툭이 기사 브라더가 나에게 말했다.


"아니 잠깐만! 너 티켓 챙겼지?"


.

.

.


"아!" 좌뇌 우뇌 모두 사방에서 번개를 쳤다.


서둘러 바지 양쪽 주머니를 뒤졌다. 오른쪽 주머니엔 없었다.


그다음 왼쪽 주머니. 젠장. 거기에도 없었다.


마지막 힙색을 열었다. 깊은 한숨이 나왔다. 없었던 티켓도 만들어지라고 주문했다.





티켓의 행방은 다음 5편에서 얘기하도록 하겠다.












4편 끝. 5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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