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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동 Dec 27. 2018

어미 소의 코뚜레는 그렇게

소설과 수필 그 사이.


잉태



파란색 지붕 밑 축사. 그 주위로 몇몇 집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앙상해져 버린 뒷동산 나무와 푸른 벼가 베어버린 뒤 갈색으로 변해버린 밭이 인상 깊은 곳. 지극히 평범하고 시간마저 여유롭게 흘러갑니다.


그 축사 밑엔 인간과 비슷한 임신 주기를 가진 누런 소 한 마리의 배가 불러있네요. 지난해 이맘때쯤부터 조금씩 커지던 배는 이제 가만히 서 있기에도 숨이 차 보입니다. 황소의 큰 콧구멍엔 하얀 입김이 유난히 짙어 보였죠.


여물에 사료를 섞어 특별 영양식을 주인이 챙겨줬지만, 이내 앞발을 구부리고 주저앉아버립니다. 출산이 임박한 모양입니다. 그런 녀석은 축사 한 켠에 자리 잡고 두 눈만 꿈뻑꿈뻑거렸습니다. 파리 한 마리가 귀찮게 굴고 있었지만 뒷꼬리는 움직일 생각도 없나 봅니다. 힘들고 지치겠죠.


반도체 공장에서 볼 법한 하얀색 옷을 입은 사내가 그런 소에게 뚜벅뚜벅 걸어갔습니다. 이내 청진기를 소의 배에 갖다 대더니 고개를 연신 끄덕입니다.


그날 밤. 주인은 축사 내 공간을 두어 새 볏짚을 깔고 난로도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배가 부른 어미 소를 그곳으로 이끌고 갔습니다. 소는 가기 싫었지만 꼬뚜레를 잡아당기는 힘에 이길 재간이 없습니다. 왜냐면 코청이 찢어지는 고통이 매우 괴롭기 때문입니다.





출산



아주 까만 밤. 어미 소는 자리에 벌떡 일어나더니 다시 앉습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을 여러 번 반복합니다. 몹시 고통스러운 듯 큰 눈망울에선 눈물이 고여있고 입을 크게 벌여 허연 입김을 내뿜습니다. 시원하게 "음메-"라고 하면 될 텐데, 소는 오로지 스스로 괴로움을 삼켜버리네요.


어미 소의 아픔은 몇 시간이 지나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잠도 한 숨 자지 못한 채 견디고 있어 안쓰러워 보입니다. 저 소는 무엇에 저리 고통받아야 하나, 하고 연민이 생깁니다.


이윽고 어미 소의 양수가 터져 나오고, 어미 소는 자리에 일어나 새끼 소의 출산을 받아들입니다. 흰자엔 뻘겋게 충혈된 채 말입니다. 그제야 축사 전체가 울리게 "음메-"라고 부르짖습니다.


지켜보는 이도 조마조마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새끼 소의 뒷다리가 보였습니다. 아... 조금만 더 힘내, 하고 두 손을 모으고 발을 동동 구르게 했습니다. 하지만 어미 소는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몇 번이나 절뚝거렸죠.


그렇게 시계의 분침은 반 바퀴를 돌았습니다. 할 수 없이 주인은 녀석에게 다가가 새끼 뒷다리를 잡고 잡아당기기 시작했습니다. 출산을 도와주는 걸 알았는지 아니면, 경계할 정신조차 없는지 모르지만 어미 소는 마지막 힘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두 눈엔 눈물이 주르륵 흘렀지만 추운 날씨 탓에 금세 말라버리더군요.


잠시 후, 이 세상에 온전히 나오게 된 새끼 소. 그 소는 잠시 어리둥절하는 것 같았으나 네 발로 우뚝 서고 본능적으로 어미 젖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습니다. 아... 어머니의 힘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하루 내내 고통에 신음한 어미 소는 새끼 소를 위해 자리에 앉지도 않고 젖을 내줍니다.


어미 소는 젖을 먹는 새끼 소의 등을 혀로 햝습니다. 뒷동산에서 어렴풋이 밝아오는 여명이 오기까지  어미 소는 새끼 소를 햝고 또 햝았습니다.




이윽고,



새끼 소는 어미 소 오른쪽을 딱 달라붙어 다녔습니다. 여물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말입니다. 새끼 소는 어미 소 앞에서 앞발을 들어 올린 채 펄쩍펄쩍 장난도 쳐봅니다. 그런데 어미 소는 관심 없는 모양입니다. 그저 뒷 꼬리만 왔다 갔다 할 뿐이네요.


그리고 새벽 3시. 갑자기 주인이 어미 소 앞으로 걸어왔습니다. 아직 여물을 줄 시간도 축사를 청소할 시간이 아닌데 말이죠. 조금 이상한 건, 주인은 축사 입구에 시동 걸린 트럭 한 대를 가져다 놓았고 퍼런 장화에 하얀 목장갑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미 소는 무슨 일인가 혼란스럽고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새끼 소는 그저 옆에 바짝 달라붙어 아직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추운 날씨에 서로의 온도는 더 따뜻했겠죠.


주인은 갑자기 어미 소의 코뚜레에 줄을 묶었습니다. 그리고 밧줄을 두 손으로 붙잡고 몸을 뒤로 젖혔습니다. 자신의 온 체중을 다 실어 어미 소를 이끌어 세웠습니다.


어미 소는 본능적으로 불길했습니다. 그래서 네 발을 땅에 단단히 박고 버텼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아예 몸을 뒤로 30도 정도 기울인 채 어미 소를 잡아당겼습니다. 어미소는 코뚜레 때문에 코청이 찢기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럴 수 없었습니다. 새끼 소가 다칠 수 있으니깐요.


어미 소의 코는 찢길 듯이 당겨지고 있었습니다. 당해낼 재간은 없어 보입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어미 소는 트럭 쪽으로 다가서고. 파멸의 끝으로 가고 있음을 직감합니다. 새끼 소는 어미 소의 울부짖는 울음소리에 그제야 어미 소를 따라나서고자 자리에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어미 소를 향한 주인의 매타작을 보고는 섣불리 달려가지 못한 채 새끼 소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미 소는 홀로 남겨진 새끼 소를 쳐다보고 싶었지만 단단히 당겨진 코뚜레 줄로 고개를 돌릴 수 없었습니다. 괜스레 뒷발로 흙을 차면서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을 쳐보지만요.




작별



어미 소는 새끼 소가 이리저리 뛰는 소리만을 들으면서 트럭 짐 칸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곧바로 코뚜레를 트럭 짐 칸 난간에 묶었죠. 그렇게 새끼 얼굴 한 번 쳐다보지 못하고 어미는 트럭에 실린 겁니다.


트럭은 지체할 틈 없이 까만 매연을 뿜으면서 곧바로 출발해 버렸습니다. 아직 깜깜한 밤이라 밖의 풍경은 보이지 않습니다. 가로등도 작은 마을 초입에만 간신히 있을 뿐, 오로지 트럭의 노란 전조등만이 짙은 암흑을 걷히고 있었죠.


어미 소는 그저 백미러에 비친 주인의 시퍼런 눈동자를 쳐다볼 뿐입니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그대로 맞고 있었지만 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의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일까요.


그래도 일평생 축사 밖을 벗어나 본 적 없었던 어미 소는 이상하리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어렴풋이 보이는 드넓은 들판과 뒷동산에서 자유로이 풀을 뜯어먹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해봤습니다. 그래도 새끼 소에 대한 염려로 마음이 아프고, 무겁게 느껴집니다.


이윽고, 도착한 어딘가. 자신과 비슷한 소들이 연신 '음메'하며 서 있습니다. 친구들을 만난 것 같아 눈이라도 마주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이젠 주인이 아닌 이상한 아저씨 손에 코뚜레가 넘겨져 갔기 때문이죠.


주인에게 가고 싶어요, 하고 소는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날 버리고 어딜 가세요, 하고 절규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어미 소는 좁디좁은 길목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한 평생 자신을 억압했던 코뚜레가 풀렸습니다.


자유다! 자유!


자유다!


해방이다!


어미 소는 새끼 소를 낳고서야 자유를 얻었습니다.


좁은 골목 앞. 다른 소의 엉덩이를 쳐다보며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그리고 그때. 앞선 소가 '철컹'이라는 소리와 함께 고꾸라집니다. 어미 소는 오줌이 저절로 나오고, 눈에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어미 소는 알았습니다. 나를 낳았던 어미 소가 날 버리고 도망간 줄 알았지만, 사실 이 곳에 왔노라.


비통하고 억울하며 한없이 슬프고 분노감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리고 남겨 둔 새끼 소의 울음소리가 귀에서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어미 소 머리에 전기 충격기가 놓입니다. '탁!'


다음날, 파란색 지붕 밑 축사. 그 주위로 몇몇 집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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