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를 다닐 때였나. 수학여행과 같이 도심을 벗어나 어딘가를 갈 때면, 어김없이 산을 만났다. 산 둘레를 따라 낸 좁은 도로를 버스가 아슬아슬 올라가던 것이 생각난다. 오른쪽으로는 산아래가 아찔하게 펼쳐져 있고, 지금까지 올라온 길이 구불구불하게 놓여 있었다.
우리는 인생에서 산을 만난다. 산을 힘겹게 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둘레길을 오르면서 아직은 할 만하다는 안심과 이제 곧 가팔라질 것이라는 걱정을 함께 느끼고는 했다. 중간중간 쉬어가면서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정상의 막막함과 그 정상 너머에 펼쳐질 새로운 지평을 향한 기대감을 품으면서 그렇게 힘겹게 산을 올랐던 시절이 있었다.
고속도로가 아니더라도 터널이 많이 생기는 요즘이다. 구불구불 산을 넘어 도 경계를 넘어가던 곳이 '이 터널을 지나면 ~시(도)입니다'로 바뀌어 간다. 산을 만나도 속도를 줄이며 어지럽게 올라갈 필요가 사라졌다.
터널은 산을 오르는 문제해결 방식을 산을 돌파하는 방식으로 바꾸어 놓았다. 터널을 뚫는 동안의 고된 노동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터널을 뚫는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산을 오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터널을 지나는 방식은 언제나 동일하다. 산을 오를 때 파악한 산세는 경로를 바꾸게 만든다. 흙으로 된 평탄한 길과 바위로 이루어진 길 중에서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지, 평탄하되 돌아가는 길을 선택할 것인지 가파르지만 시간이 덜 걸리는 길을 선택할 것인지, 모두가 올랐던 길을 따라갈 것인지, 새로운 길을 만들어 볼 것인지를 산세에 따라 결정하게 된다. 그렇다. 산을 오르는 방법에는 서사가 있다. 그러나 터널은 단지 어떤 이유에서든 길이 막힌다, 막히지 않는다를 따질 뿐이다. 다른 경로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
그런 의미에서 터널을 이용한 돌파는 사실상 회피와 닮아 있다. 자신이 마주한 산의 형세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 산이 품고 있는 시간을 보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그 산의 시간을 존중하지 않는다. 문제의 본질은 어둠을 통과하면서 지나친다. 터널을 지나는 동안 우리는 환풍기와 화살표 신호등, 비상구 등을 마주하지만 그것은 산의 형세와는 무관하다. 문제에 파묻혀 죽지 않도록 도와줄 뿐이다. 터널의 길이, 어둠을 쫓아줄 빛들이 가득한 터널은 사실상 하나의 풍경만을 보여준다. 산의 길이를 가늠하게 하는 것은 그저 1km, 4,000m 따위의 터널 길이를 나타내는 숫자뿐이다. 문제의 크기는 해결하는 시간으로 대체될 뿐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길을 만들고 있다. 그 길은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중간중간 휴게소가 놓이고 졸음쉼터가 있지만, 우리는 그 장소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곳에서 쉬었다가는 합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합류를 하지 못하거나 합류를 시도하다 사고가 난다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거나 너무 늦게 도착할 것이기 때문이다. 졸음을 참고, 쉬고 싶은 욕망을 참고, 아름다운 경치를 지나치면서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인공적인 불빛이 가득하고,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북적이는 그곳으로 향해 간다. 오히려 밤이 되면 활기를 되찾는 그곳에서 우리는 쉽게 지쳐 버린다. 모두가 원하는 것을 나도 원하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그곳에서 내가 지나쳐왔던 수많은 휴게소와 졸음쉼터와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진 산과 들, 강가를 그리워하면서(도 쉽게 돌아가지는 못하면서) 말이다.
터널은 속도의 상징이다. 곳곳에 뻗은 길은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터널의 어둠을 견디고 밝은 세상을 향해 나온다는 고난 극복의 은유는 사실상 속도만을 중시하고 있다. 터널은, 길고 긴 터널은 빠른 길일수록 더 많이 존재한다. 고속도로는 목적지를 향해 가장 빨리 도달할 수 있는 길이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리는 길이다. 우리는 모두 고속도로를 달리고 싶다. 그래서 모두 뒤엉킨 채로 지쳐간다.
산을 둘러 낸 길을 따라 아슬아슬 천천히 오르던 버스 행렬이 생각난다. 때로는 그런 길이 가득하던 시절이, 그런 길을 따라갈 수 있던 곳이 그립다. 이제 그런 길로 갈 수 있었던 곳조차도 터널을 낸다. 10km의 터널을 뚫어낸 기술력을 자랑스러워하면서, 10km의 너비 위에 펼쳐진 웅장한 산세는 금세 잊은 채, 터널의 입구부터 출구까지의 시간만을 측정하면서 그렇게 우리는 평탄한 길을 달리며 문제를 돌파해 내었다고 자부한다. 빠른 길은 누구나 가는 길이다. 누구나 달리기를 원하는 그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내가 원하는 것은 목적지에 있을까. 목적지를 향하는 길에 존재하고 있을까.
잘 달리던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국도로 가자고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어쩐지 공감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