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워드를 FW라고 표기한 안내판을 보았다.
어릴 적부터 한국인은 'F' 발음이 안 된다는 말을 끊임없이 듣고 자란 탓에 'ㅍ' 발음이 들어가는 영어 단어는 응당 입술을 긁으며 발음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일부 방송에서도 팬티를 '풴(휀)티'에 가깝게 발음한다든지, 파티를 '퐈뤼'와 같이 발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무지의 소산이라기보다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일 것이다.
그런데 영어 발음과 표기의 잘못이 "정확하게 말하고 싶다는 강박"에서 비롯하는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한글의 발음과 표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매우 많은 미디어에서 삭이기를 삭히기, 삼가주시기를 삼가해주시기, 하든지 말든지를 하던지 말던지라는 식으로 발음하고 쓰는 것을 목격하는 상황에서 "아, 이들이 한글을 틀리지 않기 위해서 매우 노력하다가 이런 실수를 범했구나"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문법이나 맞춤법은 언어의 자연적인 사용과 무관하게 강제적으로 만들어진 제도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나조차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규칙을 최대한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어렵다고 귀찮다고 지키지 않거나 헷갈리는 순간 찾아볼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많은 사람이 접하는 '공공'의 미디어에서는 더욱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