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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Aug 11. 2017

끊어진 듯 이어진, 이어진 듯 끊어진 길

이성복의 <산길 1>과 <산길 2>

연속성과 불연속성 가운데 불연속성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삶에 연속성이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는 욕심일 것인데, 이를테면 과거에 경험했던 좋은 일들이 지금은 물론이고 미래에도 그대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과 같은 것이다. 혹은 마음에 드는 인연을 만났을 때 그 사람과 나의 인연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부정적인 일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불연속성을 지향한다. 불행은 이 한 번으로 끝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마음대로 될 리는 없다. 삶은 그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기에. 나도 그저 그 위에 올라 묵묵히 걸어갈 뿐이기에.


아카시아나무는 잎새가 짙어 이마를 치고 어깨를 툭툭 치고 길은 끝없이 계속될 것 같았습니다 그때 문득 길이 끊어지고 아슬하게 높은 낭떠러지 위에 섰습니다

몇 번이나 가본 그곳을 훤히 알면서도 낭떠러지 앞에 설 때마다 다시 놀라고 못내 서운해 돌아옵니다

이성복, <산길 1>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대체로 길에 비유되곤 한다. 그런데 수많은 길 중에서도 산길이야말로 우리의 인생과 잘 맞는 것 같다. 산길에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고, 흙과 바위의 절묘한 공존과 다채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나무가 우거져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곳이 있는가하면, 탁 트인 공간도 존재한다. 산길은 그야말로 일관되지 않은 요소들이 모여 정상을 향한 연속성을 보여준다.


이성복 시인의 <산길 1>은 지속될 것만 같던(지속되기를 바랐던) 길이 갑자기 끊어지게 되는 순간의 아쉬움을 드러낸다. 시인은 이곳을 자주 와 봤고,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길이 끊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낭떠러지 앞에 설 때마다 아쉬움을 느낀다.


우리는 수없이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또한 비슷한 시련이 나에게 닥친다면 결코 당황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주먹을 불끈쥐기도 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비슷한 실수를 되풀이하고, 유사한 상황에 똑같은 당혹감을 드러낸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시련과 좌절 앞에 우리는 자주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거나 어딘가 존재하고 있을 신을 원망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러한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시인은 단지 이러한 실망과 원망에만 머무르지 않고, 고차원적인 깨달음으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산길 2>는 앞의 시와 연결되는 시이면서, 내가 생각할 때 산길 연작의 백미이다.


한 사람 지나가기 빠듯한 산길에 아카시아 우거져 드문드문 햇빛이 비쳤습니다 길은 완전히 막힌 듯했습니다 이러다간 길을 잃고 말 거라는 생각에, 멈칫멈칫 막힌 숲속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떨면서, 가슴 조이며 우리는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언제나 끝났다고 생각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었지요

이성복, <산길 2>


앞의 <산길 1>이 끊어질 줄 알았으면서도 결국 끊어진 길에 대한 서운함만을 표현한 것이라면, <산길 2>의 경우는 산길이 지니고 있는 불연속의 연속을 간파하고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이 이성복 시인의 사유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짐작건대 "언제나 끝났다고 생각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시인은 분명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일 것이다.


좌절하던 순간 갑자기 찾아온 희망이라든지, 이별의 순간 나에게 다가온 새로운 사랑이라든지, 우리 삶에는 아무 연관성 없는 일들이 극적으로 연결되면서 저마다의 길이 펼쳐진다. 이 삶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삶이란 하나의 기계처럼 계산된 움직임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이 길도 어느 순간 낭떠러지에 다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 낭떠러지에서 좌절할 필요는 없다. 언젠가 찾아올 지각변동이 내 삶에 새로운 길을 만들어 줄 테니까.


그렇게 보면 하나의 길이 안정되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오히려 우리를 약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이 길이 끝나더라도 곧장 아니면 조금 뒤에 새로운 길이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것은 인생에 찾아오는 지각변동을 받아들이는 일이며, 질서가 아닌 무질서를, 연속성이 아닌 불연속성을 받아들이는 결코 쉽지 않은 마음 먹기에서 비롯할 것이다.


자, 그럼 오늘도 어디로 이어질지 모를 우리들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 보자. 그 끝이 낭떠러지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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