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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Aug 14. 2017

영웅의 이정표는 자신의 발자국뿐

이원의 <영웅>

우리는 많은 매체를 통해서 수많은 '영웅'을 마주한다. 영화나 만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일 수도 있고, 대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 실존인물일 수도 있다. 그리고 간혹 뉴스 등에서 언급되는 의인들이 일상 속 영웅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분명한 사실은 그들은 '보통의 존재'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세상에는 영웅에 대한 수많은 정의가 존재한다. 그러나 영웅을 '평범/비범'의 이분법적인 잣대로만 바라볼 때에는 진정한 의미를 드러내기 힘들다. 왜냐하면 애초에 비범과 평범을 가르는 기준점을 어느 누가 확립했느냐는 의문에 맞닥뜨릴 때, 그 기준을 확립한 세력이 전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을 입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대 현재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법과 윤리라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납득할만한 100%의 타당성을 지닌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여전히 보편타당한 기준에서 배제되는, 법적인 보호, 윤리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소수가 존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가 인정하는 법과 윤리가 무조건 타당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영웅에 대한 정의 가운데 가장 믿음직한 내용은, 영웅은 인물의 선악에 관계없이 자신의 기질과 성격으로 인해서 자신이 결국 파멸할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그 기질과 성격을 밀고 나아가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는 주로 비극의 주인공에게 통용되는 것인데, 고대 그리스의 외디푸스 안티고네는 물론이고, 셰익스피어의 헴릿, 오셀로, 맥베스 등이 이러한 영웅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어리석기까지 한 자신의 성격 때문에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주인공을 영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그 이유는 자신만의 기질과 성격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그대로 겪어내었기 때문일 것이고, 끝내 처참하게 무너지는 모습에서 인간의 하찮음과 고귀함을 동시에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결코 강하지 못한 어느 인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의 방법으로 운명에 맞선다는 사실에서 영웅의 본질이 발견된다.


이원이라는 시인이 쓴 <영웅>이라는 시 역시, '과연 이 인물이 영웅일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게 만든다. 한낱 짜장면 배달부에게서 영웅의 면모를 발견하는 시인의 눈초리는 매섭기까지 하다.


오늘도 나는 낡은 오토바이에 철가방을 싣고
무서운 속도로 짜장면을 배달하지
왼쪽으로 기운 것은 오토바이가 아니라 나의 생이야
기운 것이 아니라 내 생이 왼쪽을 딛고 가는 거야
몸이 기운 쪽이 내 중심이야
기울지 않으면 중심도 없어
나는 오토바이를 허공 속으로 몰고 들어가기도 해
길을 구부렸다 폈다
길을 풀어줬다 끌어당겼다 하기도 해
오토바이는 내 길의 자궁이야
길은 자궁에 연결되어 있는 탯줄이야
그러니 탯줄을 놓치는 순간은 절대 없어

내 배후인 철가방은 안팎이 똑같은 은색이야
나는 삼류도 못 되는 정치판 같은 트릭은 쓰지 않아
겉과 속이 같은 단무지와 양파와 춘장을
철가방에 넣고 나는 달려
불에 오그라든 자국이 그대로 보이는
플라스틱 그릇에 담은 짜장면을
랩으로 밀봉하고 달려
검은 짜장이 덮고 있는 흰 면발이
불어 타지지 않을 시간 안에 달려
오토바이가 기울어도 짜장면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것
그것이 내 생의 중력이야
아니 중력을 이탈한 내 생이야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은 모두 이곳이 아니야
이곳 너머야 이 시간 이후야
나는 표지판은 믿지 않아
달리는 속도의 시간은 지금 여기가 전부야
기우는 오토바이를 따라
길도 기울고 시간도 기울도 세상도 기울고
내 몸도 기울어
기울어진 내 몸만 믿는 나는
그래 절름발이야
삐딱한 내게 생이란 말은 너무 진지하지
내 한쪽 다리는 너무 길거나 너무 짧지
그래서 재미있지
삐딱해서 생이지 절름발이여서 간절하지
길이 없어 질주하지

달리는 오토바이에서 나도 가끔은 뒤를 돌아봐
착각은 하지 마 지나온 길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야
나도 이유 없이 비장해지고 싶을 때가 있어
생이 비장해 보이지 않는다면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온몸이 데는 생의 열망으로 타오르겠어
그러나 내가 비장해지는 그 순간
두 개의 닳고 닳은 오토바이 바퀴는 길에서
파도를 만들어주지
길의 뼈들은 일제히 솟구쳐오르지
길이 사라진 곳에서 나는
파도를 타고 삐딱한 내 생을 관통하지

- 이원, <영웅> 전문


이원의 시에서 화자는 자신의 삶을 비관하지 않는다. 자신의 직업이 비록 왼쪽으로 기울어진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짜장면을 배달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인생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중심이 왼쪽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에 오토바이가 기울어진 것이며, 오토바이가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토바이가 길을 만들어내면서 가는 것이라고 당차게 주장한다. 다른 사람의 배달 전화를 받고 짜장면을 갖다 주러 가면서, 사실은 내가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모습은 어쩐지 우습게 보일 수도 있다.


그는 또한 자신이 나르고 있는 철가방과 그 속에 담긴 단무지, 양파, 춘장을 두고 겉과 속이 같은 자신의 내면과 일치시킨다. 반으로 가른다고 해도 결코 다른 색깔이 나올 수 없는 것들이 자신의 오토바이에 함께 실려 있다. 어떻게든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겉으로는 웃는 척하고, 뒤에서는 욕을 해대는 '정치인'과 같은 사람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오토바이가 기울어지는 한이 있어도 짜장면은 결코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다고 자랑하듯 말한다. 자신의 모습은 언제나 기울어져 있지만, 자신의 내면은 결코 비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무튼 이 배달부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른다.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 자신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가득한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들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갈 필요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오토바이가 길을 만들어내는 자궁이라고 주장하는 이 배달부에게 여기로 가면 된다고 속삭이는 이정표나 표지판 같은 것들은 필요가 없다. 오토바이가 달리는 속도가 존재하는 바로 지금이야말로 그에게는 현재이자 미래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기울어진 오토바이를 수리할 필요도 없다. 정해진 미래가 있는 것이 아닌데, 굳이 나의 오토바이가 기울어졌다해서 바로 잡을 필요가 있을까. "기울어진 내 몸만 믿는" 것이 정답이고 진리인 것을. 삐딱한 절름발이이기 때문에, 정해진 길을 똑바로 따라 걷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은 재미있고, 진지하고, 간절하다. 그리고 정해진 길이 없기에 얼마든지 질주 가능하다.


이렇게 나아가는 질주는 결국 단단한 아스팔트조차 파도로 일렁이게 만든다. 길을 단단하게 떠받치고 있는 '길의 뼈'들은 나의 오토바이가 질주하는 순간 모두 뽑혀 나간다. 그렇게 길이 사라진 곳에서 삐딱한 배달부는 비로소 자신만의 생을 관통하듯 질주하게 된다.


이 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가 '가끔은 뒤를 돌아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는 일이 지나온 길을 확인하면서 안도하거나 후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는 뒤를 돌아보는 행위를 통해 이유없이 비장해지고 싶어한다. 돌아보는 행위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감상하는 일이며, 지금까지 내가 멈추지 않고 달려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차피 이 배달부에게 주어진(정해진) 길은 없다. 그에게 길은 오직 그가 걸어온 자신만의 길 뿐이다. "그래,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저 길이 내가 지나온 길이구나!"라는 담백한 느낌. 이것이야말로 이 배달부가 기울어진 오토바이를 타고, 아무것도 없는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된다.


시인이 <영웅>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결코 잘못이 아니다. 이 배달부야말로 영웅이다. 다른 사람이 정리한 인생노트를 보지 않고, 인생의 모범답안을 해설해 놓은 책을 보지 않고, 그저 자신의 모습 그대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모습. 물론 그가 가는 길의 끝을 알 수는 없다. 당연한 소리다. 그러나 허무한 소리는 아니다. 영웅에게 주어진 길은 없으니까. 자신 앞에 펼쳐진 무한을 향해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할 뿐이니까. 그의 오토바이가 멈추지 않는 한, 이 영웅의 길은 결코 끊어지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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