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의 어느 단편 소설에서 역도를 하는 소녀는 술 취한 아버지를 제대로 옮기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지금까지 무게를 들 수 있었던 건 봉에 끼워진 역기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양쪽으로 무게를 균등하게 배분한 역기를 들 때는 100킬로그램 가까운 무게도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술에 취해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는 사람을 옮길 때는 이상하게 힘을 쓰기 힘듭니다. 아무리 무거워도 정돈되어 있다면 쉽게 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질서하게 놓여 있고 정돈할 방법도 없는 것을 들어 올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러닝머신에서 달리는 것과 도로변을 달리는 일도 이와 비슷합니다. 러닝머신은 버튼 몇 개로 속도와 기울기 등을 조정하며 달리기에 내 몸도 그에 맞춰 쉽게 적응하고 안정됩니다. 그러나 도로변을 달리는 일은 전혀 다릅니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기온과 먼지 같은 것들이 나를 방해합니다. 그래서 러닝머신 위에서 2시간을 달릴 수 있던 사람이 길거리를 달릴 때는 사십여 분 만에 지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꿈을 꿉니다. 그런데 꿈은 잠잘 때 꾸는 것입니다. 말을 바꾸면 꿈은 깨어 있는 한 꿀 수 없는 것입니다.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언제나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사람들은 사실 꿈을 꿀 수 없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사람들은 꿈을 꾸지 않는 청춘을 향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냅니다. 청춘은 꿈을 꾸어야 한다고 말이지요. 그러나 청춘들은 잠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꿈을 꿀 수 없습니다. 꿈을 꾸려고 잠을 청했다가 아무도 없는 황무지에서 깰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황무지에서 벗어나 초원에 다다르기 위해 잠을 쫓으며 달리는데도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지금 열심히 달리고 있을 것 같습니다. 과제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취미 생활(이라고 하기에는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것이 대부분이지만)을 즐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활동들은 잠을 외면합니다. 과제와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자신의 꿈을 향한 노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의 꿈을 이루기는 어렵기만 합니다. 이런 활동을 하는 동안 여러분은 꿈꿀 시간을 잃어버리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느라 바빠질 것입니다.
여러분, 잠을 잡시다. 지금 열심히 정해진 규칙을 따르느라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봅시다. 정해진 규칙을 따르지 않고, 남들보다 더 빨리 규칙을 이해하고 더 많이 정확히 정답을 구해서 점수를 얻는 일을 미뤄두고 잠을 잡시다.
여러분의 삶 속에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분명 얻을 것들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모두 여러분이 삶을 더 깊이 살아낼 때 생깁니다. 깊이 살아내는 일은 익숙함에서 멀어질 때 가능합니다. 익숙함은 깊이 들여다보는 일을 방해합니다. 잘 들리고 잘 말할 수 있어서 더 쉽게 생각하고 더 쉽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깊은 삶 속에서 잠을 청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건 원래 그래, 여긴 원래 그런 곳이야라고 말하면서 빠르게 훑어버리고 지나갈 때, 여러분은 저 깊은 곳에서 잠을 청해야 합니다. 꿈을 꾸기 위해서 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자고 있습니까, 깨어 있습니까. 깨어 있다고 말하는 당신은 오히려 잠들어 있지 않습니까. 차라리 잠들어 꿈꿉시다.
언젠가 꿈에서 깨어났을 때 당신은 혼자 황무지에 내던져져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황무지는 당신만의 것입니다. 모두 초원을 찾아 떠나버린 이곳, 황무지에서 당신은 모든 것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깨어 있다고 말하는 당신, 그럼으로써 오히려 잠들어버린 당신에게 나는 기꺼이 잠을 청합니다. 꿈을 꾸라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