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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Mar 08. 2019

anger

지난해 고등학교 자소서 특강을 나갔을 때, 어떤 남학생이 자신의 성격을 서술한 것을 읽었다. 화를 참지 못해서 샤프나 숟가락 같은 물건을 집어던진다는 것이다. 다혈질적인 성격이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화를 참고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한 연습을 하고 있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나는 그 남학생에게 물건을 던지고 나서, 그 물건을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다시 주우러 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 남학생은 그렇다고 말했다. 나도 화가 나면 물건을 던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잘 안다. 그런 행동이 화를 풀어내는 데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가장 초라한 순간은 다시 그 물건을 주우러 가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나는 무조건 착한 학생으로 남았다. 표창장을 받는 일도 많았고, 선생님들께 예의 바르고 이해심 많은 학생으로 기억되는 일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화가 나면 참을 수 없었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일이 많았다. 우리 반에 책상을 집어던지는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에 비해서 작은 물건을 던졌지만, 나도 결국 그 친구와 같은 사람이었다. 10여 년 전 군대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른바 꼬인 군번으로 늘 선임이 있었는데, 상병을 달 때까지는 선임에게 심하게 맞는 일이 많았다. 내가 상병의 근처에 다다랐을 때 나에게 주어진 군기반장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 나머지, 후임들을 때리고 폭언을 일삼는 일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표창을 받았다. 군 생활 자체는 잘했지만, 내무생활 속에서는 좋은 선임이 아니었다. 그 당시의 군기 문화 속에서 나의 행동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나 자신도 이병 때 입술이 터지도록 맞았고, 컵라면 20개를 끓여먹는 등의 괴롭힘을 당했지만, 그 모습을 본 그 누구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으니 말이다. 지금도 종종 그들이 생각난다. 너무 미안한 마음뿐이다. 나의 선임들도 나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을까.


지금도 나는 화를 참지 못한다. 그 이유를 나는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내 마음속에 있는 불만과 결핍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바깥으로는 언제나 좋은 사람, 착한 사람, 친절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불태운 마음은 언제나 재를 남긴다. 재를 씻을 수 있는 시간이 일상 중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불만으로 남는다. 나는 언제나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은 나의 위에 군림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의 화는 일차적으로 다혈질이어서 생긴다. 전역 휴가 전날인가. 대장님은 나와 동기에게 맥주를 사주시며 말씀하셨다. "정용호 너는 다 좋아. 맡겨진 일도 책임감 있게 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넌 인마, 너무 다혈질이야!" 그 말씀을 듣고 고개를 숙였던 기억이 있다. 정확하게 나를 간파하셨구나, 연륜 있는 어른의 말이라 귀담아 들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솔직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무관심하고, 나의 나약한 모습에 대해 무관심했다. 그런 무관심은 나 자신을 속이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자존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그렇게 약한 사람일 리가 없다는 믿음, 다른 사람 앞에서는 약한 사람이고 싶지 않다는 바람. 그런 것들이 나를 더욱 약하게 만드는지 모른다. 


인간은 언제나 미래를 불안해하며 살아간다. 그 미래를 잊기 위해서 오늘에 집중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에 집중한다고 했을 때, 불안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불안을 마주하고 친구가 되었을 때, 비로소 불안은 불안이 아닌 상태가 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나약한 자신을 받아들이고, 친구가 되는 일이다. 그런 순간에 나의 화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아니, 화를 참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 자신의 나약함을 알고 있으니, 내가 누군가의 말과 행동으로부터 기분 나빠야 할 이유가 없어질 테니 말이다. 물론 그것을 이룰 수 있다면, 이미 나는 사람이 아닌 신이 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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