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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Mar 24. 2019

소시민 혹은 소심인

꿈을 꾸면서도 꿈인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 평생 동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빠져 있는 세상을 '꿈'이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이 꾸는 꿈이, 아니 우리가 꾸는 꿈이 사실은 이미 존재했어야 할 현실이라면.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이 오히려 꿈과 같은 것이라면. 심지어 악몽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뉴스를 보다 보면 너무 맞는 말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 맞는 말은 따지고 보면 모두 법전 속에, 잘난 이론서에 있는 말들이다. 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 맞는 말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법과 여러 이론서에서 제안(혹은 제한)하는 현실과는 맞지 않아서다. 법전에 맞춰서, 이론에 맞춰서, 생의 모습을 뜯어고치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나 역시 이론서를 읽고 공부하며 그것이 현실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근대 사회의 가장 큰 모순은, 인간의 발명품인 사회와 법이, 거꾸로 인간을 통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는  분명 괴물이다(리바이어던). 사람들은 법과 사회의 모순을 고치려 하지 않고, 그것에 속박되어 살아간다. 아무래도 그것은 이미 사회(국가)와 법이 오직 힘에 의한 투쟁의 결과물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 우리는 또다시, "만인의 투쟁"을 경험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실을 비판(나아가 비관)하고 새로운 현실을 꿈꾼다. 그러나 그것을 반드시 자신의 생명과 생활과 모든 것을 유지한 채로 얻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간혹 혹은 빈번히 누군가의 등 뒤에 숨어서 작은 목소리로 외치고는 한다. 욕망하지만 선두에 나서기는 두려운 것이다. 나는 그렇다. 소시민, 소심인이다. 매트릭스 안의 네오를 욕망하는 매트리스 위의 토마스 앤더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끄럽지만은 않다. 나는 너무나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이고, 그 나약함이야말로 인간의 헐벗은 모습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 마저도 어쩌면 용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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