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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Sep 19. 2020

자기소개서 유감

자기소개서를 상담하는 특강을 맡은 지도 벌써 4년이 다 되어 가는 것 같다. 혹은 그 이상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요즘 들어 느끼곤 한다.

고등학생 때 나는 대학을 원하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고등학교 졸업 후 공장에 취직할 생각을 막연하게 했고, 더 좋은 미래라고 하면 열심히 보디빌딩을 해서 아놀드 슈워제네거처럼 되는 게 꿈이었다. 그리고 공상을 즐기고 시나 몇 편 쓰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전문대학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문과생이었던 나에게 전문대학도 요원하기만 했다. 대체도 기술적인 영역에 치우친 과가 많았던 탓에, 전문대학의 전공을 이수할 능력이 나에게는 없었고, 무엇보다 수능에서 필요한 영역의 좋은 점수를 얻는다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에서 내가 대학을 간다면 기껏 인문학 계열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국어 성적이 매우 좋은 것도, 영어 성적이 월등한 것도 아니었기에 대학을 갈 수 있을지 끊임없이 의문스러웠다. 그래도 어머니가 대학에 가기를 원하셨던 탓에, 그동안의 소리 없는 방황을 빚 갚는 셈 치고, 100일 전 벼락치기를 하는 척이라도 했다.

뭐 이런 식으로 대학을 온 나에게 자소서를 작성해서 수시를 보는 경험이 있을 리 없고, 그런 경험이 전혀 없는 내가 누군가의 자소서를 첨삭해 준다는 것도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나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석사가 되었을 때,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 자소서를 첨삭해 주던 일이 지금은 고등학생의 진학 자소서로까지 이어져 왔다. 물론, 그 마저도 순전히 운이 좋아서 이렇게 되었을 뿐이지만 말이다.


자기소개서에 관한 나만의 확실한 신념이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학생부를 바탕으로 써 오는 자소서를 나는 대부분 비판한다. 그래서 그들이 써 놓은 이른바 전공적합성과 지원동기가 잘 녹아나는 활동 중심의 서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각 항목에 있는 느낀 점과 배운 점에 집중해서 나머지 활동들은 그저 길을 잃지 않기 위한 이정표 정도로만 삼도록 요구한다. 이런 나의 요구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일축하는 학생들도 많다.

조금 특별한 경험을 했는데, 그건 바로 담임 선생님에 대한 상반된 반응이었다. 보통 학교에서 진학 상담을 맡아서 하는 선생님은 담임선생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학생들이 학생부를 관리하고 자소서를 작성하는 모든 과정은 담임의 관리 감독하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나도 정말 뭣 같은 경우이긴 했지만, 온갖 비하 발언을 동반한 진학 상담을 받았고, “뭐? 무슨 대학교? 네 성적 가지고는 여기밖에 못 가 인마”라는 결론에 다다르고는 했다.

오늘날 고등학교는 사정이 조금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담임선생이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그들의 진로 상담도 인간적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생각이 잘못되었던 것인지, 적어도 내가 상담한 학생들의 담임 선생님은 아무 관심 없음 혹은 무조건 내 마음대로였던 것이다.


자소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드러내는 글이다. 그래서 각 항목에 작성할 에피소드를 선택하는 것부터 구성하는 것까지 본래는 순전한 자신의 힘으로 해내야 한다. 물론, 자소서를 처음 작성하는 고등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전략적인 부분이 궁금할 수 없다. 그래서 이른바 합격 자소서나 유튜브에서 자소서를 작성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영상을 검색해 보고는 하는 모양이었다. 자소서의 형식적 궁금증이 지방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는 불안감과 결합하면 실로 그 학생은 대단히 위축하고 만다. 서울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얼마나 많은 교육 인프라 속에서 철저한 관리를 받으며 성장해 왔을까를 상상하면서 자신의 학생부를 뒤적이는 상황을 떠올리면, 그의 초조하고 불안한 심정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무튼, 담임 선생님께 자소서를 보여 드렸더니 뭐라고 말씀하셨어요?라는 질문에, 갑자기 어두운 표정으로 “우리 담임 선생님은 안 봐주세요”라고 대답하는 학생들이 몇 있었다. 그들의 얼굴이 어두운 이유는 학교에서는 부모를 대신해 자신을 돌봐야 할 듯한 선생님의 무관심에 실망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물론 이미 몇 년 전, 이제 갓 입학한 1학년 학생에게 학생부에 기록할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나눠주고 해당 내용의 빈칸에 자신의 특기나 활동명을 채워서 완성하도록 지시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었기에, 여전히 고등학교에서 학생관리가 인간 대 인간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고 느낀 바 있었다.

지나친 관심도 문제는 문제다. 이 관심이 학생의 진솔한 이야기를 이끌어 내기 위한 상담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할 때 좋은 자소서의 형태를 학생에게 주입시키고, 그것에 맞춰서 고쳐오도록 강요하는 것이라는 점이 문제다. 왜 1번 항목에 이런 내용을 넣었는지, 이 활동 내용이 이 항목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천천히 물어나가는 과정에서 학생은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한다. 물론 이 속마음은 하나의 완성된 문장이 아니라, 단어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이 단어를 다른 진술에 포함된 또 다른 단어나 뉘앙스와 연결하여 의미를 만들어 주는 일을 해야만 진정한 자소서 상담이라고 생각한다.

자소서를 쓰는 주체인 학생은 자신의 이야기를 연결하여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들려주는 상담자를 보고, 이 이야기가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딱 들어맞으면, 그와 같은 흐름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야겠다고 결심할 것이다. 만약 다르다고 하더라도, 상담자가 그 나름대로 분석한 자신의 이야기를 재조정하여 자신이 말하고 싶었던 내용으로 바꿀 수 있다. 이 과정은 순전히 자소서를 작성하는 학생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학생부에 적힌 기록이 마치 학생의 학교생활 전체인양 규정하고, 그 내용으로만 자소서를 작성하게 만들면,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진정한 담임선생이라면, 물론 그가 자소서를 대신 써 줄 수도, 써 줘서도 안 된다는 현실적 한계가 있음에도, 또 괜히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했다가 제대로 진학시킬 수 없을 때 감당해야 할 책임이 무서울 수도 있음에도, 그는 학생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하고, 나누어야 한다.

학생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대체로 이런 것 같다. 내가 이 학과에 지원하기에 충분한 준비를 했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진로를 급하게 변경하느라 해당 진로에 관련한 학습과 활동을 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전공적합성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저는 친구들과 큰 갈등 없이 잘 지내왔기 때문에 갈등관리와 관계된 경험이 별로 없는데, 어떻게 3번 항목을 작성할 수 있죠? 진학동기와 향후 계획을 작성할 때 1번과 2번 내용이 반복되는 느낌인데, 이건 상관없나요? 등등.

이 학생들의 두려움은 어쩌면 우리 어른들이 만들어 준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자신의 꿈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아무런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이기를 바라는 어른들의 욕심, 아니 그 보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저 기계처럼 입력된 정보에 맞게 움직이기를 바라는 음흉한 욕심 탓이 아닐까.

학생부에 기록된 수많은 학습 경험과 특별 활동들. 그것이 해당 학생부를 작성한 청소년의 주체적인 삶의 흔적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입학할 때부터 공학자를 꿈꾸고, 글로벌 경영인을 꿈꾸었다는 그들의 진술에서, 나는 너무 거대해서 단지 어두운 배경처럼 보일 뿐인 어른들을 본다. 그리고 그들에게 진심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대신, 항목에 맞는 활동을 엮어서 잘 써오라는 주문만을 하는 어른들을 본다.

자소서의 항목은, 활동을 바탕으로 자신이 배우고 느낀 점을 쓰는 것인데, 학생부에 적힌 내용들을 더 상세히 적어오는 모습이라니... 그들이 솔직하게 쓰지 못하는 배우고 느낀 점들은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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