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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한 우리들

無謨하거나 無毛하거나

by 정선생

예전에 탕웨이가 화제가 됐던 때가 있었다. 미모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겨드랑이 때문이었다. 노출 장면에서 드러난 그녀의 겨드랑이에는 '털毛'이 있었던 것이다. 여성의 겨드랑이에는 털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 많은 사람들이 탕웨이의 겨드랑이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것 같다.

어찌나 충격이 컸던지 제모의 역사를 거론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당대 여성의 대부분은 겨드랑이 제모를 하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탕웨이의 겨드랑이는 시대상을 반영한 연출일 뿐 실존하는 현대 여성으로서 탕웨이는 결코 겨드랑이 털을 기르지 않았던 것이다.


각종 제모도 모자라 지금은 브라질리언 왁싱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아주 고통스러워 보이는 작업임에도 그리고 영구적이지도 않은 그 과정을 감내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완벽한 매끈함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역설적으로 인간은 털이라는 존재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한다. 머리털은 빠지면 곤란하고, 겨드랑이나 팔다리 심지어 음부의 털은 보이거나 많아서는 곤란한, 아니 심지어 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존재로 여겨진다.


인간은 다른 동물의 털에도 관심이 많다. 자신의 부족한 털을 보충하기 위해서 가죽을 벗기는 잔인함을 보이기도 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반려동물의 털을 예쁘게 다듬어 주기도 한다. 그 어떤 것이든 그 동물이 원하지 않았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인간의 문명은 무모(無謨)함 그 자체다. 결코 거스를 수 없는 것을 거스르려고 하거나,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고 한다. 마찬가지로 납득할 수는 없지만 엄연히 자연적으로 주어진 털을 혐오하는 무모(無毛)함은 인간이 이 세상을 대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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