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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毛한 시대(1)

by 정선생



이른바 남성잡지에 면도 용품 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 ‘면도 크림’에서부터 ‘거품을 바르는 솔’, 피부 안정을 도와주는 화장품까지 다양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면도기이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수염을 밀어내는 칼날과 함께 피부에 자잘한 상처가 남지 않는 안전성도 놓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면도하는 방식도 소개한다. 자연스럽게 흔적이 남는 면도에서 수염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밀착 면도하는 방법이다. 대체로 면도날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몇 번 정도 면도가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소개한다. 수염의 결을 따라 한 번만 면도하면 자연스러운 결과물이 나오고, 결을 따라 면도한 후 반대 결로 다시 한번 마무리해서 최상의 깔끔함을 만들어내는 방법 등이 있다.


물론, 면도기를 광고하는 모델의 얼굴에는 애초에 텁수룩한 수염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깔끔하게 면도한 얼굴에 면도기를 가져갈 뿐이다. 마치 자신이 광고하는 면도기로 미적으로 완벽한 얼굴을 완성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말이다.


면도와 관련한 용품이 남성들 사이에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단순히 얼굴에 난 털을 ‘없애는’ 일일까? 면도가 단순한 제모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면도는 얼굴에 있는 털을 제거하는 것과 동시에 다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물론 면도라는 말 자체는 전자를 더욱 강조한다. 영화에서는 면도를 하면서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새로 하는 모습이 나오곤 한다. 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의 삭발과 면도가 거론되기도 한다. <가족>이라는 영화에서 딸(수애)이 아버지(주현)의 수염을 비누칠로 면도해주는 모습은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계기가 된다.


수염을 그대로 방치하는 행위는 이발을 하지 않는 것과 함께 나태함의 상징으로 나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비위생적이라는 인상도 주는데, 수염에 관한 남성과 여성의 인식 차이를 조사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수염을 어떻게 바라보든 수염이 특정 직업, 나이에 관한 고정관념과 연결되며 남성과 여성이라는 젠더 정체성에도 적잖은 역할을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예컨대 사춘기를 경험하면서 소년은 신체에 ‘털’이 자란다는 사실을 목격하는데, 수염이 빨리 나지 않은 소년들은 면도를 시작한 소년에 비해 성숙하지 못한 것 같아 주눅 들거나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


그와 반대로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면도는 매너 혹은 예절로 간주된다. 군대에서 면도는 청결 상태를 점검할 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면도를 제대로 하지 않아 거뭇거뭇하거나 길게 자란 수염은 곧장 지적된다. '군인다움'이라 일컫는 정돈된 생활과 용모를 위해 수염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할 대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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