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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Jan 25. 2018

자신의 진짜 냄새를 맡은 적 있나요?

최정진의 <로션의 테두리>


당신 자신은 안녕하십니까. 혹은 당신은 당신과 잘 지내고 있습니까? 나 자신을 찾는 일은 근대(현대)에 들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자아와 주체, 개성 등의 강조로 인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진짜 나를 찾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싶은 본능과 나 자신을 찾겠다는 의지 사이에서 갈등하며 소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나는 저들과 함께 있지만, 사실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나 자신이야!”


요즘에 들어서는 모두가 자신에게 충실하고, 자신을 가감없이 드러낼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갈등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직장이나 학교, 심지어 연인이나 가족 관계에서도 상대방의 눈치를 보는 것처럼, 실재와 다르다고 믿는 가상공간에서도 결국 타인의 반응(좋아요)에 신경을 쓰고는 합니다.

로션을 바르다가 나는 시작된다 이것을 내 체취라고 생각하면 머릿속은 새하얘져서

네가 내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있다 소리가 쏟아지지 않게

인사를 한 만큼 얼굴은 당겨졌다가 견고하게 어디론가 베개에서 겨우 손을 놓은 냄새가 맡아지기 전에

맹세와 다른 체취를 맡아본 적이 없게

내 답은 겨우 문을 열었다 닫지만 내 불안이 가본 적 없는 곳을 지나간 곳으로 만들기 전에

도착을 거부하고 있다 용서가 잊었던 용서를 생생하게 겪게

-최정진, <로션의 테두리>

모든 사람들이 아침이면 분주합니다. 등교 및 출근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침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바깥에 나갈 때마다 우리는 바쁘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샤워(물론 머리감기와 세수를 포함하죠)를 하고 각종 화장품으로 자신을 단장합니다. 마지막에 향수를 뿌리는 경우도 많지요.  밤 사이에 얼굴을 뒤덮은 피지나 알게 모르게 흘린 땀 같은 것을 씻어내고, 향기만을 남기기 위해서 입니다.


최정진 시인의 <로션의 테두리>라는 시에서 아침마다 나를 벗고, 또 다른 나를 입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로션냄새가 나의 체취와 동일시 되는 순간, 나의 것이 아닌 냄새가 나의 것이어야만 하는 현실. 예전 노랫말로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냄새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나에게 낯설게 느껴지지만, 익숙해져야만 하는 냄새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고 싶어합니다.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혹은 진짜 자신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 자신을 완벽하게 드러낼 수 있는 순간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야 하고, 표정과 행동도 자신의 감정•생각과 다르게 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내가 집을 나서는 순간,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고, 그 기대를 저버리게 될 때 그 사람들의 실망하는 눈빛과 목소리를 감당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럴 것입니다. 요즘은 집안에 있어도 마찬가지겠습니다. 가상공간이 우리를 여전히 연결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스트레스가 쌓이고 우울해지고 세상살이에 지치게 되는 것이겠지요.


많은 전문가들이나 이론가들은 자신의 진짜 내면을 용감하게 대면하고, 자신이 발견한 진정한 나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라고 조언합니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쉽습니까. "그래… 맞는 말이야" 고개를 끄덕이지만, 우리는 아침과 저녁(혹은 밤)마다 두 가지 나의 모습 사이에서 오락가락합니다. 밤새 스며 나온 나의 체취를 지우는 일과, 하루 종일 나를 감싼 로션 냄새를 지우는 일을 반복하면서 말입니다. 아차, 잊을 뻔 했군요. 일과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 때에도, 언제나 다른 향기를 덧씌운다는 것을 말이죠. 심지어 씻는 순간에도 어떤 향기를 통해 씻어 내죠. 이처럼 우리는 매순간마다 나의 체취를 지우려 노력합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나… 반드시 찾을 필요가 있을까요? 나의 체취 대신 끊임없이 다른 향기를 몸에 입히고 있다면, 우리는 모순된 행동을 하는 것 아닐까요? 어릴 적 어느 책에선가 텔레비전에선가 접했던 말이 갑자기 떠오릅니다. “그 사람의 살 냄새가 싫어지게 되면, 이제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거야”라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의 살 냄새는 내버려 두더라도, 자신의 살 냄새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살 냄새를, 아무 향도 섞이지 않은, 때로는 땀을 비롯한 여러 분비물이 섞인 그 냄새를 얼마나 좋아하나요? 당신은 당신을, 당신의 삶을 얼마나 좋아하나요?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미안해집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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