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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Feb 12. 2018

남편은 전우 혹은 적

문정희의 <남편>

1

결혼식 주례사의 흔해 빠진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가(요즘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큰 맥락은 동일하다), "신랑 아무개 군은 신부 아무개 양을 아내로서 평생을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라는 말이다. 여기에 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될 때까지와 같은 완전히 죽어버린 은유를 섞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성품 주례가 완성된다. 문제는 여기에서 대답은 무조건 "예" 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만약 "아니오"가 나온다면, 그 결혼은 성사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주례가 현실주의자인 나머지 그 대답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결혼이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절대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평생 사랑하지도 않을 걸, 뭣하러 결혼하는 거야?" 그러나 여기,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전쟁 같은 삶을 선사해주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시인이 있다.


2

언젠가 마종기 시인의 <아내의 잠>을 통해 아무리 부부일지라도 어차피 남남일 수밖에 없다는 서글픈 진실을 이야기했는데, 아내의 추천으로 문정희 시인의 <남편>이라는 시를 읽어 보게 되었다.


시의 주요 내용이야 큰 차이가 없다. 바로 어느 정도 결혼 생활을 겪은 상황에서 배우자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다. 다만 마종기의 <아내의 잠>이 중년 남자의 시각에서 잠든 아내의 뒷모습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시였다면, 문정희의 <남편>은 위트와 유머가 느껴진다.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는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문정희, <남편>


문정희 시의 탁월함은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라는 구절에서 나타난다. 이 시가 결혼을 소재로 삼고 있음을 생각할 때 그것은 더욱 잘 드러난다. 일차적으로 전쟁은 부부싸움일 것이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서, 사랑을 전제로 결혼했지만 모든 순간 합의된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결혼에 대해 후회하거나 진정한 짝을 만나지 못했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 다음으로 전쟁은 부부가 함께 겪어 내야 할 여러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지 않았다면 결코 경험하지 못했을 삶의 순간들이 바로 전쟁인지도 모른다. 남편은 그저 나와 결혼을 함으로써 평화롭기만 하던 나의 삶에 전쟁을 불러일으켰다.


3

만약 시에서 언급한 전쟁이 부부싸움이라면 당연히 남편은 적이다. 반대로 삶 자체가 전쟁이고 그 전쟁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온갖 희로애락을 함께한 존재로 읽는다면 남편은 전우가 된다. 어떻게 읽어도 좋겠다. 남편은 실로 웬수(!)이면서, 그래도 (계약을 깨지 않는 이상)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무리 오랜 세월 함께한 전우라하더라도, 나의 개인적인 모든 것들을 공유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그렇게 공유할 수 없는 부분들(“잠 못 이루는 연애”) 덕분에 웬수 같은 남편과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전쟁에 뛰어든 모든 군인에게는 가슴 속에 품을 사랑 하나 쯤은 반드시 필요한 법이니까. 그것이 연인이든 어머니든 연예인이든 하느님이든 누구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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