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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Mar 13. 2018

우리는 죽음으로써 산다

신해욱, <끝나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

지겹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그 사람의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생동감 없이 굳어 버린 표정. 아마 그는 어제 있었던 일들과 오늘 해야 할 일을 되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무사히 해결하기 위해서 초조해하고 있다.


아무리 자신의 삶이 중요하다고 말해도, 누군가 정해 놓은 틀에서 벗어나자고 말해도, 자신의 꿈만을 좇는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어쩌면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누군가로부터 이기적이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꿈속에서 나는 매일 죽는다

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있는
얼음의 공포

물고기 알처럼 섬세하게
움직이는 이야기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열거하지 못한다

몇 번씩 얼굴을 바꾸며
내가 속한 시간과
나를 벗어난 시간을
생각한다

누군가의 꿈을 대신 꾸며
누군가의 웃음을
대신 웃으며

나는 낯선 공기이거나
때로는 실물에 대한 기억

나는 피를 흘리고

나는 인간이 되어가는 슬픔

-신해욱, <끝나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철 좀 들어라"라고 말하는 것은, 나에게 죽음을 강요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의 꿈이 아닌 가족의 꿈, 나의 꿈이 아닌 고용주의 꿈을 위해서,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꿈도 꾸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누가 그렇게 살라고 했어?"라고 오히려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왜 나는 나답게 살지 못했지? 그건 정말 용기가 없어서일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우리 삶이 너무도 치열했다. 매 순간 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내 주변에서 사람들이 떠나게 될 것이 겁나서, 더 많은 용기를 내어 나 자신을 포기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표정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주 많은 표정을 번갈아 가며 덮어쓰는지 모른다. 나는 죽음으로써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나의 꿈을 포기하고 자아를 죽이려고 노력할 때, 역설적으로 인간의 자격을 얻는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나로 인해 더 많은 것을 누리게 될 가족들(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열심히 자신을 억누르고 다독이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행복한 존재가 된다. 아주 값비싼 행복의 주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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