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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May 18. 2023

전화는 못하겠어요

  콜 포비아? 폰 포비아? 전화 공포증, 통화 공포증?

  이런 말들이 코로나 19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며칠 전 라디오에서는 유명 연예인도 자신이 위와 같은 전화(통화) 공포증을 겪고 있음을 밝히기도 했단다.

  예전부터 젊은 사람들은 문자를 이용한 소통에 익숙한 나머지, 통화를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공포증'이라는 진단명으로까지 등장할 줄은 몰랐다.

  생각해 보니, 나도 어릴 적부터 전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 집은 아마, 2010년 즈음해서 집 전화를 없앤 것 같은데, 그전까지는 집 전화로 음식을 배달시켜 먹었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전화를 하고 싶지 않아 엄마나 동생에게 미루고는 했다.

  여보세요? 인사하고 집주소를 말하고, 음식 이름만 이야기하면 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마, 당시 어른들이 하는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있었고, 내가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어른들도 있었기에, 그런 것이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전화는 힘들다. 이메일과 메신저를 즐겨 사용한다. 이메일을 보냈는데, 전화를 하는 직원들이 가끔 이상하게 생각되기도 한다. 너랑 통화하기 싫어서 이메일 보낸 건데(응?).


  전문가들은 문자 같은 경우 의사소통 진행 시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대응할 수 있지만, 전화 통화 같은 경우는 모든 정보가 실시간 음성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고, 또 순간적인 말실수를 돌이킬 수 없는 경우도 많아 더욱 거부감과 공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다.

  하기는 문자메시지나 SNS로 소통할 때는 아주 능수능란해 보였던 사람이, 직접 대면하면 말을 더듬거나 생각보다 무례하다고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문자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방식이 대단히 정련된 형식임을 짐작하게 한다.

  반대로 글을 못 쓰겠다고 하는 사람도 많은데, 그 이유도 비슷한 것 같다. 글을 읽는 행위는 부담이 없지만,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내가 읽었던 형식의 글과 유사하게 전달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아마, 말은 떠오르는 생각을 소리로 곧장 전달하는 것이지만, 글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정련'한 형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

  이를 조금 더 일반화해 본다면, 학력에 따라 쓰고 말하기를 두려워할 수 있고, 세대에 따라 쓰고 말하기를 두려워할 수 있다. 예컨대, 시대상황과 가정형편에 따라 배움의 정도가 다르다면, 그 차이에서 오는 부담감으로 인해 글을 쓰고 싶어 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너무 많은 책을 읽고, 그 책에 관한 평가에 압도된 나머지 책이나 글을 쓰는 행위 자체를 특수한 능력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확실히 전화는 예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폭력적이다. 메신저도 마찬가지겠지만, 전화를 받지 않음은 읽음 표시가 사라지지 않은 말풍선을 바라볼 때보다 무례해 보일 수 있다.

  전화통화는 언제나 대면하고 있는 상황처럼 느껴진다. 서로 같은 공간에서, 혹은 바로 눈앞에서 말을 걸고 있는데 무시당했다는 느낌이, 내가 건 전화를 받지 않는 상대방을 향한 느낌과 유사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에서는 전화를 선호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메신저나 이메일로 소통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비용이 업무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에 이메일이 연동되어 있을 텐데, 이메일을 읽고는 전화를 건다. 전화로 실시간 소통을 하면 메신저에 문자를 입력하는 것보다 빠르다(고 생각한다). 또는 자신이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건, 전화로 대답해 주는 것보다 이메일이나 메신저로 문의하고 답변받는 것이 업무처리의 근거를 확보하는 데 더 효과적이다. 훨씬 투명하다는 뜻이다. 전화는 불투명하다. 그래서 더 부담스럽고 불편하다.


  또 기억해야 할 게 있다. 업무 내용을 전달할 때 얼마나 예의가 있었는지 말이다. 젊은 사람이나 상대방(예컨대 MZ)의 무례를 지적하기 전에, 전화로 어떤 업무를 지시할 때 기성세대 혹은 자신이(예컨대 꼰대)는 얼마나 예의 발랐는지를 되돌아봐야 할 것 같다.

  "아, 정용호 선생님? 아니, 이거 이러면 어떡해요? 빨리 수정해서 보내주세요.", "어, 난데 보고서 1시까지 가져와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불쾌하다. 했다. 할 것이다.

  이쯤에서, 이순재 할아버지의 광고를 듣자. https://youtu.be/GiXRHCnw-e4


  업무 지시도 인간관계의 한 가지다. 직장이라고 해서 무례함 혹은 생략된 예절이 면죄부를 받는 건 아니다. 간단한 인사, 부드러운 부탁(요청), 과한 감사와 미안함의 표현은 결코 非효율적이지 않다. 오히려 備효율적이라고 믿는다.


  "5분 뒤에 전화해도 될까요? 글로 쓰기는 힘들어서요." "오후 1시 30분 이후에 전화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직접 전할 말씀이 있어서요."라는 식으로 말이다. 나중에 불쑥 전화가 와도 괜찮아질 만큼 친해진다면, 그때는 상관없을 수도 있겠다.

  글은 정중하다. 혹자는 이메일로 무언가를 통보하는 것이 비인간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글을 쓰는 사람은 언제나 고민한다. 말할 때보다 더 많은 고민을 한다. 그러나 전화는 정중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감정에 치우쳐 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고, 차분하게 전화했지만 주고받는 대화가 격화시킬 수도 있다. 사실, 아무리 마음에 드는 전화벨을 설정했을지라도, 언제나 갑작스레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이미 정중하지 못하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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