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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May 11. 2023

비를 막아주는 사람과 비를 맞아주는 사람

  나훈아의 <사랑>은 내가 20대 초반에 즐겨 부르던 노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랫말 1위에 선정되기도 했던 명곡이다. “비 내리는 여름날엔 내 가슴은 우산이 되고”라는 구절이 특히 애절하게 다가왔는데, 이 구절은 이후 많은 노래에 영감을 제공했다.

  비를 막아주는 도구인 우산은 사실 불완전하다. 우산은 우리 몸 전체를 젖지 않게 도와주지 못한다. 가만히 서 있을 때조차 다리나 신발 부분은 젖게 마련이다. 머리나 얼굴, 어깨가 조금 젖지 않는 데 만족해야 할 때도 많다. 바람에 휘어지거나 뒤집어져서 난감한 경우도 생긴다.

  급할 때는 어떤 우산이든 반갑다. 약해 빠진 삼단 우산이라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다. 그렇지만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비의 양이 많을 때는 삼단 우산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된다. 그러면 장(長) 우산을 구한다. 장 우산은 삼단 우산보다는 비 오는 날 만족스러운 모습이다. 그렇지만, 비가 많이 오지 않거나 오다가 그치기를 반복하는 때에는 휴대가 간편하지 않아 불만족스럽다.

  이처럼 비의 양, 바람의 방향, 비 오는 중, 비 올 예정, 소나기 등 경우의 수를 따지다보면, 나를 만족시킬 우산을 구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많은 사람이 혼자이기를 선택하는 시대. 그럼에도 반려자가 아닌 반려동물은 늘어나는 모순적인 시대다. 반려동물이라고 해서 반려자에게서 느끼는 서운함이나 귀찮음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들에게 상처를 줄 수는 있어도, 그들에게 상처받는 일은 극히 드물다. 어쩌면 상처받지 않을 가능성 때문에, 반려자보다 반려동물을 선호할 수도 있겠다.

  반려동물에게 우리는 우산이 되어야 한다. 그들을 위협에서 막아줘야 하고,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언제나 자신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준비태세에서 만족감을 느끼고, 행복과 사랑이 샘 솟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누군가가 비로부터 완벽히 지켜주기를 바라는 순간, 그는 언제나 함께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휴대하기 힘든 존재가 되어야만 어떠한 비로부터도 나를 완벽하게 지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지켜주는 우산을 내 마음대로 들고 다니기란 만만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순간마다 펼칠 수 있는 우산이기를 기대한다면, 그는 생각보다 완전한 존재가 아닐 수 있다. 갑작스럽게 내린 비에 속수무책으로 신체 대부분을 내주어야 한다. 다만, 힘겹게 만든 헤어스타일이 망가지지 않았음에 만족해야 한다. 새로 산 구두가 있다면 위를 포기하고 발을 막으면 된다. 그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한 가지를 지켜주는 존재이지만, 모든 것을 지켜주는 존재는 아니다.

  아내와 남편, 연인과 친구는 우산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비가 오지 않는 때에는 나를 귀찮게 만드는 존재일 수 있지만, 비 오는 날에는 큰 위안이 된다.

  안타깝게도 인생은 매일 비가 오지 않는다. 360일이나 흐린 하늘을 보이는 인생도 있지만, 그런 인생에도 매일 비가 내리지는 않는다.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우산 하나 장만하고 길을 나섰음에도,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그 우산은 거추장스러워진다. 내가 의지하고 싶은 사람이 때로는 귀찮게 느껴지는 것도, 어쩌면 생각보다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할 순간이 우리에게 잦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혼자여도 괜찮은 인생이고, 가끔 찾아오는 고독감이나 외로움은 다양한 활동으로 채울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훈아의 <사랑>은 1982년에 나훈아가 직접 작사와 작곡을 했다. ‘비 내리는 여름날’로 상징되는 위협에서 당신을 지켜주겠다는 남성성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2007년 여성 가수인 지아가 부른 <물론>이라는 곡에서는 “내리는 비를 막아 줄 수는 없지만 비가 오면 항상 함께 맞아줄게”라는 고백이 흘러나온다. 우산이 되어 주겠다는 다짐은 그가 나를 완전히, 온전히 보호해주리라는 헛된 희망을 낳는다. 기대는 실망의 이면이다.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여성이 남성의 다짐에 속아 함께 비를 맞아야 했는지 모른다. 그러니 비를 막아 줄 수 없다는 솔직한 고백과 함께 대신 함께 맞아주겠다는 다짐이 조금 더 진실하게 다가갈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영화, 2006년 개봉했던 <007 카지노 로얄>에서도 비슷한 남성상이 나온다. 살인 현장을 보고 겁에 질린 베스퍼는 방에 들어와 술을 비우고, 손에 묻은 피를 지우기 위해 취한 채 샤워기를 틀어 놓고 욕실에 주저앉아 있다. 방으로 돌아온 본드는 깨진 술잔을 보고 놀라 물소리가 들리는 샤워실로 향하고, 베스퍼를 본다. 다가와 앉은 본드는 베스퍼에게 춥냐고 묻고, 베스퍼는 춥다고 한다. 본드는 샤워기를 잠그려다 말고 함께 물줄기를 맞는다. 베스퍼의 어깨를 감싸 안고서.     


  비와 우산은 사랑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제다. 간절한 기다림은 비를 맞으며 서 있는 남자 혹은 여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클리셰다. 그렇지만, 반복이 인생이다. 우산을 쓰고 도착한 남자 혹은 여자는 비를 맞은 사람에게 다가가 우산을 씌워줄까? 그렇다면, 그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자기는 계속 젖지 않을 거라는 뜻이니까. 그러니 우산을 집어 던지고 달려간다. 그리고 함께 비를 맞는다. 아쉽지만 거기에서 사랑의 서사는 끝난다.

  그 뒤로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함께 우산을 썼을까, 각자 우산을 썼을까? 함께 쓴다면 누구의 어깨를 더 배려했을까? 모를 일이다. 차라리 어떻든 그들은 비를 완벽히 막을 수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불만족한 상태가 언제나 존재했으리라 상상하는 편이 속 편하다.

  어차피 어떠한 형태로든 우산은 완벽히 비를 막아줄 수 없으니까. 어떤 사랑도 완벽하게 비에 젖지 않는 행복을 선사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우산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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