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bout THINGs

닮아도 달라도 슬픈 세상

물건 이야기인지 아닌지 모를 이야기

by 정선생

hommage는 존경과 존중의 뜻을 담아 표현하는 행위이다. 존경하는 영화감독의 클리셰를 흉내 내는 일이 가장 흔한 오마주의 예일 것이다.


그런데, 시계 업계에서 ‘오마주’라고 하면, 존경과 존중의 의미보다는 기존 브랜드의 권리를 침해하면서 대중을 속여 이익을 취하는 방편으로 보인다.


시계 시장에서 비슷한 디자인을 보는 건 흔한 일이다. 비단 시계뿐만 아니라, 자동차, 휴대전화, 캐릭터 할 것 없이 모두 어딘가 비슷한 구석이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원조’를 찾는다. 저렴한 가격에 비슷한 디자인의 제품이 많으면 원조를 찾지 않을 것 같지만, 오히려 ‘원조’는 비슷한 것이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더욱 의미를 갖는다. 진품만이 가지는 아우라 때문이다. 그래서 오마주 제품에 관해 명품브랜드가 굳이 소송을 걸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들었다.


카피(카피캣)든 오마주든 심지어 벤치마킹이든, 이미 성공을 거둔 한 대상을 추종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에서 안정을 추구하는 욕망을 확인할 수 있다.


적잖은 시계 유튜버들이 오마주에 관한 자기 생각을 콘텐츠화했는데, <생활인의 시계>에서는 기존 디자인을 모방하는 일부 중소 브랜드를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전한 바 있다(https://youtu.be/_zQft8BrOfg). 처음 시작하는 작은 기업이 자신만의 색깔로 과감하게 도전했다가는 제대로 성공할 수 없으므로, 누구나 알법한 디자인으로 상품을 제작해 자금력과 인지도를 확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이었다. 카시오의 지샥도 처음 내놓았을 때 국내 반응이 싸늘했다가, 오히려 미국에서 알려져 10년 만에 인기를 얻게 되었다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의견이다.

생활인의 시계, 2019년 영상


나도 몇 점 가지고 있는 디자인 카피 제품들은 나의 일그러진 욕망을 드러낸다. 명품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과 명품브랜드가 지배력을 행사하는 방식을 향한 비판 의식이 공존한다. 이 모순된 욕망이 제품을 향한 호기심을 타고 결제에 이르렀다.

아디스다이브와 파가니 디자인의 롤렉스 서브마리너 디자인 카피와 오메가 씨마스터 다이버 300 디자인 카피

‘명품’은 아무나 가지기는 힘든 물건이면서도, 자신의 성공(부와 명예)을 증명하기 위한 물건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누구나 명품브랜드의 물건을 하나 정도는 가지고 싶어 한다. 그러나 명품은 단지 가격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이른바 역사(history)를 바탕으로 형성된 가치(heritage)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대표할 수 있는 물건(iconic, signature)도 존재해야 한다. 그래서 단지 명품을 샀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무리의 일원으로 받아주지는 않는 장면이 드라마에 등장하기도 한다.


유서 깊은 명품브랜드가 탄생하고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귀족이나 왕족의 지원을 받아 물건을 생산하고, 물건을 그들에게 인정받고 또 지원받는 일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수공예가 지닌 우수한 품질과 희귀성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우리는 그저 이미 유명한 상태인 그들을 마주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역사와 가치를 평가할 때, 백 년 이백 년이라는 ‘지속성’은 큰 의미를 지닌다. 처음 가죽공방을 창립한 시기가 1800년대라고 하더라도, 20세기 초 양 차 전쟁 때 경영이 끊어졌다가 1990년대에 한 기업가가 인수한 브랜드라고 가정하자. 그 브랜드는 명품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자신을 홍보하겠지만, 언급하는 역사에는 수십 년의 공백이 존재할 것이다. 그 물건을 만드는 방법이 최초 공방을 운영하던 장인이 추구하던 방식이 아닐 수 있다. 그들이 사용하는 재료 역시 창립 초기부터 고수하던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명품브랜드를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기업은 ‘명품’을 만드는 기업이 된다. 명품브랜드의 손뜨개 가방이 200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팔린다. 재료의 우수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가격이 합당하다고 말하기는 솔직히 조심스럽다.

한국 프라다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토트백

그런 의미에서 ‘명품’은 말 그대로 ‘이름’ 있는 물건에 불과하다. 과거에는 성과 이름을 얻을 수 있는 존재가 많지 않았다. ‘이름’이 있다고 하더라도 보통은 집에서 부르기 위한 이름이었거나, ‘성’은 아예 없거나 자신의 직업에 따라 불리기 일쑤였다. Smith와 Baker가 들으면 기분 나쁠 수 있겠지만, 윌이라는 이름의 대장장이, 케빈이라는 이름의 제빵사가 그들의 신분이었던 거다. 전쟁에서 큰 공로를 세운 이에게 성을 내리는 장면이 과거 사극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태조 왕건>이었던가?)


이름이 귀한 시절에, 많은 사람이 그 물건을 만든 사람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면, 당연히 품질이 매우 뛰어났음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뛰어난 물건이기에 이름이 알려지는 게 아니라, 이름이 매우 알려졌기 때문에 물건도 뛰어나리라 믿는다.


단순 비교는 힘들지만, ‘똑같은 조건’으로 만든 가방이 어떤 브랜드를 붙여서 세상에 나오느냐에 따라 판매량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명품브랜드가 부여된 가방이 알려지지 않은 동네 공방의 가방보다 우수하리라 단정할 수는 없다. 시계라면, 500만 원에서 1,000만 원 정도의 비교적 접근하기 쉽다는 가격대의 시계조차, 몇만 원짜리 시계와 비교해서 우수하다고 말할 수 없다. 훨씬 아름답지만, 그것이 우수성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디자인과 (실제 축적된 시간과는 무관할 수 있는) 역사, 그리고 가치. 이 모든 것들이 물건 자체로서 추구해야 할 기능을 쉽게 넘어서곤 한다.


오마주 시계의 범람은, 단순히 비하할 문제가 아닌지도 모른다. 명품브랜드와 동일한 수준의 재료를 사용하되 훨씬 저렴한 제품을 판매하는 그 기업들은, 그대로 가져오거나 조금 변형한 디자인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똑같거나 유사한 조건으로 만들어낸 유사한 결과물을 자기 이름으로 내놓아 성공할 가능성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이미 앞선 자들을 보고 배우고 흉내 내는 작업이 비난받는 이유는, 정말 그렇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인가, 심지어 그런 규칙조차도 기득권을 지키고자 강제되고 강조된 것은 아닌가 말이다.


달리 말하면, 어떤 대상을 오마주, 디자인 카피, 벤치마킹할 수밖에 없는 성장 과정이 인정받지 않는 데에 관한 회의를 제기하는 건 아닐까. 익숙하지 않으면 돌아보지 않는 대중의 심리를 꼬집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텔레비전, 유튜브, 틱톡, 메타에서 보이는 수많은 유명인이나 유명콘텐츠를 이상향(워너비)으로 삼아 성공을 꿈꾸지만, 언제나 ‘아류(亞流)’로 취급받는 세상에 사는 것은 아닌가. 남들과 다르고 독창적이면 성공할 수 있는 것인가. 독창적인 행보를 보이라고 가르치면서도 정작 익숙하고 편안한 것을 선택하고 선호하는 분위기는 없는가. 독특한 모습에 재미있고 신기해하다가도, ‘(이미) 유명한 그 사람’이 최고라고 말하면서 돌아서지는 않는가. 그렇다고, 독창적인 삶으로는 생을 유지하기 힘듦을 인정하며 살아가지만, 모두 비슷해서 오히려 쉽게 비교당하며 배제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똑같은 과정을 거쳐서 똑같은 내용을 공부하고, 똑같은 방법으로 수련하고, 똑같은 과정을 거쳐서 입사하여 일하거나, 창업하여 경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게 모두가 복제된 듯 동일한 방식으로 길러졌음에도 성공의 기회는 평등한 방식으로 제공되는지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을 목격한다. 지금도 오마주, 카피, 벤치마킹하며 살아가는 적잖은 소수자들이 ‘자기 이름이 있음’으로서의 ‘유명’해지고 ‘명품’이 되는 세상을 주장하고 있다. 이 세상은 이미 유명한 자들이 세운 법과 규칙에 따라 돌아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Tissot Le Locle Automa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