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bout THINGs

정 없는 생활과 정 많은 생활 사이

by 정선생

참 좋아하던 과자. 초코파이. 지금은 여러 과자 회사에서 만들고 있지만, 나 때는 오직 한 회사에서만 만들었었다.

포장지가 투명에서 불투명으로 바뀐 것 같은 기억이 있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을 걸친 기억이니 정확한지 알 수는 없다.


요즘 학교에는 특별 사업으로 진행하는 강의 행사가 많다. 학교에서 받아왔던 간식 꾸러미에 초코파이가 들어 있었다.

초코파이를 약 20대 후반부터 입에 대지 않았다. 쉽게 말하면 10여 년 정도는 초코파이를 먹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체중을 줄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구를 몇 바퀴 돌아도 빠지지 않는다는 마시멜로를 아예 끊어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인간관계를 맺는 극단적 방식은 내 생활 곳곳에도 적용되었다.


초코파이 12개 들이를 우유 1000밀리리터와 함께 한 번에 먹어 치우곤 했던 나였다.

라지 피자 한 판을 온전히 나 혼자 먹고, 순대 1만 원어치를 야밤에 먹었던 나.


군대에서 초코파이를 몰래 먹다가 걸려서 혼쭐이 나는 처량하고 '찌질해' 보이기까지 하는 서사의 주인공에 내가 포함되기도 했다.

전경으로 자대 배치를 받은 초기, 고된 생활에 간식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신병에게 성당에서 나눠준 초코파이는 그림의 떡이었다.

밤에 몰래 화장실에 들어가 봉지를 조심스레 뜯고,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두 달짜리 선임이 화장실 문을 두드리더니 조용히 말했다.


"야, 정용호. 너 지금 뭐 하고 있냐."

"이엉, 엉옹오 @#%#!%"

"... 미쳤냐? 빨리 나와라."


초코파이를 먹고는 찌는 살이 싫어서 열심히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하던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해 버리고 후회와 반성을 하는 성격이었던 거다.

나이를 더 먹으면서는 술을 마시고 술살 찌는 것이 싫어서 미친 듯이 러닝머신을 달리는 내가 되어 있었다.

"이제 유산소 운동은 그만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라는, 탈의실과 샤워실을 정리하던 트레이너가 나를 보고 하던 말을 무시하고(정말 2년 동안 러닝머신만 하루 2시간씩 했으니 그런 말을 할 수도 있었다) 계속 달리기만 했다.

내가 한 일의 결과가 살이 찌는 것이라면, 그만큼 중량을 늘리면서 운동을 하면 됐는데.

내가 한 일의 결과가 살찌는 것이라는 게 싫어서 온몸을 혹사시켰던 거다.


아내를 만나고 하루를 행복하게 지내는 날이 많아지면서 헬스클럽은 자연스럽게 그만두었다.

야식도 먹고 간식도 많이 먹으면서 살이 조금씩 쪘다. 지금은 정말 많이 쪘다.

아내는 결혼 전에 찍은 사진 속 나를 보고, 볼품없어 보인다는 말을 하고는 한다.

차라리 지금이 낫다는 것이지만, 너무 찌면 또 볼품없어 보일 거다.


그렇다. 후회와 반성 없는 삶을 사는 것도 큰 문제지만 후회와 반성으로 가득한 삶을 사는 것도 큰 문제다.

그래서 인생은 균형 잡기의 문제.


오늘 아침, 큰 마음을 먹고 10여 년 만에 초코파이를 먹었다.

한입 베어 물었지만, 큰 감동은 없다. 쓰디쓴 블랙커피가 오히려 달게 느껴지는 나다.

이제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것들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부러 찾아서 먹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철저하게 거부할 것 같지도 않은...? 묘한 '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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