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연>
2013년 가을, 어느 서예가 선생님의 작품
스승님이 지도하는 교육대학원 선생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내를 처음 만났다. 2011년 겨울이었다고 한다. 나는 그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날의 정확한 연월일을 기억할 만큼, 그 자리가 의미 있지는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대학원 석사 과정 선생님들과 지도 교수가 한 자리에 모여 종강을 축하하는 그런 자리였다. 물론, 아내를 처음 만난 자리라는 의미는 있다. 그러나 그저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아서 스승님 앞에 앉아 있는 아름다운 여인을 봤을 뿐이다. 그래서 정확한 날짜를 알지는 못한다.
아내가 워낙 인상적이었기에 모임이 끝난 후, 학교 건물로 돌아가면서 스승께 '그분'에 관해 물었다. 스승님은 아내의 이름을 말해주면서, 아마 남자친구 없을 걸? 한번 잘 해 봐,라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사는 동네에 사는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 뒤로 나는 아내와 다른 대학원 석사과정생들의 스터디를 이끌면서도, 아내와 면대면으로 인연을 맺거나 한 적은 없었다. 다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와 내가 같은 공간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설렜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스승께서 처제가 일하는 곳과 아내가 살고 있는 곳을 헷갈리셨던 거다.
아름다운 여인에게 나 같은 사람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마음이 컸었다. 그래서 스터디 선생 말고는 다른 인연을 맺지는 않으리라 굳게 결심했었다. 괜한 인연을 만들었다가 상처만 받고 헤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차라리 스터디만 깔끔하게 마치고 헤어지면, 오히려 연락하기 쉬운 사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했었던 듯하다. 그러면서도 괜히 안부도 묻고, 밥 한 끼 하자는 실없는 말도 했던 것 같다.
내 기억으로, 아내가 나중에 한 말은, 진작에 말한 대로 밥 먹고 친해졌더라면, 그렇게 복잡한 길을 돌아서 만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거였다. 어정쩡하게 아내와 관계를 (나 혼자) 확정 지은 나는 나대로 연애를 했던 터라,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아내와 정식으로 사귈 수 있었다.
내가 인연을 정리한 뒤로도 이렇다 할 진전을 보지는 못했다. 보채던 나와 천천히 나아가길 원하던 아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선생님에서 오빠가 되면서 친해지다가 2013년 6월 18일에 '다시' 만남을 가졌다. '다시'라는 말은 6월 초, 아내와 제대로 데이트를 한 뒤, 책 한 권을 건네면서 곧장 이별을 통보하는 기행을 보였기 때문이다. 아내는 어이없음과 분노를 삼키고 나에게 다시 연락했다. <얼굴 빨개지는 아이>를 찬찬히 읽어보고서. 그렇게 다시 찬찬히 만남을 가지다가, 2013년 7월 14일부터 정식으로 1일을 셌다.
2011년 12월, 첫눈에 반한 여인이 2013년 7월에 정식 연인이 되고, 2015년 12월에 아내가 되었다.
사진 속 글귀는 2013년 10월의 물건이다. 국어문화원 연구원으로 참여한 한글날 축제에서 한글 붓글씨를 써주는 분께 부탁한 글귀다. 아내의 이름인 주연과 그대는 내 삶의 주인공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아 저렇게 써 달라고 부탁했다. 아내가 그것을 상자 안에 두었었는데, 얼마 전에 아들과 함께 상자 안의 물건을 꺼내 보다가 저걸 나에게 보여주며 깔깔 웃었다. 나도 참 깔깔 웃었다.
문득, 내 삶의 주연을 외치면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내가, 지금은 며느리, 아내, 애 엄마의 역할만 주고 있다는 게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