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터포티 Apr 02. 2023

무정한 세금  다정한 세금 (3/4)

무정한 세금과 다정한 사람의 감정

당일 아침


과세전적부심사 당일, OO지방국세청 앞에서 그녀를 만났다.


지난번 그녀가 보내 준 동생과 부모님의 사진을 컬러로 출력하여 여러 세트를 만들어 가져갔는데, 그녀에게 보여주면서 이걸 위원들에게 보여줬으면 하니 동의해 달라고 했다. 그녀가 보내주었던 여러 장의 사진 중에서 누가 봐도 가슴이 아픈 사진들만 골랐었다. 사진을 보는 그녀의 표정이 힘겨워 보였다.


회의실에 들어가면 당신이 편지를 읽을 건데, 감정을 컨트롤하려 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절대 억지로 울려고 하지 말고, 눈물이 나오면 참지도 말라고 했다. 대신, 아무리 목이 메고 힘들어도 편지는 필사적으로 죽을힘을 다해 끝까지 읽으라고 했다. 그 편지에 당신과 당신 가족의 목숨이 달렸다고 생각하시라 했다.




과세전적부심사 위원회


우리 차례가 되어 회의실로 들어갔다.


원래는 인사와 소개를 한 후 대리인인 내가 사실관계나 법리적인 문제에 대해 주장을 펼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날은 진행요원에게 부탁해서 일단 사진을 먼저 돌렸다. 사진을 본 위원들의 감정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옆에 있는 위원과 사진을 가리키며 낮은 소리로 말을 나누는 모습도 보였다.


"이게 뭡니까?"


위원장의 목소리가 좋지 않았지만, 무시했다.

인사와 소개만 한 후 청구인 김순영씨의 진술을 먼저 들어보시라 부탁드리곤 뒤로 물러 앉았다.



그녀는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목소리가 많이 떨렸다.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목소리에 물기가 서리더니 금방 울음 섞인 목소리로 변했다. 울면서 읽고 읽으면서 울고. 그래도 그녀는 끝까지 읽었다. 마지막에는 "제발 저희 좀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듯 소리쳤다. 그녀는 결국 오열했다.


나는 진행요원에게 그녀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좀 살펴달라고 부탁했다.



"아니.. 이거 참.. 이런 식으로 하시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위원장의 질책 가득한 발언이었다.


"죄송합니다. 의도한 바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저도 이 정도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시인했다.


"이 사건.. 쉬운 거 아니지 않습니까?

어차피 안될 거..  하고 싶은 말이라도 다 하시라고 했습니다..


누구라도 저분 상황이 되면, 죽고 싶지 않겠습니까? 자기 이름도 모르고 대소변도 힘든 서른 넘은 여동생에, 병든 아버지 어머니까지.. 결혼도 못하고 가족들 부양하면서 겨우겨우 하루하루.. 그야말로 연.명. 하는 삶인데..."


감정 조절이 잘 안 되어 내 목소리에도 울분이 섞이기 시작했다.


그리곤.. 마지막 멘트를 날렸다.

"이 자리에 계신 위원님들..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죽어라 노력해서 여기까지 와 계시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 한 번쯤은 도와줄 힘. 있으시지 않습니까? 그. 힘. 오늘 한번 써 주십시오."


참으로 치기 어리고 낯간지러운 멘트이지만, 나이 들면서 세상사에 무뎌졌던 마음을 패기 있고 감성 충만했던 젊은 날로 되돌려 주기도 하는 멘트이다. 뭐.. 내 경험상 그렇다는 이야기다 ;;



천장을 쳐다보는 위원, 사진을 뒤적이는 위원, 한숨을 내쉬는 위원.. 그들이나 나나 결국은 사람이다.



이제 그들이 사람으로서 행동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돌파구를 뚫어 주어야 하는데.. 말을 꺼내기가 애매했다. 마음만 먹으면 자기 뜻대로 결정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위원장의 표정이 판단하기 쉽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제발"을 돼 내었다. "제발.. 제발.. 한 명만 나서주라"



그때.


"혹시 다른 거.. 뭐 없나요?"


먼 쪽에 앉아있던 여성 위원이었다. 이건 분명 그분이 보내는 신호였다. 자기도 동참할 수 있게 뭐라도 하나 던져달라는.



위원회에서 의견진술을 할 때에는 사전에 요약본 같은 것을 제출한다. 나는 이 사건에서 주장하고 싶은 것들과 고소사실 등을 적어서 제출했지만, 도장이니 필적이니 하는 것들은 적지 않았다. 어차피 위원들이 읽지도 않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런 순간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나는 도장과 필적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도장은 청구인 김순영의 이름이 아니다. 서명을 한 필적이 청구인의 통장에 있는 필적과 다르다. 통장은 20XX년에 사용하던 것들이라서, 이 사건을 위해 최근에 조작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그 당시의 생생한 증거이다. 청구인이 아닌 제3자가 서명을 했고, 도장도 아무 도장이나 대충 찍은 것이다. 즉, 계약서 자체가 청구인의 이름을 도용해서 불법적으로 작성된 것이다.


나는 크게 확대한 도장과 필적들을 흔들면서, 오직 이 것이 모든 것인 양 가장 확실한 증거인양 열변을 토했다.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맞추며 "이젠 당신이 나설 차례야"라는 신호를 강렬하게 보냈다.



위원들이 거들어 주기 시작했다. 그들도 위원장의 눈치를 보기는 했지만, 여성 위원 분이 터 준 물꼬를 놓치지 않았다.


"필적 감정은 해 보셨나요?"


"네, 세 군데에 의뢰했고, 세 군데 모두 통장과 계약서의 필적이 다르다는 감정서를 받았습니다. 오기 직전에 받아서 사본은 만들지 못하고 원본만 들고 왔습니다."


나는 세 곳의 필적감정서 원본을 제출했다. 확대한 계약서와 통장의 서명도 제출했다. 위원들은 서로서로 돌려봤다.


"어.. 세 군데 감정 결과가 다 같네."

"네, 세 군데 다 필적이 다르다는 결론입니다."

"도장도 청구인 이름이 아니네요."

"청구인이 사는 게 너무 힘들어 보입니다."

"이건 청구인한테 너무 가혹한 사안입니다."

"잘못하다 저분들 자살이라도 하게 되면.. "




과세전적부심은 물론 심판청구, 심사청구 등과 같은 조세불복 회의에서 이런 티키타카는 어림도 없다.

자기 차례가 와야 한마디 할까 말까이다.

하지만, 그날은 이런 되지도 않은 티키타카가 연출되었다.



그들은 길을 찾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에게는 보편적인 감정이란 게 분명히 있다.


세법이라는 차갑고 불편한 도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 바닥에서도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보게 되는 경우가 가끔씩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이야기 끝

이 글에 대한 해설은 다음으로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무정한 세금  다정한 세금 (2/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