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이 되었다. 나는 매년 1월 1일 0시 근방이 되면, 항상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라고 말씀드렸다. 그날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몇 가지 덕담을 주고받았다. '건강하세요.', ' 그래 너도 건강해라.' 뭐 그런...
다른 해와 다르지 않은 말을 주고받으며, 우리는앞으로의 새해를 기약했다. 2022년에 들어서도 그렇게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낼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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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 아버지는 항암을 4회차인가 5회차인가 진행하셨을 때였는데 항암이 힘드셨는지 통원치료보다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시면서 진행하셨다. 물론 입원을 위한 PCR 검사를 매번 진행하셔야 했다. 지치고 힘든 몸과 마음을 달래 드리는 방법으로 나는 오랜만에 손녀들과 좋은 시간을 갖게 해드리려고 했다.
서울 본가에 방문하니 항암 중이셨던 아버지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아버지를 뵈니, 살은 조금 빠진 것 같았지만, 전화로 들었던 모습보다는 그래도 나아 보이셨다. 항암 중인 환자는 식사에 제약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반찬도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한 껏 하셨다. 식사 후에는 두 손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셨다. 예상보다 괜찮은 아버지를 보고 내가 여쭤보았다.
"항암 중이시라 많이 힘드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으신데?"
"컨디션은 괜찮아."
아버지는 덤덤하게 이야기하셨다. 이렇게 뵙고 이야기 나누니 좋았다. 아버지가 씩씩하게 계시니 나는 또다시 무언가 힘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후 4시쯤이 돼서 미리 예약한 KTX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버지는 손녀 둘에게 각각 용돈을 쥐어주시고는 거실에 있는 조그만 소파에 앉아 '작별인사'를 하셨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오송역에 도착해 미리 주차해 둔 차를 타고 집에 귀가했다. 귀가 시간이 저녁식사 시간과 겹쳐 근처 식당에서 외식을 하고 나서 집에 들어오니, 저녁 7시쯤이 되었다. 한 시간 뒤인 저녁 8시에 동생이 평소 보내지 않던 카톡을 갑자기 보내왔다. 카톡으로 동생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잘 들어갔어?"
"응, 잘 갔지. 잘 들어왔다고 엄마랑 통화했어."
"그래도 오늘 애들도 오고 하니까 아빠가 힘도 나고 좋아하신 거 같아."
"그래? 그럼 자주 가야겠다."
평상시 아버지의 상태를 정확히 모르던 나는 밝아 보이는 아버지의 표정이 평상시와 같은 것으로 알았다. 더 힘을 내신 줄은 몰랐다. '애들을 보니, 더 힘이 나셨나?' 싶은 마음에, 육아휴직 기간을 활용하여 더 자주 찾아뵈면 아버지가 심적으로 더 밝아지실 거라 생각했다. 나는 그 당시에도 여전히 '희망'을 꿈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