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미국에서 돌아온 우리는 쉽게 자리를 잡지 못하고 부모님 댁에 함께 살고 있었고, 2007년, 건너 건너 소개받아 입사했던 회사를 다녔지만 1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 손찌검하는 직장상사와 맞서 (말로) 싸우다 해고를 당했다. 이것저것 해보자며 반백수 상태로 있던 때라 경제적으로도 풍족하지 못했다. 그나마 부모님 덕분에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둘째 필립이가 생겼다.
2009년은 처제와 프랜차이즈 카페를 시작한 해였다. (쩐주였던) 처제는 점주로, (몸으로 때우는) 나는 점장으로 교육을 받고 생전 처음으로 시작한 카페는 한마디로 정신이 없었다.
직원이 여러 명인 카페는 대부분 오픈, 미들, 마감 조로 운영이 된다. 쉬는 날도 매달 스케줄에 따라 다르고, 출근 시간도 퇴근시간도 매일 다르다. 처음 해보는 카페, 서비스업을 점장으로 시작한 터라 경력이 있던 직원들에게 배움과 동시에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또 믿음을 얻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만 했다.
필립이는 2009년 6월, 사당동의 한 작은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당시 우리는 이전에 살던 반포의 아파트가 재건축을 하게 되어 약 3년간 사당동에 와서 살았고, 집 가까이 있는 병원, 그리고 금액이 비교적 싼 곳을 찾아 이곳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원장 선생님과 간호사분들이 좋은 분들이셔서 마음에 꽤 들었던 기억이 있다.(정작 분만 날은 다른 파견 의사 선생님이 받아주셨다)
아내는 첫째 때 반만 들었던 무통주사의 기억이 있어서, 그리고 자연분만의 의지가 있어서 인지 무통 없이 둘째를 출산했다. 이번엔 나도 탯줄을 잘 잘랐다. 그때는 대부분 산후조리원에 가던 때였는데, 우리는 돈이 없는 나머지 처제 집에서 산후조리를 했고, 그 일은 여전히 처갓집에서 가족모임을 할 때마다 회자되고 있다...
첫째 정윤이를 낳았을 당시는 학교 졸업을 한 때였고,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육아를 하며 보냈는데, 필립을 낳고는 앞에서 설명한 바쁜 카페 스케줄로 인해 많은 시간을 함께 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첫째 딸에 비해 끈적한 무언가가 없는 듯한 느낌을 둘째를 보며 항상 느끼곤 했다.
심지어 필립이가 태어난 후가 딱 아이폰4가 나온 시절이었는데, 그전에 있던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대체 어디 갔는지 알 수가 없어서 갓 태어났을 적 사진은 거의 찾아볼 길이 없고, 아이클라우드에 저장된 걸음마 시작할 즈음부터만 온전히 사진이 남아 있다.
둘째를 키우면서는 사실 첫째 때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해봤자 소용없는 것이라던가 해봤는데 딱히 안 해도 될 만한 것들을 생략하거나, 뭔가 경력이 있다는 생각에 자기 자신도 모르게 육아를 소홀히 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던 것 같다.
필립이는 물려받은 옷들과 신발들과 육아용품을 사용해서 아이템 중에는 분홍색이 꼭 하나씩 있기 마련이었고, 무언가 조기로 시작할 만한 교육이나 체험들은 기억도 못할 거란 생각에 되도록이면 생략하게 되었었다.
둘째의 숙명이라 부르기엔 참으로 미안한 대목이다.
어쨌든 2009년 여름의 어느 날 나는, 계획을 했다고는 하지만, 반가웠지만, 생각보다 힘들다는 걸 느낀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