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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JayPark Oct 30. 2020

집안일의 무게


집안일을 함께하는 재택근무 3년 차로써 가장 힘든 점은 바로 수시로 찾아오는 자괴감이다.


'대표'의 직함을 가지고 시작하는 하루의 첫 일과는 밤새 어질러진 거실을 정리하며 시작된다. 장난감들을 제자리에 갖다 놓고, 사방팔방에 널브러진 과자봉지와 쓰레기들을 쓰레기통에 버린 후, 내 사랑 다이슨으로 바닥청소를 하기 시작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집 전체의 바닥에 장애물이 없도록 싹 치운 후, 나의 또 다른 총애를 받고 있는 샤오미 로봇청소기의 힘을 빌어 빈틈없이 바닥 청소를 하기도 한다.

청소기의 일이 끝나면 이제 무선 걸레 청소기의 시간이다. 하지만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구석이나, 더 힘을 들여 박박 닦지 않으면 안 되는 곳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은 손걸레를 사용하여 걸레질을 해야 한다. 대체 먼지들은 어디서 들어오는 건지, 이 먼지들을 우리가 몽땅 마시고 산다면 우리의 폐 건강은 어떻게 되는 건지 무서운 생각이 들 정도로 금방금방 먼지가 쌓이고, 발바닥이 까맣게 된다. 대표님의 첫 번째 아침 일과는 빠르면 11시쯤 대충 정리가 된다.


로봇청소기는 꽤 영민함과 동시에 꽤 예민해서 바닥을 완벽히 정리해줘야 한다


이제 우리의 박 대표님께서는 점심식사 전까지 진짜 업무를 보게 된다. 서울에 미팅이 있다면 출발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고, 문의에 대한 답변을 시작하는 시간일 수도 있고, 또 세금계산서 발행해주는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제품 사진을 찍는다거나, 여타 다른 업무를 시작하는 시간이다. 그냥 아침에 모닝 골프 치고 느지막이 출근하는 대표의 모습이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어 본다.


때에 따라 화장실 청소, 부엌 정리, 아이들 방 정리, 어디가 되었든 청소와 정리가 추가된다. 그나마도 1년 전부터는 너무나 억울한 나머지 설거지는 손을 놨다. 부엌일이라도 아내가 오롯이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아내는 엄청난 정리 스킬을 가진 장인 장모님과 다르게 정말 놀라울 정도로 정리정돈을 하지 않는 성격이다. 유복한 집 첫째 딸로서 귀하게 자란 탓이라 유추해 본다.

나도 청소와 정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우리 부모님도 정리에 있어서는 남부럽지 않은 스킬을 가진 분들이셨고, 나 또한 유복한 집 외동아들로 귀하게 자랐기 때문이라 주장해본다. 하지만, 못 참는 사람이 할 수밖에 없는 이 눈치싸움의 배틀의 전쟁에서 그녀 특유의 느긋함에 난 번번이 무릎을 꿇었고, 이 답답하고 속 터지는 마음은 청소를 하며 투덜투덜 대는 것으로 그나마 풀고 있다.


대부분 얘가 어지른다


자괴감은 여기서부터 온다.

나는 자영업자로서 제대로 가고 있는가. 내가 청소하고, 빨래하고, 정리하고, 투덜 댈 시간에 내 사업을 위해서 나만의 조용한 사무실에서, 혹은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연구하고, 고민한다면 더 좋지 않을까, 내 직업은 개인사업자인가 입주 도우미 이모님 인가.

때로는 외부 일정이 있어서 외출을 하게 되면 아이들이 '아빠가 왜 외출을 해?'라는 의아한 표정으로 어디를 가는지 물어 올 때가 있다. 행여나 밤늦게 들어올 때가 있을 때도 '아빠가 대체 무슨 일로 밤늦게 들어와?' 라며 궁금해한다. 어느샌가 아이들에게 아빠는 항상 집에 있어야 하는 존재이고, 방 정리를 도와주고, 오늘 입어야 하는 옷의 빨래가 되었는지, 어디 있는지를 알려주는 존재가 되었다.


벌써 3년 차로 접어들고 있는 재택근무 사업자이지만, 이 자괴감은 이러한 아주 작은 부분에서부터 롤러코스터처럼 밀려온다. 나는 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인데, 동시에 바닥청소를 하고, 빨래를 접고, 변기 청소를 하고 있다. 왜 나만 이 모든 걸 감내해야 하는 걸까... 따위의 자괴감.


혹시라도 재택근무로 사업을 시작하고자 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서 미리 알고 계셔야 하겠다. '난 집에서 일하게 되면 업무와 살림은 완벽히 분리할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결국엔 집안일 때문에, 혹은 육아 때문에 업무 스케줄이 밀리게 되는 안타까운 일들을 꽤 많이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빨래가 다됐다고 스마트폰 앱에서 푸시가 왔다. 이제 밖에서도 빨래가 얼마나 남았는지, 로봇청소기가 어딜 청소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도 집에서 집안일과 육아와 업무를 병행하는 모든 분들께 4차 산업혁명의 은혜가 함께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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