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이상한 꿈에 시달리다가 깨어나니 지오 등원 버스 오기 30분 전.
천천히 일어나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여전히 곤히 자고 있는 막내의 침대로 가 옆에 누워 깨어나길 잠시 기다려 본다. 뭐가 그렇게 피곤한지 11시간을 넘게 자고 있는 아가의 살짝 벌린 입가에는 침이 흘러 마른 자국이 살짝. 꿈에 재미있는 일이 있는지 킥킥 웃기도 한다. 마음 굳게 먹고 깨우려고 했는데, 세상 힘든 일이 곤히 자는 아이를 깨우는 일이구나 싶다. 밤새는 코를 골며, 발로 차며, 때로는 내 위로 기어올라 나를 힘들게 하더니 정작 깨워야 할 시간에 이렇게 이쁘게 쌔근쌔근 자고 있으면 나보고 어떡하라고...
오늘 할 일이 태산이라 안 되겠다 싶어 원복을 주섬주섬 입히고 있으니, 그새 깨어나 오늘 유치원 갔다 오면 파워오투를 마시고 자전거를 타겠노라 아침인사를 하는 나의 아기.
정신이 든 막내는 유튜브를 보겠다고, 게임을 하겠다고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배고픈 거 반, 진짜 유튜브와 게임을 하고 싶은 거 반일 게다. 조미김에 밥을 싸서 먹여주는 동안이라도 평온하기 위해 TV를 틀어 유튜브를 보여준다. 도대체 남이 괴상한 목소리로 게임하는 걸 뭐가 재미있다고 꺽꺽 대며 웃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아침부터 유튜브 보면 곤란한데, 어쩔 수가 없다고 자위해 본다.
어느새 마지막 김밥을 입에 넣었다. 유튜브를 더 보겠다는 녀석을 둘러업고 화장실로 가서 세수와 치카를 시키고 세타필을 듬뿍 발라준다. 치카할 때 혀를 너무 깊숙이 닦았다고, 세수할 때 눈곱을 너무 세게 땠다고 오만 짜증을 다 부리지만 미안하다고 둘러대고 외투를 입힌다. 왜 항상 입혀주는 외투는 한번 거절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그 외투를 입지 않겠다고 짜증을 낸다. 손흥민도 이런 외투를 입는다고 대충 둘러대니 솔깃한지 입어 준다. 미안, 손흥민은 이런 거 안 입어. 신발을 신길 때는 왜 항상 반대쪽 발을 내밀까 참으로 신기하다 생각할 즈음 마스크 씌우는 걸 깜빡한 게 생각났다. 엘리베이터 타기 전에 생각나서 다행이다.
오늘 춥다고 어젯밤 일기예보에서 신신당부를 해서 피케셔츠가 원복이라 걱정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춥다고 이를 다그닥 다그닥 떨어대는 아이를 안고 등원 버스를 타러 간다.
잰걸음으로 픽업 존에 도착했는데, 다행히 일찍 왔다. 잠시 후 버스가 도착하고, 출발 전 신호대기에 있는 시간 동안 나를 보며 오만가지 하트를 날려주는 막내. 가끔 괴상한 애교 목소리를 내는 게 거슬리지만 선천적인 애교가 막내는 막내다. 버스가 출발하려고 하자 손가락으로 이제 가라고 손짓을 한다.
예전에 신호가 길어지길래 아빠 먼저 갈까?라는 의미로 손가락질을 했었는데, 그걸 기억했는지 이제는 먼저 가라고 손가락질을 해주네.
깨어난 지 40여분이 지났을 뿐인데, 하루의 반은 간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니 침대에 누워있던 둘째가 오늘은 햄버거를 먹고 싶다고 말한다.
(보통은 엄마가 데려다 줍니다. 이번 글은 어느 날의 아침 풍경을 재구성 해봤습니다. 정작 오늘은 등원거부를 해서 망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