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일을 3일 남긴 어느 금요일이었다. 약 2주 전부터 식사를 잘 못하시며 게워내시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너무 큰 고생을 하고 계셨다. 공교롭게도 거의 매주 가던 본가를 3주 정도 가지 못했던 터라 마지막 아버지를 뵈었을 때만 해도 건강에 문제가 없었고, 그렇게 몇 주간 아버지의 상태는 급속도로 안 좋아졌다.
우리가 가지 못한 몇 주 사이 거동이 불가능해지시고, 배변도 조절하지 못하셨고, 기력이 쇠하시며 치매 증상도 눈에 띄게 안 좋아졌다. 병원에 입원이라도 시켜보자던 어머니의 말씀에 난 그렇게 본가로 향했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아버지는 나를 알아보시는 건지 아닌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다. 주민센터에서 빌려온 휠체어를 태워 근처 병원으로 향했고, 식사 후 게워내시는 증상 때문에 방문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정신이 없는 병원에선 우리를 이 과, 저 과로 토스하기만 했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침대에 누워 뭐라도 보이는 냥 손을 허우적 대거나 잠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는 시늉을 하시거나, 안경을 닦는 시늉을 하시고 계셨다. 이미 배변 조절을 못하시면서도 굳이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하려 하셨고, 그로 인해 어머니는 낙상을 걱정해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아버지를 지키셔야만 했다.
눈물이 났다. 항상 자신감 넘치고 강단 있으셨던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없는 것 같았고, 그렇게 누워 가쁜 숨을 헐덕거리는 모습을 보고 조심스럽게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본가를 떠나며 아버지께 “아이들 내일 할아버지 보러 오니깐 정신 꼭 붙들고 버텨주세요” 말하고 나왔다. 차로 향하는 주차장에서부터 차에 앉아서 근 10년 만에 대성통곡을 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좀 다시 건강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는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것 같았고, 이대로 고생하시는 어머니마저 건강을 해치실까 한편으론 더 크게 걱정이 되었다.
토요일,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본가로 향했다. 밤에 잠은 어떻게 잤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유튜브를 보며 잠을 청하다가 울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아이들이 와서 할아버지에게 인사했고, 전날 섬망 증상으로 허우적대며 대화도 불가능했던 아버지는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정신이 돌아오셨고, 심지어 살짝 부축해도 일어나 걸으실 수 있을 정도로 좋아진 모습이었다. 손주들이 도움이 되는구나 생각되는 순간이었다.
일요일, 내 생일. 나는 아버지가 들어가실 수 있는 요양병원을 알아보러 돌아다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저녁이 되어 아내가 준비한 케이크에 촛불을 붙여 조촐한 생일파티를 했다. 누워만 계셨던 아버지는 거실의 소파에 앉아 생일 축하 노래에 맞춰 박수를 쳐 주셨다. 나는 작게나마 희망을 품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할아버지와 애틋했던 둘째는 집에 가기 전까지 할아버지 옆에서 손을 붙들고 오래도록 함께 누워있었다.
월요일, 소화기내과에서 토스 당해 신경과로 피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을 갔다.
기침 가래가 있으시다는 말을 하자마자 굳어지던 표정의 의사는 우리를 코로나 선별 진료소로 보냈다. 병원 한 편의 컨테이너 박스에서 아버지는 엑스레이를 찍고, 코에 면봉을 넣어 검사를 진행하셔야 했다. 일어날 힘조차 없는 노인네가 휠체어에 앉아 멀찌감치 엑스레이 결과를 기다리는 모습에 가슴이 찢어졌다. 본가로 데려다 드리고 검사 결과 폐렴기가 있다는 말에 다음 날 호흡기내과를 또 예약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다. 저녁 즈음 코로나 검사 결과 음성이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고, 난 다음 날엔 서류를 준비해서 아버지가 당장 들어갈 수 있는 요양병원에 면담을 할 생각이었다.
화요일 새벽 7시 반,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깨워도 안 일어나신다고, 몸이 차갑고, 숨을 안 쉬는 것 같다고. 정신이 번쩍 들며 가슴이 내려앉았다. 119에 전화하라고 말씀을 드리고 서둘러 차로 향했다.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구급대원들은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사망선고를 하고 돌아갔고, 그대로 형사들이 와서 조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자유로를 타고 가던 나는 컨테이너와 사고가 났다. 매주 가던 그 길에서 하필이면 그때 첫 사고가 났다. 한 시간 반을 자유로에서 버리고 본가에 도착했다. 현관문이 활짝 열려있었고, 이내 어머니가 날 끌어안으며 어떡하냐며 우셨다. 형사 두 분이 계셨고, 아버지가 계신 안방에 들어가도 되는지 물어봤다. 항상 덮으시던 여름이불을 머리까지 덮고 아버지가 누워있었다. 차가운 아버지의 얼굴을 만졌다.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다는데, 눈은 반쯤 뜨고 계셨다. 그저 하염없이 울며 ‘아빠 미안해’란 말만 했다.
86년을 살며, 나와 45년을 보낸 나의 아버지가 너무도 앙상한 모습으로, 그렇게 차갑게 누워있었다.
차갑게 굳은 아버지의 깡마른 손을, 그제야 잠시 잡아보았다. 기억 속 각인된 큼지막하고 따뜻한 아빠의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