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알바니아 지로카스터르
10시간이라는 살인적인 이동 시간을 견디며 그리스에서 알바니아로 국경을 넘었다.
야간 버스를 타고 온 터라 내리자마자 보이는 거라곤
달랑 조그만 카페 하나뿐이었다.
일단 짐을 놓고 숨을 돌릴 겸 카페에 앉아 생수 한 병을 집었다.
예상은 했지만 알바니아에서는 영어 하나 제대로 통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환전도 안 한 상태로 새벽에 도착한 탓에 물 한병 사 먹는 것부터 난관이다.
그래도 이 새벽,
낯선 외국인에게 친절하게 웃으며 설명해주려 애쓰는 카페 직원 덕분에
무거운 긴장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었다.
목을 축이고 짐을 챙겨 나가려고 하는 그때,
카페 직원인 Ledi가 능숙하지 않은 영어로 더듬더듬 말을 건넸다.
자신이 일하는 바를 알려주고는 내일 오면 볼 수 있겠다며 해맑게 웃어 보인다.
어느새 깜깜한 어둠이 내려앉은 지로카스터르.
그 적막함이 소름이 돋을 만큼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가까스로 찾은 숙소에서 짐을 풀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떠보니 아침 햇살이 창가로 조심스레 스며들고 있다.
알바니아라는 나라는 들어본 적도, 아는 것도 하나 없는 터라
어떤 여행이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더 좋았다.
아무런 편견 없이,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그 도시의 모습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햇볕이 반짝이는 오후.
지로카스터르의 무채색 거리를 걷는다.
언덕으로 오르는 길 주위에는 모두 돌뿐이다.
돌길, 돌담, 돌지붕.
생각보다 가파른 지로카스터르의 언덕.
그늘마다 쉬엄쉬엄 걸어 올라간다.
이곳 사람들은 이 길을 매일 걸어 올라가고 내려오겠지.
나도 며칠이 지나면 이 언덕을 익숙하게 다니게 되겠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앤틱한 골목들.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자연 그 자체만으로도
이곳은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변하지 않는 돌처럼,
그곳, 그 자리, 그 시간에
지로카스터르는 그대로 남아있다.
하나하나 쌓아 올린 돌,
제각각의 투박한 돌들이 빼곡하게 둘러싸인 이곳이 주는 오묘하고 독특한 매력은
지로카스터르의 골목을 직접 거닐며 느껴봐야 할 신선한 즐거움이다.
조금 더 언덕을 올라가자 막힌 곳 하나 없이
뻥 뚫린 지로카스터르의 경관이 눈 앞에 펼쳐진다.
믿을 수 없었다.
예고 없이 찾아온 광활한 자연의 모습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마치 산과 하늘, 그리고 구름이 그려진 널따란 벽지에 둘러 쌓여 있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좋은 날이 또 있을까.
이런 날에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지 않니?
- 빨강 머리 앤
앞, 뒤, 그리고 옆.
그 어디를 둘러보아도 탁 트인 자연의 아름다움이 벅찰 만큼 눈에 담겨온다.
이곳을 어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현기증이 날 만큼 광활하게 펼쳐진 자연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이곳이 지로카스터르다, 라는 말 외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가 없다.
이곳을 밟고 서 있는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사실에,
내 오감으로 이 자연을 전부 느낄 수 있음에,
그저 행복할 뿐이다.
눈 앞에 그려진 믿을 수 없는 자연을 바라보며 잔에 담긴 차가운 와인 한 잔을 넘긴다.
지금은 모두가 조용히 지로카스터르를 감상하는 시간이다.
내가 살아있을 이유를 알게 해 준 지로카스터르.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할 이유를 알게 해 준 지로카스터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