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몬테네그로 코토르
코토르의 한낮은 바람 하나 불지 않는 땡볕이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요새를 오르기 위해서는 1시간가량 그늘 한 점 없는 성벽 길을 올라야 한다.
늦은 저녁에는 금세 어두워져 이른 아침에 오르기로 마음을 먹는다.
아침에 일어나 몸을 풀어 본다.
이미 코토르의 아름다움에 푹 빠진 탓에
이른 아침 등산에도 발걸음은 가볍기만하다.
올드타운 안에 위치한 코토르 요새로 오르는 길 입구에 도착했다.
패기 넘치는 발걸음으로 하나 둘 돌계단을 오른다.
몇 발자국 떼 지도 않았건만 금세 발아래로 코토르가 내려다보인다.
저 끝까지 오르면 얼마나 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질지 그 기대감에 계속해서 힘을 주어 걷는다.
평지 하나 없이 하늘 높이 솟은 가파른 돌계단.
평소 조그만 언덕에도 쉽게 호흡이 딸리는 아찔한 체력 덕에 요새를 오른 지 20여분 만에
숨이 턱까지 차오르기 시작한다.
땀은 이미 비를 맞은 듯 온몸을 흠뻑 적신 지 오래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른다.
슬슬 몸 하나 챙겨 오르는 것도 버거워진다.
이 와중에 배낭까지 메고 올라오는 사람들.
내색할 수 없는 힘듦을 안고 또다시 오른다.
힘겹게 올라가는 길,
빨리 올라가야 한다는 부담을 버리고 잠시 숨을 고르며 천천히 주변을 감상해본다.
지나가는 구름,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까지
'그 꽃'의 한 구절이 머리를 스친다.
우리는 왜 오를 때는 보지 못할까.
어째서 내려오는 길에 다다라서야 보게 되는 걸까.
견고하게 세워진 성벽을 오르며
새삼 오래된 역사 속을 걸어 지나갈 수 있음에
숨죽여 감사의 마음을 표해본다.
40여 분 간의 힘겨운 사투 끝에 드디어 코토르 요새에 도착했다.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코토르의 모습.
드넓게 펼쳐진 쪽빛 바다와 푸르른 하늘 그리고 붉은빛으로 물든 지붕들까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있음에
지금 이 순간, 힘들지만 행복하다.
심장이 터질 듯 가쁜 숨을 몰아쉬고
비 오듯 땀을 흘려도
요새에 올라 내려다보는 코토르의 경관이 눈에 닿으면, 그 모든 힘들었던 시간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내려가는 길에 맞는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적셨던 땀과 고통을 남김없이 말린다.
저 멀리 울려 퍼지는 종소리마저 시원하고 경쾌하다.
역시나 힘들게 올라오던 길이 내려갈 땐 아무렇지 않게 가뿐하다.
험한 오르막을 오를 땐 내리막이 있음을 알아도 생각만큼 큰 위안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우린 계속해서 오른다.
올라가던 길에 내려오는 사람들이 비켜주던 잠깐의 배려가 어찌나 고맙던지.
나도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계단 길을 비켜준다.
고맙다며 인사를 하는 사람들.
그렇게 우린 웃음을 나눈다.
작은 배려이지만 그 소소한 차이가 이 곳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시간을 만들어주는지도 모른다.
오늘만큼은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이 곳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돌이켜보면,
요새에 오르는 것만큼이나
오르는 시간 동안 보고 느끼고 배운 것들이 참 많다.
그 과정을 걷는 시간 속에서 채워지는 아름다움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
자연의 가장 아름다운 한 순간을 품에 안고 있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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