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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Oct 18. 2016

견고한 요새를 오르는 시간동안

#19. 몬테네그로 코토르

코토르의 한낮은 바람 하나 불지 않는 땡볕이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요새를 오르기 위해서는 1시간가량 그늘 한 점 없는 성벽 길을 올라야 한다.

늦은 저녁에는 금세 어두워져 이른 아침에 오르기로 마음을 먹는다.     

아침에 일어나 몸을 풀어 본다.

이미 코토르의 아름다움에 푹 빠진 탓에

이른 아침 등에도 발걸음은 가볍기만하다.     


올드타운 안에 위치한 코토르 요새로 오르는 길 입구에 도착했다.

패기 넘치는 발걸음으로 하나 둘 돌계단을 오른다.


몇 발자국 떼 지도 않았건만 금세 발아래로 코토르가 내려다보인다.

저 끝까지 오르면 얼마나 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질지 그 기대감에 계속해서 힘을 주어 걷는다.

평지 하나 없이 하늘 높이 솟은 가파른 돌계단.

평소 조그만 언덕에도 쉽게 호흡이 딸리는 아찔한 체력 덕요새를 오른 지 20여분 만에

숨이 턱까지 차오르기 시작한다.


땀은 이미 비를 맞은 듯 온몸을 흠뻑 적신 지 오래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른다.

슬슬 몸 하나 챙겨 오르는 것도 버거워진다.


이 와중에 배낭까지 메고 올라오는 사람들.

내색할 수 없는 힘듦을 안고 또다시 오른다.

힘겹게 올라가는 길,

빨리 올라가야 한다는 부담을 버리고 잠시 숨을 고르며 천천히 주변을 감상해본다.

지나가는 구름,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까지

오르는 길, 볼 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     


'그 꽃'의 한 구절이 머리를 스친다.

우리는 왜 오를 때는 보지 못할까.

어째서 내려오는 길에 다다라서야 보게 되는 걸까.


정상을 오르는 게 끝도, 답도, 마지막도 아닐지 모른다.


진정한 마지막은 이 길의 끝에 다다랐을 때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이 아닌

걸어온 길을 바라볼 수 있는 그 마음가짐이 아닐까.

견고하게 세워진 성벽을 오르며

새삼 오래된 역사 속을 걸어 지나갈 수 있음에

숨죽여 감사의 마음을 표해본다.


40여 분 간의 힘겨운 사투 끝에 드디어 코토르 요새에 도착했다.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코토르의 모습.

드넓게 펼쳐진 쪽빛 바다와 푸르른 하늘 그리고 붉은빛으로 물든 지붕들까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있음에

지금 이 순간, 힘들지만 행복하다.


심장이 터질 듯 가쁜 숨을 몰아쉬고

비 오듯 땀을 흘려도

요새에 올라 내려다보는 코토르의 경관이 눈에 닿으면, 그 모든 힘들었던 시간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이게 자연의 힘일지도 모르겠다.

내려가는 길에 맞는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적셨던 땀과 고통을 남김없이 말린다.

저 멀리 울려 퍼지는 종소리마저 시원하고 경쾌하다.     

역시나 힘들게 올라오던 길이 내려갈 땐 아무렇지 않게 가뿐하다.


험한 오르막을 오를 땐 내리막이 있음을 알아도 생각만큼 큰 위안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우린 계속해서 오른다.

이 오르막도 언제 간 끝이 날 거란 믿음으로.

올라가던 길에 내려오는 사람들이 비켜주던 잠깐의 배려가 어찌나 고맙던지.

나도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계단 길을 비켜준다.

고맙다며 인사를 하는 사람들.

그렇게 우린 웃음을 나눈다.


작은 배려이지만 그 소소한 차이가 이 곳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시간을 만들어주는지도 모른다.     

오늘만큼은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이 곳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돌이켜보면,

요새에 오르는 것만큼이나

오르는 시간 동안 보고 느끼고 배운 것들이 참 많다.

 

때때로 여행은 결과에서 보다 순간순간 마주치는 과정에서 더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하려고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과정을 걷는 시간 속에서 채워지는 아름다움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   

사람은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다운 것을 느끼고,

아름다운 것을 생각할 때,

더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간다.   


자연의 가장 아름다운 한 순간을 품에 안고 있는 지금,

나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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