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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Oct 21. 2016

오후 2시, 토마토 파스타와 구운 채소

#그릇 위에 또 한 숟가락을 얹어놓은 날

오랜만에 갖는 여유로움에 무얼 할까 고민을 해본다.

아무래도 점심을 먹어야겠다.

매번 나가서 사 먹기도 지겹고 간단하게 만들어볼까 냉장고를 뒤적거린다.

    

사다 놓은 파스타 면과 토마토소스,

그리고 냉장고에 남아있는 채소들을 몽땅 꺼낸다.     

언제 만들어 먹어도 간단하고 맛있는

파스타와 구운 채소가 오늘의 점심이다.     



보글보글 끓는 물에 파스타 면을 부어 넣고

한쪽에서는 채소를 굽는다.

  

가지와 애호박, 파프리카, 대파, 양파, 마늘까지

도마에 통통통 썰어지는 물기 먹은 채소들이 싱그럽다.   



지글지글 열이 오른 팬에 기름을 두르고 채소를 얹는다.

소금과 후추를 살살 뿌려주면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구운 채소가 완성이다.


마늘과 베이컨을 볶다 토마토소스를 붓는다.

소스가 끓어오르면 삶아 둔 파스타 면을 넣어 한번 더 볶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토마토 파스타도 완성이다.     



그럴듯한 한 끼가 뚝딱 만들어진다.

뜨거운 파스타를 한 가득 떠 입안에 넣는다.

면 안으로 가득 찬 소스들이 뜨겁게 퍼져나간다.     


후추 향이 솔솔 나는 채소들까지 더해지면

나른한 점심, 

이만한 게 없다.     



점심을 해결하고는 뜨겁게 달궈진 모스타르 거리를 걸어본다.

근처 빵집에서 빵도 몇 가지 사고, 마트에 들러 물도 몇 병 산다.     


며칠 전 처음 도착한 모스타르의 느낌과 많이 달라져 있다.

동네를 돌아다닐 때도 지도를 찾고, 지나가는 낯선 사람들을 경계하고, 

휑하고 고요한 적막이 스산하게만 느껴지던 모스타르.     


지금은 익숙하게 동네를 거닐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봐도 겁먹지 않는다.

조용하고 평온한 모스타르의 분위기에 몸도 마음도 모두 익숙해져 있다.     


낯설 때는 모른다.

이 공간과 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얼마큼 익숙한 모습으로 다가오게 될지 말이다.     



아마 하루만 보고 지나갔더라

이렇게 편안하고 여유로운 모스타르의 점심을 느껴보지 못했으리라.     


새삼 얽매이지 않고,

있고 싶을 때는 있고 떠나고 싶을 때는 떠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있음에 감사하다.     


여행에서 만큼은 그 무엇보다 시간에 있어서 부유하다.

일상에서 묶여있던 시간이 여행지에서는 자유롭게 흘러간다.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내 시간을 만들어 갈 수 있다. 

그게 일상과 여행의 차이가 아닐까.     


여행에서의 일상이 더 특별하고 낭만적으로 다가오는 건 어쩌면 현실에서는 꿈꾸지 못하는

부담도, 압박도, 책임도 필요 없는 무수한 시간이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라는 책을 보다 눈에 선명히 남던 문구가 있었다.


여행은 시간을 들이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벌어오는 일이다.     


이 말에 깊은 공감을 느끼는 순간,

내가 여행을 잘 하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로 가득 채워야지만 잘 한 여행이고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못 한 여행인 것은 아니다.


여행에서 만큼은 잘하고 못하고를 따질 필요가 없다.     

이미 익숙한 것을 벗어던지고 낯선 것으로 뛰어든 그 순간부터 

우리의 시간은 새롭게 흘러간다.


여행지에서 먹고, 마시고, 걷고, 쉬고, 눕고, 자고, 보고, 느끼고 하는 모든 순간은 

어떤 값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며,

그런 경험이 쌓인다는 건 그만큼의 시간도 내 인생에 쌓이는 셈이 된다.     


그래서 여행은 언제나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이다.



그게 무엇이,

우리의 시간은 오늘도 더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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