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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Oct 29. 2016

푸르른 일상을 가득 채우다

#잠시 고개를 들어 깊은 숨을 들이마신 날, 가을이다

류블랴나에서 가장 큰 공원인 티볼리 공원.

마침 오늘 날씨가 좋아 공원으로 산책을 나간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티볼리 공원은 그 안에 다양한 편의시설로 가득하다.

카페와 레스토랑, 놀이공원과 박물관까지.

런 것 하나 없다 해도 푸르른 나무와 따스한 햇살만으로도 티볼리 공원의 가치는 충분하다.     


온통 초록빛으로 물든 티볼리 공원을 걷는다.

어느 곳을 봐도 눈에 가득 담기는 푸르름이

참 좋다.     



나란히 자전거를 타는 연인들,

벤치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

나무에 기대어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

땀 흘리며 열심히 달리는 사람들까지.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가만히 걷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에 평온함이 몰려온다.



곳곳에 여유를 한가득 품은 채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그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고,

그 마음엔 천천히 흐르는 행복이 있으리라.


여유롭게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

보는 내 음까지편안함으로 채워지지만,

한편으로는 못내 씁쓸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나는 떠나와야지만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이

곳 사람들에게는 언제고 마주치는 일상이라는 사실이 꽤나 부럽기 때리라.     


잠시나마 그들의 일상에 내 일상을 겹쳐본다. 

그들의 하루와 마찬가지로 

내 하루도 조금은 느슨해질 수 있다는 걸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잠깐 흘렀다 멈추는 꿈 같은 일상이 아니기를 모른 척 바래본다.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포근한 햇살을 맞으며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해맑다.     


류블랴나가 힐링 여행지로 꼽힌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다.

이 도시를, 이 공원을, 이 거리를

목적없이 발길이 닿는대로 걸을 뿐이건만

속으로 움켜쥐고 있던 답답한 것들이 소리 없이 흩날려간다.



문득 발 밑을 내려다보니 세잎클로버가 한가득 피어있다.

이제는 굳이 유난스럽게 네잎클로버를 찾지 않는다.

억지로 눈을 크게 뜨고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     


지금은 언제나 옆에 있는 흔한 세잎클로버가 좋다.

나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 피어있는 소소한 행복이 좋다.



나뭇잎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니

저 멀리 잔디밭 한가운데 앉아

책을 읽는 한 여자가 보인다.


그 모습이 마치 아름다운 영화 속의

주인공을 보는 것만 같아 

슬며시 옅은 미소가 번진다.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새하얀 구름이 고개를 밀고 있었.

한 장의 그림처럼 파랗고 하얀 하늘.

흘러가는 시간도 잠시 멈춰 선 듯,

숨을 고르고 있다.     


공원을 걸을때면, 이상하게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아니, 이 순간엔 아무런 생각도 하고싶지 않다.


조용히 들리는 새소리와 바람소리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와 웃음소리들을

모두 담아내기엔 내 모든 것들을 집중시켜도

턱없이 모자르니 말이다.


슬로베니아의 맑고 깨끗한 공기가 이 순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만 같다. 

상쾌한 공기만큼이나 지금 이 순간은 평화롭다.     



티볼리 공원이 다른 공원과 다른 점이 있다면

조용하고 한적한 류블랴나만의 잔잔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북적이지 않지만 휑하지 않은 곳.

조용하지만 외로워 보이지는 않은 곳.

천천히 걷는 발걸음조차도

여유로워지는 곳.     


마치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나만의 은밀한 비밀장소를 만들기라도 할 것처럼,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 홀로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머무는 순간을 상상 해본다.     



완연한 가을이 왔나 보다.

나무들이 주는 냄새가 향기롭다.

가을이 좋은 이유는 미직지근했던 공기를 가득 채우는 상쾌함 때문이 아닐까.


날씨만큼이나 사람의 마음까지도

가볍게 채워지는 그런 날.     


파란 하늘과 새하얀 구름에 마음이 들뜨고,

시원한 바람에 어깨가 들썩이고,

한적한 거리를 아무 생각 없이 걸,

기분 좋게 센치해지는 저녁을 마주해

부끄럽지 않은 날.


여기도 가을이 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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